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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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 김상현의 ‘서른 잔치’

용도폐기 직전서 KIA 수호신으로 … 필요할 때 한 방 펑펑, 올 시즌 MVP 도전

  • 윤승옥 스포츠서울 야구팀 기자 touch@sportsseoul.com

    입력2009-08-19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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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프로야구 팬들은 KIA의 고공 상승세에 관심을 집중하고, 그 중심에 선 김상현은 조명을 독차지하고 있다. 김상현은 여차하면 만루 홈런을 날리고, 때론 3타석 연속 홈런을 뽑아내는 괴력으로 홈런과 타점 등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올 시즌 MVP 후보로 급부상 중이다. 그의 맹활약으로 소속팀 KIA도 10번째 우승을 기대하는 등 이상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김상현이라는 이름 석 자를 두고 떠들썩한 건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폐기처분 위기에 놓였던 왕년의 유망주가 쓴 극적인 반전 스토리가 핵심이다. 김상현 버전의 미운 오리새끼 이야기가 동료 선수는 물론 팬들에게도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김상현(KIA)의 존재는 ‘곤살레스’라는 별명으로만 알려졌다. 곤살레스로 대표되는 중남미 선수 같은 외모와 엄청난 힘 때문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 스토리

    그런데 그간 1군 무대에서 이름을 뚜렷하게 새기지 못했다. 이상적인 체격에서 뿜어져나온 힘은 엄청났지만 스윙에 약점이 많았고, 수비까지 불안해 늘 유망주로만 분류됐다. 유망주도 어려야 그런대로 제값을 받는데, 그는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올 초 그는 ‘칼’을 맞았다. 전 소속팀인 LG가 쓸모없다며 KIA로 트레이드를 한 것.

    LG는 지난해 말 FA(프리에이전트) 시장에서 히어로즈 출신 정성훈을 영입했다. 정성훈은 김상현과 같은 3루수. LG 측은 트레이드 결정과 관련해 “데리고 있어봐야 쓸데가 없고,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에 필요한 선수를 보강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상현은 두 번째로 정성훈에게 치였다. 2000년 해태에 입단한 그는 1999년 입단해 자리잡은 정성훈에게 밀려 2002년 LG로 떠나야 했다.



    김상현은 “KIA로 다시 트레이드된 직후 ‘내 야구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최근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유망주로만 머물다 나이가 꽉 차 이적한 선수는 자리를 잡기가 힘들다. 잘해야 대타 정도로 나서다 연말에 소리 소문 없이 방출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

    그러나 그를 영입한 KIA의 생각은 달랐다. 반전 스토리는 여기서 시작한다. KIA는 올 초 외국인 선수 둘을 모두 투수로 뽑았다. 타선의 약화가 염려되기는 했지만, 버틸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시즌 초 이용규 등 주력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한 데다, 거포라고는 최희섭뿐이어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수비는 약하지만 ‘한 방’이 있는 김상현을 데려오기로 전격 결정했다. ‘잘 쓰면’ 효과가 클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결과적으로 조범현 감독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김상현은 시즌 초반엔 4번 최희섭 바로 뒤에 위치해 반사이익을 챙겼지만, 이젠 상대가 최희섭보다 더 겁을 내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가 됐다.

    시즌 목표라던 ‘홈런 20개’는 이미 넘어서 선두를 노릴 수준이고, 타점은 가장 많고, 타율도 3할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이적생 MVP’도 가시권이다. 데뷔 10년 만에 ‘서른 잔치’가 시작된 것이다. 김상현은 “과거에 훈련하다 구토를 할 정도로 땀을 많이 쏟았지만 실력이 늘지 않아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면서 “10년 만에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벼락같은 축복에 감격스러워했다.

    가능성 하나 믿고 김상현을 데려온 KIA 역시 횡재한 기분일 듯. 그렇다면 ‘어떻게 잘 썼을까’라는 문제로 들어가본다. 그의 급부상은 ‘재발견’을 통해 가능했다. 김상현 본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야구인은 기량을 탓했지만, 그간 엄청난 훈련으로 기량은 충분히 숙성돼 있었다. 오로지 나약한 마음이 그 기량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KIA가 이걸 파악했다. ‘체력은 좋은데 기술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을 뒤엎고, ‘기술은 좋지만 체력이 문제다’라고 외치며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히딩크식 처방과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황병일 타격코치와의 재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2003년 LG 2군 타격코치로 처음 김상현을 만났던 황 코치는 그의 능력과 이면에 자리잡은 여린 심성을 잘 알고 있었다.

    히딩크식 처방으로 자신감 빵빵

    그래서 황 코치는 이번 트레이드 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와 다시 만나자 두말할 것 없이 ‘자신감’을 주문했다. 김상현은 조범현 감독 등 코칭스태프 전체가 믿어주자 스스로에 대한 불신을 접고 숨어 있던 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황 코치는 “이적 일주일 만에 자세가 바뀌어 나도 놀랐다. 김상현은 우직하게 우리의 말을 믿고 따랐고, 무서운 속도로 진화해 감춰놓았던 능력을 내보였다”고 밝혔다.

    김상현도 “이전엔 못 치면 불안했고, 실수하면 벤치의 눈치를 봤지만 KIA로 이적 후 달라졌다. 수비 실책을 하면 공격으로 만회하겠다고 나서니, 없던 집중력도 생겼다”고 말했다. 물론 기술적인 처방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특별한 족집게 과외 수준이라기보다는 과거 히팅포인트가 좋았을 때 보였던 자세를 약간 수정한 정도다.

    김상현은 “야구를 포기하려고까지 했는데 지금 이렇게 변했다. 아직 자만은 이르지만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후배, 팬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조직에게는 사람을 보는 눈과 쓰는 지혜, 믿음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바가 있다. 개인에게는 자신감의 중요성을 알리고,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유효하다는 격언을 되새기게 한다. 인연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인생에도 만루 홈런은 있다는 것을 김상현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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