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4

2011.09.19

위키리크스와 스파이

  • 황일도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09-16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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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리크스와 관련해 지난 두 주간 쏟아진 기사를 지켜보며 여러 차례 당혹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많은 이가 미국 측 인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눈 것 자체만으로 ‘스파이 행위’라는 비판을 받고 있더군요. 물론 위키리크스의 전문이 한미 양국 당국자들 사이에 오간 대화를 폭로함으로써 일반 유권자로 하여금 사건의 이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줬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운 순기능입니다만, 글쎄요. 그들이 과연 스파이일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저 또한 주한 외국 대사관 관계자들을 꽤 많이 만나는 편입니다(요즘 서울에서 근무하는 외국 외교관은 대부분 한국어를 꽤 잘합니다). 국방개혁이나 대북문제 등 한국 정부의 최근 안보 관련 정책 동향이나 정부 안에서 벌어지는 파워게임에 대해 물어오면 가급적 아는 대로 솔직하게 답하곤 합니다. 왜냐고요? 그래야 저도 백악관이나 국무부, 펜타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고, 정보의 가장 큰 대가는 정보입니다. 남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알려면 내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들려줘야 하는 법입니다. 물론 제가 만난 외교관들은 면담내용을 기록하면서 자신이 제게 해준 얘기가 무엇이었는지 적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가 기사를 쓰면서 취재원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었는지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들이 만난 한국 당국자들 또한 십중팔구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혹 정보 외에 다른 반대급부도 있지 않겠느냐고요? 유감스럽게도(?) 전 세계 어느 나라든 공무원이 쓸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죠. 100%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돈보다 값어치 높은 정보가 있는데 왜 굳이 지갑을 꺼내 들겠습니까.

    위키리크스와 스파이
    물론 만남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위키리크스 전문의 상당 부분은 한국의 몇몇 당국자들이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리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보를 주고받는 사람의 자질과 양식이겠죠. 따지고 보면 외교란 본디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미소 띤 얼굴 뒤에 숨은 냉철한 계산 같은 것.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두고 비판해야지, 미국 측 당국자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아는 여자와 점심 좀 먹었다고 불륜 소리 들으면, 솔직히 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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