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4

2004.09.30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영남·호남대로 중 뽑은 ‘하루 이틀 길’… 풀 한 포기, 돌 하나에도 선조의 숨결 담긴 듯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4-09-23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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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동아’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두 대로 옛길 가운데
    • 하루나 이틀 만에 쉬다 걷다 할 수 있는 구간을 선정해 관련 정보를 소개한다.
    • 대로에는 조선시대 주막과 여인숙 기능을 했던 원(院), 말을 갈아타고
    • 길 관리를 했던 역(驛), 역을 관리했던 찰방(察訪) 터와 각종 비석·장승·서낭당·당산나무 등
    • 길과 관련한 흔적이 길손들을 반긴다. 혹 길을 잃었다면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면
    • 금방 찾을 수 있다. 이는 길을 찾아나선 여행자에게 또 다른 재미를 던져줄 것이다.
    • 대로 옛길을 선정하는 데는 이 길을 걸었던 많은 이들이 도움이 있었다.
    영남대로

    죽산에서 생극까지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비석거리마을을 지나 청미천을 건너면 나오는 방목지 사잇길.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에 나타나 있는 태평원(太平院)과 석원(石院) 사이의 옛길. 원(院)은 조선시대 정부에서 만든 관용 숙소로 지금으로 말하면 관사와 비슷하다. 옛길을 걷는 행보는 경기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미륵당마을을 찾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미륵당마을에는 실제 돌로 된 미륵이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미륵당마을 5층석탑이 바로 이 마을에 있다. 옛 과거길이자 관리가 다니던 관도(官道)임을 증명하듯 이곳에는 비석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조선시대 지방 관리들은 자신들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재임기간 동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영남대로에 공덕비를 세우고 자찬하는 폐단이 있었다. 물론 이중에는 마을 주민들이 진짜 세운 공덕비도 일부 섞여 있기도 하다.

    비석거리마을에서 마을 앞 청미천을 넘으면 비포장 흙길이 나온다. 바로 영남대로 옛길이다. 넓은 구릉지대에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방목지 사이로 옛길이 뻗어 있다. 꼭 제주도의 말 방목장에 온 기분이다. 평지로 내려가 중부고속도로 밑 굴다리를 지나면 일죽면 장암리 장암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에서 영남대로 옛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중부고속도로 근처의 옛길을 가르쳐준다. 그곳에도 역시 죽산 공덕비가 있다. 이것이 옛길이라는 증거다.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석교촌 마을 인근의 움푹 파인 길.

    흙길은 318번 지방도와 만나면서 끝나고 용산동마을까지는 그 지방도를 따라가는 아스팔트길. 용산동은 대동지지에 ‘용산등(龍山燈)’으로 표현된 곳으로 역사 깊은 주막마을. 마을 안 소로로 들어왔던 옛길은 318번 지방도를 따라 500m쯤 가다 양아리마을 못미처 오른쪽으로 난 흙길을 향한다. 양아리마을엔 폐허가 된 주막 건물 한 채만이 길손을 맞는다. 바로 이곳이 경기도와 충북도의 경계 지점. 옛길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녔으면 길 부분만 푹 꺼져 V자형의 계곡 모양을 이루고 있다. 여정의 마지막 지점은 돌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석교촌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미련이 남는 사람들은 318번 지방도를 따라 조선시대 석원이 있었던 돌원마을을 거쳐 충북 음성군 생극면 소재지까지 더 걸을 수 있으나 별 재미가 없다.



    문경새재에서 점촌까지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관갑천잔도.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관갑천잔도로 가는 오솔길.

    대동여지도 영남대로의 조령(鳥嶺)과 점촌 유곡역(幽谷驛) 사이의 구간. 조령은 경북 문경시에 위치한 문경새재가 바로 그곳이다. 복원된 옛 과거길과 주변 주막촌, 복원된 1관문과 3관문까지는 익히 보아왔을 터. 유곡역 터는 현재 점촌지역 유곡마을 안에 남아 있으며, 경남 물금시의 황산역과 마찬가지로 수십개 역들을 관할하는 찰방(察訪, 종3품)이 있을 정도로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곳이었다. 유곡마을에는 박문수 어사비(어사는 반드시 역졸을 부렸다)를 비롯한 각종 공덕비들이 즐비하게 서 있어 이곳이 조선의 대로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점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최근 조령과 유곡역 사이 관갑천잔도가 문경시에 의해 복원됨으로써 점촌에서 문경새재 3관문까지의 옛길이 완성됐다. 관갑천잔도는 경남 삼랑진의 작천잔도, 물금의 황산잔도와 함께 영남대로에서 가장 좁고 위험하다고 알려진 옛길. 토끼들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다 해서 ‘토끼벼랑’으로 이름 붙여진 이 길의 바닥은 많은 사람들이 애용했음을 방증하듯 반질반질 닳아 있다.

    새재를 보고 1관문으로 내려온 뒤 조령초등학교에서 3번 국도가 아닌 지방도를 걷다보면 국철 문경선의 종점인 문경역이 나온다. 기차가 일주일에 딱 한 번밖에 다니지 않는 문경선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 길은 3번 국도와 조령천 사이의 비포장길을 따라가다 조령천을 가로지르는 지점에서 3번 국도와 다시 만나 봉명교를 넘는다. 거기서부터는 문경선 기찻길이 영남대로. 금곡마을을 지나 문경선 마성역과 신현역을 지나 오른쪽으로 나 있는 비포장길을 따라가면 석현마을이 나온다. 관갑잔도로 향해오던 왜군을 막아냈던 석현성이 있던 곳이다. 현재는 문경시가 최근 복원한 석현성과 산성이 위용을 자랑한다. 성문을 지나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보면 잘 보존된 서낭당이 나오고, 그 유명한 관갑천잔도의 입구가 보인다. 잔도 역시 문경시가 복원을 해놓아 걷기에는 무리가 없으며 밑바닥에 반질반질하게 닳은 바위를 볼 수 있다. 잔도를 빠져나와 3번 국도 옆 비포장길을 따라가다 대성초등학교 인근에서 조령천을 건너야 하는데,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여기서 힘이 남아도는 사람들은 3번 국도를 따라 유곡마을까지 가서 박문수 어사비를 보면 된다.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영남대로 상에 복원된 석현산성.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국철 문경선은 영남대로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관갑천잔도는 워낙 좁고 많은 사람이 다녀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다.



    상주 서울나드리길에서 낙원역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조선시대 낙원역이 있었던 나원마을 인근의 ‘서울나드리길.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병풍산 아래의 서울나드리길.

    상주시 헌신동과 병성동의 경계 지역인 응국마을에서 영남대로의 낙원역(洛院驛)이 있던 나원마을까지의 길. 서울나드리길이라는 지명이 보여주듯, 옛길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드리길의 출발 지점은 25번 국도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마주치는 응국마을. 조선시대 상주목 원의 하나인 안빈원(安賓院)이 있던 터인 마을 입구의 지명이 바로 서울나드리다. 상주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마을 위쪽에는 ‘원두골’ ‘원앞들’이라는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래도 길 입구를 찾지 못하겠다면 마을 근처에서 서울나드리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금세 답이 나온다. 거리는 나원마을터 6~7km. 25번 국도의 성골마을(대동지지 성곡고개)을 지나 헌신동의 응국마을 서울나드리길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병풍산과 병풍산성이 나타난다. 후백제 왕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웅거했다 해서 ‘아자개성’이라고 불리는 곳. 주변에는 고분군이 밀집되어 있다.

    비포장 흙길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다리와 잠수교를 건너 조금 가면 낙원역이 있었던 나원마을이 나온다. 거기에서 아주 좁은 ‘토끼길’을 따라가다 보면 상주에서 예천군으로 가는 916지방도가 나오고 옛길은 끊어진다.

    구미 서울나드리길,해평에서 장천까지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서울나드리길.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구미문화원에서 세운 옛길 표석.

    경북 구미시 해평면 중심가를 출발해 산동면의 서울나드리마을, 물방골마을, 사창마을, 몽대마을을 거쳐 장천면 중심지까지의 옛 영남대로. 해평면사무소에 25번 국도를 타고 장터마을, 염막마을, 고리실마을을 지나친 옛길은 폐교된 해평초등학교 괴곡분교 뒷길을 통해 산동면 옥골마을로 향한다. 옥골에서 67번 지방도와 25번 국도 사이의 좁은 길을 헤치고 나아가 덕고개를 넘으면 바로 서울나드리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에는 과수원 사이로 아직도 옛 영남대로가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서울나드리길을 벗어나면 포장된 새마을길을 따라 이미 폐촌 된 물방골마을이 나오고, 고개를 두 번 넘으면 사창마을. 아쉽게도 사창마을로 향하는 영남대로 옛길은 선산컨트리클럽의 순환도로가 되어 있다. 사창마을에서 몽대마을까지의 길은 전봇대를 따라가는 논길. 여름에는 가기가 힘들다. 이 경우에는 지방도를 따라 아래 장터마을로 간다. 장터마을 안길을 따라 비포장길을 가다보면 25번 국도와 다시 만나고 이곳이 바로 장천면사무소다. 서울나드리길만 가고 싶은 사람은 구미시 산동면 옥골마을에서 출발하면 된다.

    팔조령에서 청도 납닥바위 마을까지

    경북 청도군이서면 팔조리 팔조령에서 청도읍 원리까지의 영남대로. 산적과 날짐승이 많아 반드시 여덟 명이 모여야 고개를 넘는다는 뜻의 팔조령(八助嶺) 옛길은 현재 나무덤불이 가득하고, 경사가 가팔라 걷는 것을 포기하는 게 좋다. 조선시대까지 우마차가 다녔던 길이니 죽을 각오로 걸으면 갈 수도 있겠지만 일반인들은 차로 팔조령터널을 지난 다음 칠곡초등학교에서 옛길을 거슬러 팔조리 안마을까지, 즉 고갯마루까지 걸어갔다 오는 게 상책. 팔조리 안마을 고갯마루에는 아직도 수백년 된 마을의 서낭당과 당산나무가 남아 있어 옛길의 풍취를 더한다. 비록 걸어 내려오지는 못할망정 팔조령 꼭대기는 차를 타고서라도 꼭 올라가볼 일이다. 고개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청도군의 풍광은 한마디로 ‘일품’ 그 이상이다. 옛길을 볼 수 있음은 물론.

    팔조리를 빠져나온 옛길은 30번 국도를 따라 샛별장터가 있는 양원리로 들어가 청도읍성까지는 20번 국도를 탄다. 그 중간에 여름이면 연꽃이 만발한 연지와 양반집 규수들이 달을 보며 놀았다는 군자정이 있고, 청도읍성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영남대로임을 알리는 비석거리가 있다. 청도읍성은 국내 읍성 중 그래도 흔적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읍성으로 마을 집들의 담벼락이 성 돌로 된 것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석빙고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 옆으로 영남대로 옛길 흙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길은 옛 이 고을 이방 김응삼의 공적을 기리는 공덕비와 옛 우물이 있는 주막삼거리(삼거리마을)와 송복마을 옆을 거쳐 청도 군청 앞 비포장길로 향한다. 청도역 뒤편까지 이어진 비포장 옛길은 경부선 철도를 가로질러 밀양으로 가는 20번 국도와 합쳐진다. 바로 이곳이 그 유명한 납닥바위마을. 납닥바위는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 수백명이 한곳에 앉아 쉴 수 있을 만큼 넓었다 하나 지금은 인근 식당의 마당에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청도 원리에서 밀양 유천 가는 길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일제가 명당의 지기를 끊기 위해 노루 목에 해당하는 고개를 끊고 철도를 놓았던 과거의 모습.

    경북 청도군 청도읍 원리 제생원(濟生院) 터(현재 원동교회)에서 유호리(유천마을) 유천역 터를 지나 밀양시 상동면 옥산리 관마을까지의 길. 제생원은 영남대로에서 가장 큰 관리들의 숙박시설로 주막촌이 형성돼 원리에는 아직 주막거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주막거리를 나온 옛길은 경부선 철도 오른쪽으로 과수원과 논 사이로 난 길을 가다 25번 국도를 만나 경부선 신기역까지 간다. 신기마을을 지난 뒤 왼쪽으로 거연리 자연 마을이 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청도천 제방의 농로가 바로 영남대로 옛길이다. 농로로 보존된 옛길은 신도1리와 신도2리를 거쳐 조들 앞에서 25번 국도와 합쳐진다. 조들마을은 조장자(趙長者)라는 부자가 살던 마을로 들 모두가 그의 소유였다 한다. 그곳에서 잠수교로 청도천을 건넌 옛길은 새마을길을 따라 경부선과 나란히 가면서 유호리에 있는 노루목이란 작은 고개를 넘는다. 일제가 명당의 목을 자르기 위해 노루의 목 부분을 절개하고 철도를 놓았지만 지금은 폐도가 되면서 오히려 옛길이 그대로 남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영남대로에서 가장 아름다운 징검다리가 나온다. 하지만 청도천의 지류인 유천의 물이 많은 날은 볼 수 없으며 이럴 때는 옆의 유호교를 이용해서 길을 가야 한다. 옛길은 도 경계선을 넘어 경남 밀양지방 최대의 역이자 찰방이 있었던 유천역 터 관마을(객사 복원)로부터 경부선 철도를 왼편으로 끼고 가다 폐도가 된 경부선 단선 철도길로 이어진다. 이곳이 바로 밀양시 산동면 옥산리. 길은 일제시대 터널을 통과해 지금의 경부선 철도를 건너 철도와 나란히 달리는 지방도와 합쳐져 밀양 시내로 향한다.

    삼랑진 작원관에서 물금 황산 찰방까지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경부선 삼랑진역에서 양산시 물금읍 물금역까지의 옛길. 오른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왼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천태산 절벽이 가로놓인 옛길. 때문에 길은 좁고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이 둘 사이에 경부선 철도까지 놓였으니, 오히려 위험함으로 따지면 현재가 더하다. 남아 있는 옛길은 경부선 철길과 낙동강 사이에 존재하거나, 아니면 천태산 줄기 벼랑과 철로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걷는 데 온 신경을 쏟지 않으면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영남대로, 즉 조선의 대로를 따라 놓은 이유도 바로 그 경로가 가장 가까운 길이었기 때문. 그래서 조선은 이 길에 심혈을 기울였다. 영남대로에서 가장 많은 역을 거느리고 호령했던 황산찰방이 현재의 물금역 인근(물금취수장)에 있었고, 삼랑진에는 작원관(현재 복원되어 있음)을 만들어 몰려오는 왜군들을 그곳에서 참살했다. 길의 왕래가 많았으므로 하주막, 신주막(현재의 신전마을 인근)과 같은 주막촌도 곳곳에 있었다.

    경부선 삼랑진역 뒤편에서 시작한 영남대로는 복원된 작원관을 거쳐 버려진 기차 터널을 통과한 뒤(작천잔도) 신라 왕이 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떠났다는 용당나루와 그것을 기념해 세워진 가야진사에서 한숨을 돌린다. 용당나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낙조는 한 폭의 그림이다. 양산시 원동면 원동마을을 거쳐 신주막굴을 통과하면 대규모 주막촌이 있었다던 서룡리 ‘벌등(뻘등)’에 도착하고, 드디어 그 무섭다는 황산잔도. 수많은 취객과 평민이 낙동강에 떨어져 죽었다는 그 길. 낙동강과 경부선 철길 사이에 벼랑처럼 남은 그곳에는 기적처럼 부사 공덕비가 이곳이 옛길이었음을 알려준다. 황산잔도를 빠져나오면 옛 황산찰방(황산역)이 있었던 물금취수장까지 엄청난 갈대숲과 보리밭이 길손을 반긴다. 가을에 걸으면 운치가 극에 달하는 옛길이지만, 침략의 길이자 서민을 괴롭히던 길임을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온다.

    호남대로

    진위에서 칠원까지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전형적인 옛길의 풍모를 자랑하는 동막고개.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칠원의 옥수정은 인조가 그 마을을 지나다 물맛에 반해 ‘옥관자’ 벼슬을 내린 데서 유래했다.

    대동여지도에 나와 있는 ‘진위’와 ‘갈원’ 사이의 옛길. 오늘날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칠원(七院)마을’은 대동여지도나 대동지지에 ‘갈원(葛院)’으로 표시돼 있다. 마을 사람들은 지명 변경 유래에 대해 왕이 갈원에서 하루를 쉬다가 칡나무로 인해 병이 생기자 칡을 뜻하는 지명 ‘갈원(葛院)’을 일곱 칠(七)자 ‘칠원(七院)’으로 고쳐 부르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전하는데, 역사적인 기록은 따로 없다. 어쨌든 오늘날 이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칠원, 혹은 원칠원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때 800호가 넘는 마을 규모를 자랑하며 평택시를 품었던 진위군의 옛 동헌은 현재 진위초등학교로 바뀐 상태. 이 앞에서 길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데 그 가운데 서쪽에서 들어와 남쪽으로 빠지는 길이 삼남대로다. 이 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야트막한 언덕이 대동여지도상의 ‘소백치’인 동막고개. 갖가지 나무 사이로 쭉 뻗은 동막고개의 외길은 전형적인 옛길의 풍모를 자랑한다. 가을이면 소복이 쌓인 낙엽이 낭만적인 정취까지 더한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 고개를 허물고 자동차도로가 뚫릴 예정. 올 가을이 이 지역에서 옛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듯하다. 동막고개를 넘어 칠원에 도착하면 인조가 그 마을을 지나다 물맛에 반해 ‘옥관자’ 벼슬을 내렸다는 우물 ‘옥수정(옥관자정)’을 볼 수 있다.

    여산에서 삼례까지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소나무가 울창한 언덕 옆 삼남대로.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노인정으로 이용되고 있는 여산동헌.

    대동여지도의 ‘여산’에서 ‘삼례’에 이르는 길. 전북 초입부터 이어지는 이 길에는 춘향전의 이몽룡과 방랑시인 김삿갓의 역사가 살아 숨쉰다. 시작 지점은 전북유형문화재 제93호 여산동헌. 현재는 노인정으로 쓰이고 있는 동헌 아래쪽으로는 1868년 무진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갖은 박해를 받다 결국 죽음을 맞은 백지사 순교 성지도 있다. 이곳에서 출발해 1번 국도 서쪽편의 골목길로 들어서면 바야흐로 삼례로 향하는 옛길이다. 길을 따라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가 있는 원수리 새술막마을을 지나면 어느새 김제시 왕궁면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은 과거에 급제한 이몽룡이 금의환향하면서 쉬어 갔던 곳. 옛길은 일제 시대에 생긴 왕궁저수지 안에 수몰돼 사라졌지만, 이몽룡의 행차 길 위에 살아 숨쉬는 역사는 여전히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저수지 옆 숲길로 옛길의 자취를 밟아 걸으면 금광마을에 다다르는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옛길의 운치가 난다. 소나무가 울창한 언덕 옆으로 쭉 뻗은 삼남대로다. 과거에는 도적이 출몰했을 법한 인적 드문 숲길. 그러나 지금은 평화롭고 아늑하기만 하다. 송림의 끝에는 험한 길을 뚫고 나온 나그네를 반겨주었을 옛 주막촌 통정마을이 있다. 여기부터는 버스도 다니는 시멘트 포장도로. 1박2일 코스를 생각한다면, 소나무 숲이 나오기 전에 한 번 쉬어가는 것이 좋다. 삼례역을 지나 완주 팔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비비정(飛飛亭)에서 길을 맺는다.

    정읍에서 장성까지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장성 갈재에 있는 갈애바위.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대동여지도의 ‘입암’에서 노령을 넘어 ‘장성’에 이르는 길. 입암마을 토박이들은 자신의 고장을 ‘천원’이라 부른다. ‘입암(笠岩)’은 갓 모양 바위를 가리키는 말로 전국 각지에 흔한 지명이기 때문. ‘입암’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역에는 어느 곳에나 우뚝 솟은 갓 모양 바위들 사이로 길이 뻗어 있다. 전북 정읍시 입암면에도 갓 모양 바위가 많은데, 옛길은 1번 국도의 동쪽 골목, 입암초등학교 옆으로 지난다. 시작은 좁은 골목이지만, 길을 따라 걷다보면 갈애의 전설이 담겨 있는 노령(장성 갈재)이 나온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름다운 여성의 눈웃음치는 모양이 새겨진 갈애바위(일명 눈썹바위). 노령 고개 아래 목란마을에 전해오는 전설 한 토막에 따르면 이 마을 한 주막집 주인의 딸이던 갈애는 빼어난 미모와 가무, 시문 실력으로 유명했다. 이 때문에 노령 넘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그의 매력에 빠져 며칠씩 눌러앉거나 아예 서울행을 포기하기 일쑤였다. 이 소문을 들은 임금이 ‘계집 하나 때문에 나라의 동량이 다 사라지겠다’며 자객을 보내 갈애를 죽였는데, 갈애가 쓰러지자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고 이상한 소리가 나는 바람이 불면서 목란마을 옆 바위가 갈라져 사람이 웃고 있는 표정이 되었다고 한다. 이 전설이 담긴 것이 갈애바위다.

    목란마을에서 고개 넘어 기찻길을 따라 걸으면 이 길의 종착지인 백양사역에 다다른다. 걷는 굽이굽이가 내장산 자락이라 가을철에는 기막힌 단풍도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선암에서 나주까지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싱그럽게 뚫린 나주 숲 속 하이웨이.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무내미재.

    대동여지도의 ‘선암’에서 ‘나주’까지 이르는 옛길. 하남산업단지 아래쪽에 있는 하남초등학교에서 길이 시작된다. 하남에서 선암으로 가려면 지금은 인적이 드문 무내미재, 절골마을을 지나야 하는데 광주 시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바깥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평화로운 옛길이 펼쳐진다. 사람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은 선암부터. 삼국시대부터 교통의 요지였던 선암마을에는 지금도 옛 역 건물과 영화롭던 시절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해방 전까지 큰 장이 섰던 ‘구장터’마을을 지나 영산강의 지류인 황룡강을 건너면 길은 평동으로 향한다. 옛 평동면사무소가 있던 옥동마을을 지나는 비탈길은 환상적인 소나무길. 그린벨트 구역이라 쭉 뻗은 길 양쪽으로 울창한 숲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솔밭을 지나면 ‘배의 고향’ 나주 땅이다. 옛길은 ‘밤나무정(율정점)’이라는 삼거리마을에서 지방도와 합쳐지는데, 이곳은 천주교 박해로 유배를 떠나던 정약용, 약전 형제가 각각 흑산도와 강진 유배지로 떠나며 마지막으로 함께 지낸 곳이다. 조선시대 유배의 통로였던 삼남대로의 역사를 묵묵히 증언하는 길인 셈이다. 전남의 문화유적이 집중돼 있는 나주시청 2청사까지 걸으면 40km, 1박2일 코스가 된다.

    영암에서 월남까지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누릿재 가는 길.

    길 따라 가득한 역사의  흔적

    영암 월출산.

    대동여지도의 ‘영암’에서 ‘월남’에 이르는 옛길. 전남 영암읍 영암군청 옆 영암터미널에서 걷기 시작해 강진읍 월남리 성전북초교에서 길을 맺는다. 이 길의 백미는 여정의 대부분이 월출산국립공원 안에 속해 있어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점. 특히 강진과 영암의 경계를 잇던 누릿재 옛길을 걷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강진과 영암의 경계에는 이보다 50여m 낮은 불티재가 있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주로 누릿재 길을 걸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소장수들은 소를 몰아 지형이 가파르지 않고 밋밋한 이 고개를 넘어 영산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와 풀이 우거져 폐도의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사람의 발길에 깊이 파인 흔적은 소나무 그늘 사이로 여전히 남아 있다. 누릿재 위에서 영암 들판을 내려다보며 길을 걷다 13번 국도와 합쳐지는 지점에 오면 이제 강진군 신원마을이다. ‘남도 답사 일번지 강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아치가 있는, 본격적인 답사의 거리다. 모전석탑과 진각국사비 등 2점의 유물이 남아 있는 월남사 터가 볼거리. 이제는 폐교가 된 성전북초교에서 길을 맺는다.

    ●사진 및 지도 관련자료 제공 영남일보 사진부 손동욱 기자(영남대로 일천리 시리즈)/ 도보답사 전문 사이트 ‘자유촌’ 촌장 김재홍씨(www.jayuchon.com)/

    도도로키 히로시씨(‘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 ‘삼남대로 답사기’ 저자)/ ㈜성지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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