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0

2009.11.10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내시경

인터넷 강국, 女權 신장, 자궁암 급감 등 오늘 우리 삶의 키워드 담겨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아파트에 미치다-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저자 sangin@snu.ac.kr

    입력2009-11-05 09:4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내시경

    10월18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광장 힐스테이트’ 모델하우스에는 7000여 명이 아파트 구조를 살펴보기 위해 100m 이상 줄을 서는 등 하루 종일 붐볐다.

    산업혁명 이후 절박해진 노동자 계급의 주택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태동한 아파트. 일제 강점 직후 일본인 육체노동자들을 위한 기숙사 형태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바로 그 아파트가 오늘날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뒤덮고 있다. 얼마 전 울릉도에 국민임대아파트를 건설하면서 대한주택공사는 그것이 ‘독도 지키기’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는데, 이쯤 되면 아파트는 국가 대표 브랜드이자 주권의 상징인 셈이다.

    아파트의 의미는 단순히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살거나 즐겨 찾는 집의 유형이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암호이자 한국 현대사를 해석할 수 있는 일종의 내시경이다. 아파트를 알면 한국이 보이는 것이다. ‘아파트의 나라’가 되면서 한국인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여성들의 자궁경부암이 1980년대 후반 이후 급감했는데, 이는 아파트에서 매일 샤워나 목욕을 할 수 있게 된 덕분이라는 것이 의료계의 해석이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세계적 인터넷 강국이 된 것도 아파트라는 현대식 집합주택의 보편화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아파트는 국내 미술시장의 판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과거 한옥시대의 미술시장에서는 서예나 사군자(四君子) 그림이 으뜸이었다. 동양화의 인기는 양옥 단독주택 시절까지도 지속됐다. 하지만 아파트가 늘어가면서 대세는 추상화 계열의 서양화로 급변했다.

    한옥은 사군자, 아파트는 서양화

    때로 아파트는 그 자체가 권력이다. 달동네가 고급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되면서 그 지역의 정치 성향이 돌변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공약만으로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지기도 한다. 양성 평등이라는 측면에서도 아파트는 할 말이 많다. 아파트는 쉽게 집을 비우고 외출할 수 있는 구조라 주부들은 더 이상 ‘안사람’이나 ‘집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아파트는 여성 노동력을 집 밖으로 해방시킨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여권(女權) 신장이 이뤄진 결정적 계기 또한 이른바 복부인들의 아파트 투기 성공이 남편의 체면을 납작하게 만든 데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실내에서도 아파트는 남성들을 자꾸만 작게 만든다. 남성 전용의 사랑방이 사라져 안방이나 거실에 흡수되고 말았다. 베란다로 쫓겨나가 담배 피우는 궁상, 바로 이게 아파트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남자들의 현주소다. 좌식생활이 입식생활로 바뀌면서 식탁이나 침대, 소파 같은 신체가구가 일반화한 것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반길 일이다.

    과거에는 사람이 고정인 채 이불이나 밥상이 이동했는데, 붙박이는 남성이고 운반자는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 아니었는가. 아파트가 한국의 대표적 주거양식이 된 지금, 사람들이 아파트에 대해 갖는 감정은 양면적일 때가 많다. 좋아하면서 싫어하고 싫어하면서 좋아하는 식이다.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닭장’ 같은 콘크리트 공간에서 따뜻한 ‘이웃사촌’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딴에는 그렇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거나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이 우리 대부분의 자화상이다. 아파트의 확산과 더불어 문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과거 골목길이 수행하던 다양한 기능을 오늘날 엘리베이터가 대신해줄 리 만무하다. 그러나 근린공동체 실종의 원인을 죄다 아파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속단이 아닌가 한다. 오히려 그것은 압축적 고도성장 과정에서 한국인의 평균 거주기간이 유난히 짧아진 탓일 성싶다.

    최근 자료를 보면 아파트가 많은 서울은 평균 주거기간이 5.4년이고,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적은 군 단위 지역은 15.7년이다. 또한 주거이동 빈도는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높은데, 이는 재산증식과 어느 정도 관련 있어 보인다. 나무를 자주 옮겨 심을수록 숲을 만들기 어려운 생태계의 이치가 어디 인간세상이라고 예외겠는가. 아파트에 미친 한국을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아파트는 20세기 후반 이후 우리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대표적 주택유형 중 하나일 뿐이며, 수많은 사람이 그것을 선호하는 데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파트 전성시대가 세세손손 지속되리라 예상하거나 그렇게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온당한 일은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세상과 사회가 어떠할지에 따라 한국인의 주거양식은 얼마든지 변화할 것이며 또한 그래야 한다. 아파트에 대한 일방적 예찬이나 반사적 비판은 미래의 주거문화를 구상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운 정과 고운 정이 함께 든 아파트의 공과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만이 대안적 주거문화를 고민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 아파트의 미래

    신도심 아파트, 반세기 이후 사라질 듯 … 구도심 휴먼 주거형태 뜬다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내시경

    경기도 용인시 인근에 조성된 전원마을.

    혹자는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유독 아파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사회적 필요성 때문이다. 1960~70년대에 도입된 아파트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근대 산업화시절 근로자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부족해진 주거지의 대체재였다. 하지만 70년대 들어 한국의 아파트 건축은 ‘맨션’으로 명명된 고급 주거개념의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그때까지 우리의 전통 주거문화는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당시의 건축기술로는 아파트가 지닌 난방, 상하수도 설비 같은 장점을 전통 주거건축이 수용하기에는 커다란 경제적 부담이 따랐기 때문. 따라서 당시 아파트는 대다수 주부에게 매력 있는 주거공간이었다.
    쾌적한 환경도 한몫했다. 199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은 대중의 삶의 패턴을 바꿔놓았는데, 사람들은 특히 주거지 근처에 넓고 쾌적한 공원이 있는 것을 선호하고 주차장 문제 등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우리나라 도시구조는 자연발생적이면서 일제식민 치하에서 계획된 신작로 개념의 도시구조로, 구(舊)도심지의 낙후한 주변 환경은 더 이상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도심지 외곽에 건설되는 신도시 개념의 아파트가 그 대안이 됐으나,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 국가 정책적 요인도 있다. 도시의 팽창은 수평적 팽창에 한계점을 지닌다. 결국 수평적 팽창에 수직적 팽창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건설업은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성장 원동력 중 하나였으며 지금도 한국 경제의 내수경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업종이다. 따라서 포화된 도시로 인한 정부 주도의 이주정책은 건설 경기의 활성화와 함께 단기간 내의 신도시 건설을 요구했고, 이를 수용할 주거 형태로 결국 초고층 아파트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정부 주도로 전 국민을 상대로 확산시키는 아파트 모델이다.그렇다면 우리의 아파트 문화는 언제까지 쾌속 질주할까. 우리보다 도시발전이 앞선 유럽 선진국의 사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도시발전 제1기는 열악한 환경의 구도심에서 도시 외곽의 신도심 아파트단지로 이주하는 단계다. 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행형’이다.
    제2기는 아파트단지를 떠나 더 외곽의 단독주택으로 옮겨가는 단계다. 현재 대도시를 중심으로 개인 단위의 이주가 시작됐으나, 국가정책 사업으로 전기·수도·가스·도로 등 기반시설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
    제3기는 구도심을 재생하고 재개발해 모든 문화 여건이 완비된 구도심으로 회귀하는 단계다. 현재 한국의 구도심 재개발은 민간 주도의 개발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도심 외곽의 신도심 아파트단지와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는 사업으로 그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도심 재생을 위한 재개발사업은 정부기관의 주도로 과도한 밀도를 배제하고 도시 경관과 쾌적한 주변 환경이 어우러지는 휴먼스케일(Humanscale·인간척도)에 입각한 도시계획 입안이 선행돼야 한다.
    제4기는 구도심의 주거지와 외곽에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생활하는 단계다. 모든 문화 여건이 완비된 구도심의 주거지는 학업 혹은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하는 자녀 세대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주거공간이다. 그리고 외곽의 단독주택 거주를 선호하는 부모 세대를 위해서는 외곽에서 도심으로 통하는 방사형의 고속도로 건설이 선행돼야 한다.
    이와 같은 이행과정은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의식과 행태의 변화만이 불러올 것이다. 현재 철근, 콘크리트를 재료로 건설 중인 신도심의 아파트단지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상 반세기를 견디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반세기 후에는 없어져버리는 도시가 된다는 의미다. 결국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에게는 그들의 기억과 추억이 같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반면 구도심은 수많은 시간과 함께 공존하고 발전해온 인간의 역사다. 그리고 그 도심 안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숨결이 깃들어 있다. 도심 재생은 그 같은 숨결의 자취를 찾아서 휴먼스케일에 입각해 진행해야 할 것이다.
    김인호 조선대 건축학부 교수 mijinho2000@chosun.ac.kr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