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하종대 특파원의 중국 차세대 지도자 열전|⑪ 쉬차이허우(徐才厚)

인민해방군 최고 실세 ‘胡의 남자’

사병부터 장군까지 풍부한 경험과 경력 … 후 주석 ‘과학발전관’ 군에 접목 중책

인민해방군 최고 실세 ‘胡의 남자’

인민해방군 최고 실세 ‘胡의 남자’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 폐막 직후 열린 제17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군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된 쉬차이허우(徐才厚·사진) 당 및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후진타오(胡錦濤·66) 국가주석과 출생일이 6개월밖에 차이나지 않는 그는 사실 차세대 지도자라기보다는 후 주석과 같은 제4세대(2002~2012년 집권) 지도부라고 할 수 있다.

올해 65세인 쉬 위원은 차기 당 대회가 열리는 2012년엔 69세로 정년퇴직 대상이다. 부총리급 이상의 중앙정치국 위원은 정년이 70세지만 선출 시점엔 적어도 67세 이하여야 한다. 1939년 7월생으로 지난해 68세였던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이 내심 더 자리를 지키고 싶어했고, 후 주석 등 주위의 만류에도 퇴진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4세대 지도부 … 軍과 黨 다리 구실

쉬 위원은 2002년 말 제16차 당 대회 직후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될 뻔했다. 학력이나 경력, 군 내부의 신망에서도 그는 앞서 있었다. 하지만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이 “차오강촨(曹剛川·73)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은 나이(당시 67세)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그러니 (네가) 양보하라”며 그를 주저앉혔다고 베이징의 군사소식통은 전했다. 조만간 권력에서 물러날 처지임에도 당시 장 주석은 자신의 최측근인 차오 위원과 궈보슝(郭伯雄) 중앙군사위원을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밀어준 것이다.

쉬 위원은 후 주석의 ‘줘방여우비(左膀右臂)’로 불린다. 이는 심복, 최측근이라는 뜻이다. 2002년 말 후 주석이 당 총서기에 취임하자 그는 후 주석과 함께 오지를 시찰하는 등 심복으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2004년 9월 후 주석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취임한 뒤 중앙군사위원에서 부주석으로 승진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실제로 그는 현재 군의 최고 실세다. 군부의 정치사상과 간부의 인사, 선전 교육을 모두 장악하고 있으며, 군과 당의 다리 구실을 하며 당심(黨心)을 군에 전하고 군심(軍心)을 당에 올리고 있다. 후 주석의 ‘과학발전관’을 군에서 관철하는 것도 그의 임무다.

그가 태어난 랴오닝(遼寧)성 와팡뎬(瓦房店)시는 장군을 많이 배출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혁명열사 배출지라고 하면 각각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의 고향인 후난(湖南)과 쓰촨(四川)성, 장시(江西)와 후베이(湖北)성 등을 떠올리지만 동북지역에서 와팡뎬시만큼 장군이 많이 나온 곳은 없다. 와팡뎬시는 최근까지 30여 명의 장군을 배출했다.

그는 스무 살 때 고향을 등지고 눈보라 날리는 하얼빈(哈爾濱)군사공정학원에 입학했다. ‘하쥔공(哈軍工)’이라 불리는 하얼빈군사공정학원은 중국 최고의 군 공과대학이다. 사회주의 중국 성립 이후 가장 먼저 설립된 종합국방대학으로 건국 후 국방과학기술 사업에 헌신하려는 많은 청년 영재와 혁명열사의 자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현재까지 배출한 장군과 성부(省部·성장 및 부장)급 고관만 100여 명에 이르는데, 위정성(兪正聲) 후베이성 당서기와 펑샤오펑(彭小楓) 제2포병 정치위원(상장), 최근 물러난 바이커밍(白克明) 허베이(河北)성 당서기 등이 이곳 출신이다.

하지만 국방과학기술의 종합대학이던 하얼빈군사공정학원은 문화대혁명 기간(1966년 5월~1976년 10월)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쉬 위원이 속한 전자공정과 등 일부는 잘려나가 국방과학기술대학으로 독립했고 나머지는 하얼빈공정학원(원 선박공정학원), 난징(南京)이공대학, 장갑병공정학원, 군사이공대학, 공정병공정학원, 방화(防化)지휘공정학원 등 총 6개로 흩어졌다.

서방 국가도 “유능한 인물” 우호적 평가

하얼빈군사공정학원을 졸업한 뒤 그는 군부대 농장에서 노동자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부터 70년까지 농장에서 일한 그는 이어 72년까지 지린(吉林)성 군구의 독립사단 3연대 2대대 6중대에서 말단 병사로 일했다. 이후 지린성의 군구 정치부 간부처 간사, 부처장, 처장을 거쳐 지린성 군구 정치부 부주임, 선양(瀋陽) 군구 정치부 군중 공작부 부장, 육군 제16집단군 정치부 주임 및 정치위원, 해방군 총정치부 주임 조리(助理), 부주임 및 해방군보사 사장, 지난(濟南) 군구 정치위원 및 군구 당 위원회 서기까지 차례차례 승진했다. 99년 9월 그는 군 장교로는 거의 최고직인 당 및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올랐다. 이어 2002년 11월 중국 공산당 제16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중앙서기처 서기로 선출되고, 2004년 9월 중앙군사위 부주석까지 올라갔다.

장군이 되고자 하는 꿈이 없는 사병은 훌륭한 병사가 아니다. 역으로 사병에서 시작하지 않은 장교는 부대의 밑바닥 생활을 이해하기 어렵다. 풍부한 밑바닥 생활 경험과 수련이 없다면 출중한 장군과 고급 장교가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군 농장 노동자에서 시작해 보병단 병사와 정치부 처장, 주임을 거쳐 인민해방군의 정책을 결정하는 중앙군사위원회 위원까지 지낸 쉬 위원은 누구보다 풍부한 경험과 경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군 내부에서는 그가 한 번도 ‘나쁜 소문’이 나돌지 않은 사람이라는 얘기가 회자된다. 반면 최근 중앙정치국 위원에서 물러난 차오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궈 부주석은 승진을 위해 장 전 주석과 여러 차례 비밀협상을 벌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의 지인들은 그가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라고 전한다. 그만큼 신중하고 냉정하며 판단력과 추리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미국 등 서방국가에서는 그를 현대적인 군의 인물로 나무랄 데 없는 명성과 정치적 배경을 지닌 군 지도자로 평가한다.

1972년부터 2004년까지 32년간 인민해방군의 사상과 이념을 관철하는 정치부에서 일해온 그가 후 주석의 집권 2기(2007년 말~2012년 말)를 맞아 ‘과학발전관’을 군부에서 어떻게 관철하고 눈앞에 닥친 대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주목된다.

쉬차이허우 프로필



·한족(漢族)

·1943년 6월생

·랴오닝(遼寧)성 와팡뎬(瓦房店)시 출신

1963~1968년 하얼빈(哈爾濱)군사공정학원 전자공정과 졸업

1968~1970년 육군 제39군 농장 노동단련

1970~1972년 지린(吉林)성 군구 독립사단 3연대 2대대 6중대 군인단련

1971년 4월 입당

1972~1982년 지린성 군구 정치부 간부처 간사, 부처장

1980~1982년 해방군 정치학원 훈련반 연수

1982~1983년 지린성 군구 정치부 간부처 처장 겸 이직 및 퇴직 판공실 주임

1983~1984년 지린성 군구 정치부 부주임

1984~1985년 선양(瀋陽) 군구 정치부 군중공작부 부장

1985~1990년 육군 제16집단군 정치부 주임

1990~1992년 육군 제16집단군 정치위원

1992~1993년 해방군 총정치부 주임 조리(助理) 겸 해방군보사 사장

1993~1994년 해방군 총정치부 부주임 겸 해방군보사 사장

1994~1996년 해방군 총정치부 부주임

1996~1999년 지난(濟南) 군구 정치위원, 군구 당 위원회 서기

1999~2000년 당 및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군 총정치부 상무부주임 및

당 위원회 부서기

2000~2002년 당 및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군 총정치부 상무부주임 겸

중앙군사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총정치부 당 위원회 부서기

2002~2004년 중앙서기처 서기, 당 및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군 총정치부 주임,

총정치부 당 위원회 서기

2004~2005년 중앙서기처 서기,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2005~2007년 중앙서기처 서기,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2007~현재 중앙정치국 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제15~17기 중앙위원회 위원

제16기 중앙서기처 서기

제17기 중앙정치국 위원




주간동아 2008.01.22 620호 (p30~32)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4

제 1214호

2019.11.15

윤석열 대망론이 나오는 이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