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6

2012.02.27

대통령과 대통령직의 차이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2-02-24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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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과 대통령직의 차이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트위터.

    먼저 사족부터. 저는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팩트는 신성하다’고 믿는 상당수 언론인이 그렇듯, 나꼼수 출연자들이 팩트와 팩트를 엮어 거대한 음모론으로 이어 붙이는 일련의 패턴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편입니다. 모든 사안을 정파적 프레임 안에서 해석하는 태도도 제 취향에는 맞지 않고요.

    그런데 이건 얘기가 좀 다르다 싶습니다. 2월 18일 국방부가 하사관 이상 간부에게 스마트폰의 정부비방 앱과 친북 앱의 문제점을 교육한 뒤 자진삭제를 유도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를 보고 든 생각입니다. 이 ‘정부비방 앱’에 나꼼수를 포함했다는 거죠. 앞서 1월 31일에는 육군 모 부대장이 ‘스마트폰의 종북 애플리케이션 삭제 강조 지시’라는 공문을 부대원에게 내려보내 삭제 여부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도록 했다는 기사가 나온 바 있습니다. 2월 17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고 군통수권자를 비방하는 내용의 앱은 군의 정신전력을 좀먹습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체제 부정’과 ‘통수권자 비방’이 같은 선상에 있다는 국방부의 인식입니다. 혹은 ‘종북’과 ‘정부 비방’을 동일시하는 태도라고 봐도 좋겠죠. ‘대통령 비방을 자주 들으면 장병이 최고통수권자를 우습게 생각할 테고, 그럼 지휘체계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얘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군이 존중해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대통령직에 부여한 통수권자로서의 직위지, 대통령 개인이 아닙니다. 이는 대선이 다가오면 미국 언론에 쉴 새 없이 등장하는 ‘Presidency’와 ‘President’의 개념 구분을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민주국가의 군대가 대통령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건 그가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국민의 뜻을 위임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에게 충성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로서의 대통령직이지, 대통령 개인이 뛰어나거나 훌륭하거나 청렴한 인물이기 때문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대통령직의 헌법상 지위를 부정한다면 체제에 대한 위협일 수 있지만, 대통령 개인을 비방하는 것은 그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오히려 위험한 것은 이러한 개념 구분이 부정 당하는 경우입니다. 대통령에 대해 군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통수권 존중이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체제 부정’이 되는 셈이니까요. 대통령이 남자든 여자든, 정치적 성향이 나와 맞든 안 맞든, 고향이 어디든, 군대를 다녀왔든 아니든 상관없이, 군복을 입고 있는 한 태도가 한결같아야 하는 근거는 바로 이 개념 구분에서 나옵니다. 이를 혼동한 국방부의 조치가 제 눈에 나꼼수보다 훨씬 위험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대통령과 대통령직의 차이
    국방부가, 혹은 김관진 장관이 이렇듯 원론 수준의 문제에서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문민통제에 대한 우리 사회와 군의 인식이 여전히 성숙하지 못하다는 방증이겠지요. 지금 필요한 것은 나꼼수 앱 삭제가 아니라 이 원칙이 얼마나 소중하고 절대적인 것인지 각성하는 작업일 듯합니다. 온 장병이 24시간 대통령 비방만 듣고 살아도 통수권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가 훨씬 좋은 나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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