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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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결합을 넘어 화학적 결합으로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8-13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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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정보통신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가 3월1일부터 KAIST ICC(IT Convergence Campus)로 새롭게 출발합니다”라는 팝업창이 뜹니다. 한때 한국 정보통신(IT)을 이끌 고급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주목받았던 ICU가 설립 1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1998년 ICU는 지금은 없어진 정보통신부와 KT 등 국내 IT업체들이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공동 설립한 대학입니다. 국내 고급 IT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당찬 포부와 달리, ICU는 설립 초기부터 많은 견제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KAIST처럼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것이 아니라 사립학교법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은 사립학교를 설립할 수 없음에도 정보통신부 및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정보화촉진기금을 지원받는 기형적인 구조였습니다. 당시 국회에서는 “사립대학인 ICU에 매년 예산 지원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KAIST가 있는데 굳이 ICU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정체성 논란은 양교 통합 논의에 불을 지폈습니다.

    결국 정부는 KAIST와 ICU의 통합을 추진하는 대안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2006년 7월 이후 22개월간 지루한 통합 논의가 이어집니다. 이후 ICU 이사회의 통합 결정 유보, ICU 허운나 총장의 사의 표명, KAIST 서남표 총장의 통합 논의 중단 선언, 통합 논의 재개 등 갖은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ICU 구성원들은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2008년 5월 ICU와 KAIST는 통합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전격적으로 교환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양교 구성원 간 갈등, ICU 내부 구성원 간 갈등 등으로 실질적인 통합까지는 9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물리적 결합을 넘어 화학적 결합으로
    마침내 지난 3월2일 KAIST와 ICU는 통합 출범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그로부터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양교 간 물리적 결합을 이뤘지만, 진정한 화학적 결합까지 이뤄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듯합니다.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양측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반목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KAIST 출신은 “ICU 출신들이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고, ICU 출신은 “우리는 KAIST 내 2등 국민이다”라고 불만을 터뜨립니다. 교수 강의 배분, 교수 심사 테뉴어 문제 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로 남아 있습니다. 통합을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불신과 반목을 넘어 그동안 양교가 쌓았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세계적인 IT 전문대학으로 거듭나는 것이 지난날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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