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0

2010.08.16

자식은 그렇게 부모 곁을 떠나는 거야!

이안 감독의 ‘테이킹 우드스탁’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10-08-16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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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은 그렇게 부모 곁을 떠나는 거야!
    세상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족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부모 없는 아이는 부모가 있기만을 바랄 것이고,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는 좀 더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하고 생각해봤을 것이다. 사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난들 부모와 형제에 대한 불만은 나오게 마련.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족만큼 소중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이안 감독의 ‘테이킹 우드스탁’은 세계적인 록 축제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그린 영화지만 페스티벌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한 가족의 이야기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엄마 이야기’에서 시작해 ‘엄마 이야기’로 끝난다.

    영화가 시작되면 등장하는 초로의 여인은 청소도 되지 않은 방을 8달러에 팔고는 환불 불가를 외치며 싸운다. 호텔이라면서 비누도 1달러, 타월도 1달러 내고 쓰라고 우겨대기까지 한다. 설상가상 모기지론을 연장해달라고 부탁하러 간 은행에서는 유대인 차별이니, 홀로코스트니 하며 도리어 대출 담당직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한마디로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엄마다.

    이런 엄마의 아들 엘리엇이 집안의 다 쓰러져가는 모텔을 되살리고자 돌아온다. 미술학도인 그는 사비를 털고 돈을 빌려 다 죽어가는 모텔을 심폐소생 중이다. 주목할 것은 엘리엇이 이처럼 부모님의 모텔에 애쓰는 까닭이다. 엘리엇은 ‘샌프란시스코든 뉴욕이든 대도시로 가 네 삶을 찾으라’는 누나의 충고에 이렇게 대답한다. “사실 부모님은 나를 더 사랑하잖아.” 서양인의 외모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너무도 동양적이며 특히 한국적인 대답이기도 하다.

    모텔을 살리기 위해 애쓰던 엘리엇은 이웃 마을에서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취소됐다는 사실을 알고 나름의 방법을 고안해낸다. 그것은 바로 마을의 넓은 초원을 이용해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유치한다는 것.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지만 사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좋기만 한 소식은 아니다. 사람들은 히피들이 마을을 초토화할 것이라며 지레 겁을 먹는다. 하지만 엘리엇은 이런저런 반대를 해결하며 드디어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여는 데 성공한다.



    페스티벌 덕분에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활기가 넘친다. 길이 막혀도, 방이 없어도 구애받지 않고 그저 음악만 있으면 좋다고 사람들은 마을로 모여든다. 그리고 이 분위기 속에서 엘리엇은 진정한 자유와 만나게 된다.

    페스티벌 저녁 엘리엇은 이미지의 황홀경에 빠져 지금껏 체험하지 못했던 세계에 닿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어쩌면 부모님에 대한 의무감이 자신을 묶어두는 무거운 자물쇠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부모가 자신을 놓아주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분리돼 나와야 할 때가 지났음을 알게 된 것이다.

    ‘색, 계’ ‘브로크백 마운틴’ 등 18세기 시대극부터 슈퍼히어로 영화까지 장르와 시대를 불문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안 감독의 행보에 이 작품은 일종의 쉼표 구실을 한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떤 영화보다 이안의 속마음이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의 남녀가 함께 몸을 씻는 호숫가와 총천연색으로 뭉개진 페스티벌의 밤, 그 평화로운 자유야말로 이안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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