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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양영훈의 ‘건강의 길, 사색의 길’

눈꽃 세상에서 꿈같은 성밟기

전북 고창읍성

눈꽃 세상에서 꿈같은 성밟기

눈꽃 세상에서 꿈같은 성밟기

모진 눈보라에도 늠름한 기상을 잃지 않는 성황사 주변의 소나무 숲.

1월은 1년 열두 달 중 가장 춥고 눈도 많이 내리는 달이다. 하지만 벌써 반 이상을 넘긴 올 겨울에는 눈 내린 날이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매년 겨울철이면 설국(雪國)의 장관을 연출하던 영동 지방에서도 심한 겨울 가뭄을 겪고 있다. 요즘 영동 지방보다 강설량이 많은 곳은 호남 서해안 지방이다. 특히 부안 고창 정읍 등의 전북 서남부 지역에는 올 겨울 들어 20cm 이상의 폭설이 여러 차례 내렸다.

소한이 일주일쯤 지났을 때,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 뉴스를 듣고 곧바로 고창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울을 출발한 지 약 3시간20분 만에 도착한 고창 땅은 사방 천지가 눈꽃 세상이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고창읍성(사적 제145호)으로 향했다. 서너 해 전 어느 겨울에 우연히 들렀던 그곳의 그림 같은 설경을 다시 보고 싶었다. 역시 고창읍성의 설경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름다웠다. 성벽에는 며칠 전부터 날마다 내린 눈이 발목을 덮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아이젠을 착용하고 성벽길에 올랐다. 때마침 굵은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꿈결처럼 환상적인 설경이 펼쳐졌다.

‘모양성(牟陽城)’으로도 불리는 고창읍성은 조선 세종 32년(1450)부터 단종 원년(1453) 사이 축성됐다고 한다. 고려 말기 이후 전라도의 곡창지대를 노리고 고창 영광 등지로 수차례나 침입해온 왜적을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이 고창읍성은 장성의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였다. 적의 수중에 들어갈 경우 호남 전체가 위태로울 정도의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창읍성 축조 공사에는 전라좌·우도에 속한 19개 고을의 백성들, 심지어 부녀자들도 동원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눈꽃 세상에서 꿈같은 성밟기

눈 내리는 날 고창읍성 동문인 등양루 일대 풍경.

옛 모습 가장 잘 보존 역사 속으로 시간여행

둘레가 1684m, 성벽 높이가 4~6m인 고창읍성은 현재 우리나라 여러 읍성 가운데 옛 모습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뿐 아니라 초석과 대리석, 절집의 당간지주 등으로 쌓은 성벽은 더없이 튼실해 보인다. 그리고 읍성의 동·서·북쪽에는 옹성(甕城)을 두른 성문이 있고, 성벽의 6곳에는 ‘凸’(철)자형으로 불거진 치성(雉城)이 설치돼 있다. 축성 당시에는 면적 16만5000㎡(약 5만평)의 읍성 안에 동헌, 객사 등을 포함해 22동의 관아 건물이 있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크고 작은 전화(戰火)로 소실됐다가 지난 1976년부터 30여 년에 걸쳐 동헌, 내아, 객사, 향청, 작청 등 14동의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고창읍성의 정문인 공북루(북문)에 들어서면, 수백 년 전부터 세월의 흐름이 멈춰버린 옛 풍경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우리나라의 읍성들은 대체로 평평한 들녘에 자리잡은 평지성(平地城)이다. 반면 고창읍성은 야산에 둘러쳐진 산성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더욱이 원래의 지형지세를 거스르지 않아 성벽은 자연의 일부처럼 천연스럽다. 산자락의 흐름에 따라 적당히 오르내리는 성벽길을 걷는 일이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다. 성벽길을 자분자분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창읍내와 넓은 들녘을 내려다보는 맛이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고창읍성 안에는 비교적 보기 드문 대나무 숲이 하나 있다. 1938년 청월선사가 보안사를 창건한 뒤 절집의 운치를 돋우기 위해 처음 심었다는 맹종죽이 이제 제법 규모가 큰 대숲을 이룬 것이다. 영화 ‘왕의 남자’ 일부 장면이 촬영된 이 대숲의 맹종죽은 일반 대나무보다도 두세 배나 몸통이 굵고 키가 크며, 모진 삭풍과 한설(寒雪) 속에서도 변함없이 청신하다. 그리고 읍성 안에 가장 넓은 숲을 형성한 소나무는 금강송이나 춘양목처럼 크거나 우람하지는 않으나, 눈보라에도 꺾이지 않는 기상만큼은 금강송 못지않게 늠름하고 듬직하다. 또한 솔숲 곳곳에 진달래가 자생하고, 성벽을 따라 벚나무가 늘어선 고창읍성은 봄빛 무르익은 4월이면 눈부시게 화사한 꽃대궐로 탈바꿈한다.

고창읍성에서는 해마다 중양절(음력 9월9일)을 전후로 닷새 동안 ‘모양성제’가 열린다.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답성(踏城), 즉 성밟기다.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를 돌면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원래 성밟기는 저승문이 열리는 윤달에 해야 효험이 있고,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가장 좋다고 한다. 이처럼 돌을 머리에 인 채 성밟기를 권장한 것은 겨우내 부풀었던 성을 밟아 견고하게 다지고, 유사시 투석전에 대비해 미리 돌을 확보해놓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래야 어떻든 눈 내리는 날의 고창읍성 성밟기는 가슴 깊이 묻어둔 시름까지 날려버릴 만큼 상쾌하고 유쾌하다. 눈길을 어디에 둬도 눈맛이 상쾌하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들리는 눈 밟는 소리는 날아갈 듯 유쾌하다. 그러니 고창에 눈 오는 날이면 무조건 고창읍성으로 달려가야 한다.

여행 정보



코스 정보 둘레 1684m의 고창읍성을 한 바퀴 도는 데는 30~4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 번만 돌고 끝내기에는 왠지 아쉽고 허전하다. 그럴 때는 반대 방향으로 한 번 더 돌거나 성벽 안쪽 또는 바깥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돌아보기를 권한다. 눈이 많이 온 날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성벽길을 걷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에 유의하자. 적설량이 많은데 아이젠이 없거나 어린이와 동행한 경우에는 성벽 안쪽의 산책로를 이용하는 게 안전하다.

숙식 고창읍성에서 자동차로 10분 안의 거리에는 태흥모텔(063-562-1121), 귀빈모텔(063-564-1991), 아리랑모텔(063-561-5595), 그랜드모텔(063-561-0037) 등의 모텔이 있다. 고창읍내에는 호텔이나 콘도 등은 없다.

고창읍성 입구에 자리잡은 미향(063-564-8762)은 전복돌솥밥, 해물굴밥, 전복삼계탕을 저렴하고도 맛있게 내놓는 집이다. 그리고 고창읍성에서 석정온천으로 가는 길에 자리한 황토마루(063-564-9979)는 전통백반, 갈치조림백반, 굴비구이백반, 불고기백반 등의 가정식 백반을 맛깔스럽고 푸짐하게 차려낼 뿐 아니라 값도 저렴해 토박이들이 많이 찾는다. 그 밖에 조양식당(063-564-2026)은 고창읍내에서 유서 깊은 한정식집으로 유명하다.




주간동아 2009.02.10 672호 (p88~89)

  • 양영훈 한국여행작가협회 정회원 blog.naver.com/travel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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