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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의 실전 風水|허준의 스승 유의태와 생초(生草)면 갈전(葛田)리

칡뿌리 자주 처방하더니 칡밭에 잠들다

  • 우석대 교양학부교수 dgkim@core.woosuk.ac.kr

칡뿌리 자주 처방하더니 칡밭에 잠들다

칡뿌리 자주 처방하더니 칡밭에 잠들다

생초면 갈전에 있는 유이태 무덤(위). 유이태가 약방을 열었던 집터(생초면 신연마을).

풍수에서는 땅 이름(지명) 살피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지명에는 땅의 생김새나 특성, 성격 등이 반영된 것이 많아 지명을 통해서 땅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남 산청(山淸)군 생초(生草)면은 ‘산이 높고 물이 맑아(山高水淸) 약초가 잘 자라는 곳(生草)’임을 암시한다. 실제 산청 일대에서 나는 약초는 효능이 좋기로 유명하다. ‘한방약초축제’ ‘산림약초추진단’ ‘산청약초마라톤대회’ ‘전통한방휴양단지’ 등 다양한 행사와 계획들이 이곳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땅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산청군이 한방과 약초를 브랜드 전략화한 것은 소설 ‘동의보감’과 TV 사극 ‘허준’이 유명해지고 나서부터였다. 평안도 용천 군수의 서자 허준이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경상도 산청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기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 유의태와의 만남이다. 제자 허준을 위해 자신의 몸을 해부 대상으로 내놓은 참스승의 모습에서 독자와 시청자들은 감동했다.

좋은 약초 찾아 생초면에 정착 … 살아서도 죽어서도 ‘칡’과 인연

허준을 통해서 스승 유의태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고, 산청군은 위대한 두 명의 의사를 브랜드화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허준과 산청군은 아무 관련이 없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는 유의태다(김호 가톨릭대 교수의 글 및 유이태의 후손인 유철호 삼부시스템 대표 증언 참고).



소설과 사극에 등장하는 유의태의 실제 이름은 유이태(劉以泰). 그는 산청·함양·진주·남원·무주·전주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지금까지도 이 지역에서 전해지는 구비문학에 명의 유이태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특히 홍역(마진)을 잘 다루어 아이들의 목숨을 많이 구했으며, 산부인과 병 또한 잘 다스렸다. 이렇게 영·호남 지역에서 지금까지 그의 이름이 전해져 오는 까닭은 그가 뛰어난 의술을 가졌으며 환자의 귀천(貴賤)을 가리지 않고 치료할 뿐만 아니라 돈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 단방(單方) 위주의 처방을 했고, 당시 감기 치료에 널리 쓰던 승마갈근탕(升摩葛根湯)과 같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주로 처방했다. 그야말로 소설과 사극 속에 등장하는 허준의 모습이다.

유이태의 본래 고향은 거창이었으나 산청군 생초면 신연마을로 옮겨와 의술을 펼친다. 그가 거창에서 생초로 옮긴 까닭은 효능이 뛰어난 약초와 물 때문이었다. 유이태가 남긴 ‘마진편’에는 “산청의 어느 절 스님들이 홍역에 걸렸는데 샘물을 반복해 마시게 하여 치료했다”는 글이 있다. 물을 통한 치료행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의 의술은 나중에 왕실에까지 알려져 1710년 한양으로 불려간다. 당시 임금인 숙종이 머리에 종기가 나 붓고 열이 가시지 않아 고생하는데도 어의들의 처방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전국의 유명 의사들을 불러 진찰하게 했는데 아산 현감 신우정(愼禹定), 안동의 박태초(朴泰初)와 함께 차출된 것이다. 이른바 재야 의사들 가운데 전국 3대 명의였던 셈이다. 이어서 1713년과 1715년에도 왕실에 불려가 숙종의 병을 치료했다. 1715년 그는 임금을 치료한 공로를 인정받아 말 한 마리를 하사받고 귀향하는데, 그 후 곧바로 사망한다.

죽어서는 경호강을 바라보는 생초면 갈전리 명주골에 안장되는데, 그가 생전에 즐겨 처방했던 승마갈근탕과 그가 안장된 지명 갈전(葛田), 즉 칡뿌리(葛根)와 칡밭(葛田)이 서로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약초와 약수의 고장 산청군 생초면에서 활동하다 그가 영면의 장소로 택한 곳 역시 생전에 그가 즐겨 처방했던 칡뿌리가 많은 칡밭이었다.

독자들은 반문할 것이다. 허준의 생존연대(1539~1615)가 유이태(1651~1715)의 생존연대보다 훨씬 앞서는데 어떻게 허준의 스승이 된단 말인가? 소설과 사극에 묘사된 유의태는 실존인물 유이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가공의 인물일 뿐이다. 또한 민중의 의사로 묘사되는 허준의 모습 가운데 태반이 유이태에서 가져온 것이다.

산청군은 한방과 약초를 브랜드화하고자 한다. 하지만 산청과 전혀 관련이 없는 허준이 아니라, 실제 산청이 배출한 유이태를 브랜드화하는 것이 진정 ‘한방의 고장 산청’을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06.03.14 526호 (p73~73)

우석대 교양학부교수 dgkim@core.woos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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