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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미술, 기호의 시대를 열다

  • 최광진 미술평론가·理美知연구소장

차용미술, 기호의 시대를 열다

차용미술, 기호의 시대를 열다

데이비드 살레 ‘Fall’(1993)

모던 이후 최근 미술의 가장 주도적인 양식적 특징을 꼽으라면 아마도 ‘차용’일 것이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이 남성용 변기를 전시장에 갖다 놓은 이후 추상화 물결에 밀려 잠잠하던 차용의 방식은 1960년대 팝아트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뒤샹의 후예들은 일상용품이나 광고, 잡지에서부터 사진이나 미술사에 이르기까지 출처가 다른 곳에서 ‘이미 만들어진(ready-made)’ 것들을 불러들여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해 보이고 있다. 뒤샹도 차용미술이 이처럼 위세를 떨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셰리 레빈이라는 작가는 뒤샹의 변기를 차용해 브랑쿠지처럼 매끈한 청동으로 만들어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시켰고, 제프 쿤스는 저급해 보이는 싸구려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 안에 끌고 들어왔다. 이 밖에도 많은 작가들은 원래 이미지가 지닌 광고의 힘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동시에 오리지널과 독창성의 신화를 해체하려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차용은 창조보다 열등한 것이고, 저급하고 키치적인 것이며, 비예술적이라는 뉘앙스를 지닌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작가들이 차용을 작품의 중요한 도구로 다루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일반인들은 당혹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용이 어떻게 의미와 가치를 갖고, 이러한 대세의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하면 이는 ‘아우라(aura)’의 시대에서 ‘기호(sign)’의 시대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아우라는 주관적인 마음에서 비롯되는 독창적이고 독특한 분위기이고, 이를 추구한다는 것은 주체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폴록의 추상표현주의는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으며, 과거 모더니즘 미술은 아우라를 향한 부단한 노력이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자각은 어떤 표현도 내용과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소쉬르의 주장처럼 언어는 임의적인 것이고 언어 내부의 차이의 체계라면, 언어의 의미는 고정될 수 없고 문맥에 따라 지속적으로 미끄러지는 것이다. 물론 그림은 언어와 달리 대상과 일치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 역시 완전한 일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림은 언어처럼 기호로서의 작용을 선택하게 된 것이고 그 결과는 오늘날과 같은 차용미술로 나타나고 있다.



주간동아 2008.06.24 641호 (p75~75)

최광진 미술평론가·理美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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