주간동아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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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위험 사회, 운명아 길 비켜라!

지금 이 시간에 충실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자세 필요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7-07-25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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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잡한 위험 사회, 운명아 길 비켜라!
    ‘1분 뒤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다. 6월25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승객 13명을 태운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심정이지 않았을까? 운 좋게도 문제의 사고가 났던 ‘시아누크빌 2박 포함 앙코르와트 4박6일’ 여행상품을 예약했다가 취소한 사람들도 있다. 한순간의 선택이 그들의 운명을 갈랐다.

    돌아보면 느닷없이 다가올 위험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다. 운만 바라고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체계가 복잡해질수록 위험이 증가하는 사회, 삶 자체가 위험에 둘러싸인 위험사회에 살고 있는 개인의 운명이다.

    서울 정릉의 아파트 3층에 사는 김모(39) 씨는 2006년 5월 아침 6시 소란스러운 계단 발자국 소리에 잠이 깼다. 평소보다 일러 잠시 멍하니 누워 있던 그는 뭔가 타는 냄새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다. 창문 쪽으로 다가가자 이미 시커먼 연기가 아래층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1층에서 불이 난 것. 김씨는 가족을 깨우고 창문을 닫았지만 연기는 점점 실내로 밀려 들어왔다. 이미 계단은 연기로 가득 차 탈출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유독가스 때문에 김씨 가족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소방관들은 1층 불을 끄는 데 집중하고 있었고,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그 순간 아내가 임시방편 하나를 생각해냈다. 수건에 물을 묻혀 코에 대고 호흡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김씨 가족은 30여 분을 버텨냈고, 소방관의 유도에 따라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생사 가른 캄보디아 여객기 참사 한순간의 선택

    구조대원들도 불가항력의 위기 앞에서는 힘없는 개인일 뿐이다. 서울 노원소방서 하계119안전센터 김만수 부소장(55·소방장)은 1987년의 자동차공업사 화재 진압현장을 잊지 못한다. 그가 도착했을 때 현장은 불길이 치솟고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호스로 물을 뿌리며 움직이던 그는 갑자기 차량검사대 아래 푹 꺼진 곳으로 굴러떨어졌다. 그곳에 지하 창고와 연결된 깊은 계단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채 발을 헛디딘 것이었다. 다행히 안전모를 쓰고 있어 머리를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어깨뼈가 심하게 손상됐고, 그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1분이나 지났을까, 온몸에 힘이 빠지고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김만수, 김만수, 괜찮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갑자기 정신이 돌아왔어요. 어떻게든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주변을 더듬었더니 떨어질 때 손에 잡고 있던 소방호스가 잡혔습니다. 그걸 잡아당기니 소방차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그래서 그걸 잡고 가까스로 위로 올라갈 수 있었지요. 그 일을 겪은 후 잠시 소방경찰관이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화재 현장에 투입되면 다시 그 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주눅들기도 했지요.”

    화재 진압과 긴급구조 현장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일을 수없이 겪은 그는 올해로 소방관 경력 25년째. “힘든 일을 많이 겪으면서 점차 내성이 생기고, 남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 보람도 컸다”는 그는 지난해엔 서울시 소방방재본부에서 주는 ‘2006년 올해의 최고 소방공무원상’을 받았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사소해 보이는 외부 자극에도 엄청난 참극이 일어나곤 한다. 340명의 사상자를 낸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가 그렇다. 화재는 삶을 비관한 한 우울증 환자의 망상에서 비롯됐지만, 지하철공사의 부주의로 화재가 난 차량보다 뒤따라 중앙로역으로 들어온 차량에서 더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께 이영복 씨는 대구지하철을 타고 중앙로역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롯데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가는 중이었다. 이씨는 옆자리에 앉은 방화범 김대한 씨가 가방을 열고 플라스틱 시너통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는 행동을 목격했다. 순간 뭔가 일이 잘못돼가고 있다고 판단한 이씨가 일어서면서 김씨를 제지하자, 김씨도 따라 일어나면서 우격다짐이 벌어졌다. 그때 열차가 멎었고 김씨가 사람들을 피하며 다시 라이터불을 켜는 순간 김씨 몸에 불이 붙었다. 김씨가 가방을 내팽개치자 불붙은 시너는 지하철 내부 바닥으로 퍼져나갔다. 내부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이씨 등 몇몇 사람이 범인을 끌고 계단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사고 직후 기자가 병실을 찾아갔을 때 그는 “정전으로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다리를 절며 두려워하던 범인을 살리기 위해 손을 잡고 이끌어줬다”고 말했다. 당시 유독가스와 뜨거운 공기를 많이 마신 이씨는 폐질환과 늑막에 의한 신부전증 등 2차 후유증에 시달리다 2년 뒤 삶을 마감했다.

    복잡한 위험 사회, 운명아 길 비켜라!

    현대인들은 삶 자체가 위험에 둘러싸인 위험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과도한 자본주의 쾌락, 위험한 사고 초래

    난데없이 다가오는 위험(재해)은 인적재난과 자연재해로 나뉜다. 1998년에만 화재, 산불, 붕괴, 폭발, 교통사고, 해난사고 등을 합쳐 인적재난 사고는 27만5353건이 발생했다. 매일 750여 건의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2000년 33만311건(피해액은 8225억원)으로 늘어났다가 2005년 25만7278건(피해액 2701억원)으로 줄어드는 등 발생 건수는 들쭉날쭉하지만, 분명한 것은 재난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계명대 장준호 교수(소방방재청 방재교육전문가)는 “인적재해의 특징은 사회가 복잡해지는 만큼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비이성적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서울에서 누군가 맨홀을 열고 들어가 라이터불로 광케이블을 끊어 일대 전산망이 먹통 된 적이 있다. 이처럼 장난 같아 보이는 비행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테러 수준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한 정보사회에서는 자연재난보다 인적재난과 과학기술 문명이 만들어내는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인간 호르몬 체계의 변동 등과 같은 새로운 위험요소들이 등장한다. 방송통신대 이필렬 교수는 “기술이 더 높은 생산성을 가질수록 더 큰 위험 잠재력을 갖게 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 위험요소가 많아지는 것은 잉여 쾌락에 대한 욕망과 그것에 맞춰 무리한 물리적 장치를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적 가치와 관련된다는 분석도 있다.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대표는 “과도한 쾌락을 누리려는 현대인의 욕망은 그것에 상응하는 갖가지 장치를 만들어내고, 자본주의적 팽창을 위한 무리한 요소를 도입하게 한다. 따라서 위험한 사고를 당할 확률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호우, 대설, 태풍 등 자연재해도 다변화하고 늘어나는 추세다. 2002년 4회에 그쳤던 자연재해가 2003년 10회, 2004년 11회, 2005년 18회, 2006년 16회로 늘어났다.

    장준호 교수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하루에 연평균 강우량의 3분의 1이 넘는 게릴라성 폭우가 많이 내리고 있다. 예상 추세에서 5% 정도 벗어나면 이상기후라 하는데, 2000년 이후에는 계속 이상기후를 보이고 있다. 이제 더는 이상기후라고 부를 수 없는 상황이 왔다. 기후 트렌드 자체가 바뀐 것이다. 예컨대 연평균 강우량을 계산해 도시 하수도 시설을 만드는데, 하수도 시설이 이런 변화를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재해의 규모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2년 태풍 루사 등에 의한 피해 규모가 역대 최대인 6조100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듬해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액은 역대 2위 규모인 4조8000억원에 이르렀다. 소방방재청 방재연구소 박덕근 기획분석팀장은 “홍수재해는 강우현상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최근 들어 피해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압축적인 고도성장을 추구하면서 안전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서울대 이재열 교수(사회학)도 “70년대 고도성장을 추구하면서 비용절감을 통해 속도를 추구하다 보니 부실한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90년대 대형사고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대구지하철 사고처럼 그 원인과 결과가 더욱 복잡해졌다. 복합위험 사회에 들어선 것이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지나치게 위험을 의식하고 살면 결벽증 환자가 될 수 있다. 적절한 수준에서 감내하고 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위험으로 가는 기차를 세울 수 있는 브레이크, 즉 합리적인 시스템 구축이다”라고 말했다.

    1830년대 영국 맨체스터에서 처음 기차가 만들어졌을 때 100km까지 속력을 내는 것은 짧은 기간에 가능했지만 속도를 통제할 수 있는 브레이크 장치를 만드는 데는 50여 년이 걸렸다. 우리 사회를 통제할 브레이크는 과연 언제쯤 제대로 구축될 수 있을까.

    사회 전체 재난예방 시스템 구축이 진정한 웰빙

    복잡한 위험 사회, 운명아 길 비켜라!
    정부는 2003년 3월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 위기관리센터를 설치했고, 2004년 재난관리 전담기구인 소방방재청도 신설해 종합적인 위기대응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예방체계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사회가 복잡해져 갈수록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전에 원인을 없애는 재난예방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장준호 교수는 “예방에 무게를 둬야 방재의 참뜻이 살아난다. 학교에서도 방재교육을 정규 교과로 도입해 위험에 대비하는 연습을 해둬야 한다. 그래야 개인의 생명 보호는 물론 사회의 안전도 확보되고, 사회 전체가 웰빙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위험요소를 줄이긴 하지만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다. 그래서 1분 뒤 인간의 운명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체념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애플사 스티브 잡스 회장이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내가 하려는 일을 하게 될까?’라고 물으며 삶의 의지를 다졌듯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이 될 것이다.

    수원대 이주향 교수(철학)는 “어떤 사람들은 불행 앞에서 좌절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생이 준비한 가르침이라고 받아들인다. 삶의 태도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라며 1분 뒤 운명을 개척해가는 삶의 자세를 권했다. 이정우 대표는 “소박한 삶을 추구하고 자본주의적 욕망을 줄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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