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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폭력의 시간을 감싸주던 ‘비둘기는 하늘의 쥐’

언니네 이발관 1집 20주년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폭력의 시간을 감싸주던 ‘비둘기는 하늘의 쥐’

폭력의 시간을 감싸주던 ‘비둘기는 하늘의 쥐’

10월 22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무대에 선 언니네 미술관. [사진 출처 ·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

20년 전, 그러니까 1996년 이맘때가 떠오른다. 몸은 사회에 있으되 신분은 민간인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포상휴가라는 걸 받아 집에서 보내게 된 연말은 특별한 기분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충남 조치원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 차창 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고 전날 고참에게 심하게 맞은 자리는 멍이 들어 있었다. 전날의 쓰린 기억은 연말을 부대 밖에서 보낼 수 있다는 기대 하나로 역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조금씩 지워졌다.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서점에서 문화 계간지 한 권을 집어 들고 음악 페이지를 펼쳤다.

기사 한 귀퉁이에 인디 음반 두 장이 소개돼 있었다. 크라잉넛과 옐로우키친의 조인트 앨범인 ‘Our Nation Vol.1’. 그리고 바로 밑에는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웃기는 이름을 가진 밴드의 ‘비둘기는 하늘의 쥐’라는 웃기는 앨범 타이틀이 ‘뽀대’라고는 비둘기 똥만큼도 없는 앨범 재킷과 함께 인쇄돼 있었다. 언니네 이발관을 그렇게 알게 됐다.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자마자 간 곳은 휴가 나가면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서울 홍대 앞 클럽 ‘드럭’이었고, 그 안을 가득 메운 펑크족을 보고 대단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스파이크 머리나 징 박힌 가죽 점퍼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공연 후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였다. ‘아니, 이런 노래가!!’라는 마음에 즉시 근처 레코드가게로 가서 ‘Our Nation Vol.1’을 집어 들었다. 때마침 옆에 ‘비둘기는 하늘의 쥐’도 놓여 있었다. 별 기대 없이 함께 샀다.

이것만큼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푸훗’의 첫 기타 리프가 흘러나왔을 때, 이석원의 ‘오늘 아침에~’ 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의 충격. 메탈도 아니고 펑크도 아니고 브릿팝도 아닌 ‘얄딱구리한’ 무엇. 그 충격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민간인이 아닌 군인 신분으로 맞는 연말이었다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며칠 후 부대에 복귀하며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챙겼다. 야간 보초를 선 후 모두 잠든 내무반에서 최대한 볼륨을 낮추고 두 음반을 몰래 듣곤 했다. 딱히 신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군바리’의 비루한 일상을 쓰다듬어줄 만한 위안을 받은 것도 아니다. 단 하나, 새벽녘 잠들기 전 한두 곡씩 듣고 있노라면 뭔가 기분이 좋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건대 마음만은 이미 제대한 것처럼 느꼈던 것 같다. 노래 가사가 꼭 그런 것도 아닐 텐데 ‘민간인으로서의 일상’을 체험하는 느낌 말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자주 들은 음반은 지금까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폭력과 스트레스의 24시간 중 진공 상태로 존재하던 시간을 언니네 이발관이 만들어줬다. 인생의 가장 남루하던 시절,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다면 유일하게 백업해서 남겨두고 싶은 기억은 ‘비둘기는 하늘의 쥐’가 밤마다 안겨주던 행복뿐.



이 역사적인 앨범이 발매된 지도 20년이 흘렀다. 음악평론가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상병은 그사이 중견 음악평론가가 됐고, 풋풋하기만 하던 언니네 이발관도 늘 마스터피스를 발매하며 한국 모던록을 대표하는 밴드가 됐다. 그때 생각했던 20년 후 한국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런 모습은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다시 꺼내 들으며 그 무렵 겨울을 떠올려본다.






주간동아 2016.12.14 1067호 (p78~78)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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