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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리포트

국정원, 舊惡 망령 완전히 날려라

X파일 사건으로 비난 집중포화 … “이참에 제대로 개혁하자” 목소리 높아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국정원, 舊惡 망령 완전히 날려라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재벌과 언론인, 정치인, 정보기관이 엮인 사건인 만큼 이에 대해서는 백인백색의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도대체 이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사건의 제1 주역은 안기부 전 미림팀장 공운영(58) 씨다. 그는 언론에 배포한 자술서에서 상사의 지시를 받았다고 했지만, 불법으로 도청을 하고 그 자료를 안기부 밖으로 유출한 혐의 사실은 벗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간동아가 만나본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은 공 씨의 행위를 두둔하지는 않았지만 공 씨의 처지를 약간은 이해하려고 했다.

미림팀장의 보험용 테이프가 결국 禍로

전직 직원 A 씨는 “내가 현직에 있을 때 상사가 주요 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도청하라고 했다면 나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 명령의 이행을 거부했을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직원이 그랬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국정원 직원이면 무슨 일이든 다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도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공 씨가 쓴 자술서에도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모두가 회피하는 불법 도청 업무를 공 씨가 맡게 된 데는 상사에 대한 충성심과 위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성격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A 씨는 이러한 성격 때문에 공 씨는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국가정보원에서 직권면직됐을 때 격렬히 항의하고, 테이프를 외부인에게 내주게 됐을 것으로 보았다.



국정원에서 간부를 지내고 퇴직한 B 씨는 왜 공 씨가 불법 도청한 테이프를 갖고 나와 보관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자술서에서 밝혔듯이 공 씨는 1992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씨가 당선되자 그가 이끌던 미림팀 활동이 정지되면서 무보직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 94년 다시 미림팀을 만들고 팀장을 맡으라는 지시를 받자, 92년의 경험이 있어 따르려 하지 않았으나 결국 설득당하여 팀을 재구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또다시 도태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중요 내용을 밀반출해 임의로 보관해왔다고 한다.

이러한 공 씨에게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씨가 당선되자 ‘예상했던’ 위기가 닥쳐왔다. 98년 대통령에 취임한 DJ는 국가안전기획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인적 청산에 착수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자해(自害)를 몰고 온 ‘북풍 사건’이었다. 김대중 씨의 당선을 막기 위해 안기부가 의도적으로 북풍공작을 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영삼 정권 만료와 함께 국정원을 떠난 권 전 부장과 박일룡 전 국내차장은 물론이고 관련된 현직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되었다.

국정원, 舊惡 망령 완전히 날려라

천용택, 김기섭, 김현철, 오정소(시계방향).

이러한 사태를 바라보면서 공 씨가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DJ의 국정원은 지난 정권에 협조한 비간부 직원들까지도 직권면직을 내리며 강제로 몰아냈다. 문제는 여기에 공 씨도 포함됐다는 점인데, 직권면직된 사람들은 그 후 국사모(국가를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어 법적 투쟁에 들어갔다. 괄괄한 성격의 공 씨는 30년간 근무해온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났다는 데 대한 배신감이 매우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

김대중 정부 초기의 국정원 직원 집단 면직은 대단히 시끄러운 사건이었다. 당시 국정원 간부였던 C 씨는 공 씨를 특히 심하게 반발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C 씨는 “공 씨가 복직을 강하게 요구했는데, 결국 그는 갖고 있던 테이프 덕택에 복직했다가 명예퇴직하게 되었다. 그때 국정원장은 천용택 씨였다. 이 일을 계기로 천 원장은 삼성 등 주요 그룹이 여야 정치인에게 제공한 정치자금의 윤곽을 파악하게 됐는데, 이것이 천 원장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천용택 씨는 DJ 정부 시절 첫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가 이종찬 씨에 이어 DJ 정부의 2대 국정원장이 되었다. 그런데 때마침 국정원 대공수사국이 해군이 98년 12월19일 격침한 반잠수정에서 찾아낸 물증을 토대로 북한과 연계된 민혁당 사건을 적발해냄으로써(99년 9월9일 수사 발표) 그는 모처럼만에 기지개를 펼 수 있었다.

그 직후인 99년 12월15일 천 원장은 검찰 출입기자들을 불러 오찬을 하다 ‘비보도’를 전제로 “정치자금법이 개정되기 전인 97년, 김대중 대통령(당시 국민회의 총재)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한테서 돈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는데, 이것이 보도됨으로써 12월23일 그는 국정원장직에서 해임됐다.

당시 청와대에 있었던 D 씨에 따르면 천 원장 발언이 알려졌을 때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수뇌부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원에서 국정원장의 발언과 행동을 전담 추적하는 팀이 작성한 녹취록이 청와대 정무팀에 입수되자, 분위기는 일순간에 천 원장 해임 쪽으로 기울었다고 한다. D 씨는 국정원장 발언 녹취에 대해선 “불법 도청이 아니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해오던 고유 임무이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흥미로운 사실은 천 원장의 실언은 보광그룹 탈세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홍석현 씨가 1심에서 벌금 38억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99년 12월14일) 바로 이튿날 나왔다는 사실이다. 공 씨의 테이프는 6년 시차를 두고 홍 전 회장을 두 번 무너뜨린 것이다.

이 X파일은 2003년 4월8일 되살아날 뻔했다. 국정원 감찰실장을 하던 99년 12월 당시 공 씨가 반납한 테이프 소각을 책임졌던 이건모(60) 씨가 모 정치인에게 국정원 내부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이날 구속 기소된 것. 그러나 이 씨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풀려났고 X파일 망령은 다시 묻히게 됐다.

국정원, 舊惡 망령 완전히 날려라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과 이학수 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장이 7월21일 대리인을 통해 서울남부지법에 MBC의 ‘안기부 X파일’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이상호 기자(오른쪽) 등 MBC 관계자가 신청서를 검토하고 있다.

2005년 2월4일 X파일 망령은 천용택 씨로 인해 또 한번 터질 뻔했다. 이날 천 씨는 CBS와 한 인터뷰에서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뒤 2~3개월간 안기부에서는 많은 서류를 태우느라 (안기부 본부가 있는) 세곡동 하늘이 새카맣게 연기로 뒤덮였다는 풍문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도 유야무야 넘어갔으나 2004년 10월 재미동포 박 씨한테서 테이프를 입수한 MBC 이상호 기자가 솔솔 냄새를 피우면서 망령은 점점 더 커지다 급기야 폭발해버린 것이다.

국정원 8국 주요 인사 동선 파악

미림팀은 도청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이기에 누가 어디에서 언제 누구를 만나는 것까지 세밀하게 추적할 수가 없다. 때문에 주요 호텔이나 음식점에 깔린 망원을 관리하는 별도 조직이 있거나, 아니면 주요 인사들이 나누는 통화를 엿들은 뒤 이들이 만나기로 한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는 전담 조직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적잖은 관계자들은 안기부 시절에는 통신국 또는 9국으로 불렸고, 국정원 시절에는 과학보안국 또는 8국으로 불린 부서의 구실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이하 이 부서를 8국으로 표기한다).

홍석현 전 회장 구속에 이어 천 원장의 실언이 나온 99년 말 정치권에서는 지금만큼이나 도청이 뜨거운 이슈로 거론되고 있었다. 이때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의 이부영 의원은 8국 존재를 거론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8국은 대공(對共)수사를 위한 감청을 위해 만들어진 부서로서 전화뿐만 아니라 팩스, PC 통신, 아마추어 햄, 기타 무선 통신 등 거의 모든 통신 수단을 감청했다(주간동아 206호 참조).

6년이 지난 지금 정치인과 재벌 인사 등의 대화를 도청한 것은 8국이 아니라 미림팀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미림팀이 주요 인사가 만나는 장소와 시간을 알게 된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건모 씨도 구속되기 직전 ‘8국 직원이 국정원 감찰실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요지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8국과 미림팀은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이 부분은 앞으로 있을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것이다.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서 관심 있게 봐야 할 부분은 미림팀이 도청한 자료가 어디에까지 올라갔는가란 점이다. 공 씨를 미림팀장에 다시 임명한 오정소 당시 대공정책실장과 김영삼 씨의 아들인 김현철 씨, 그리고 YS의 오른팔이라 불렸던 이원종 당시 정무수석은 K고-K대 출신으로 돈독한 관계였다. 미림팀이 수집한 도청 정보가 안기부 외부 인사이자 공직에도 있지 않았던 김현철 씨 등에게로 유출된 것이 확인된다면 이는 또 다른 정치 파문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1987년 1노 3김이 맞붙은 대선 때 YS는 상당한 우세를 점하고 있었는데, YS가 기성 기독교단에서는 이단시하는 한 종교단체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문서가 나돌았다. 훗날 이 소문은 당시 안기부가 퍼뜨린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YS는 공작정치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때문에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YS는 안기부 개혁을 내걸었으나 금방 안기부와 결탁하고 말았다. 미림팀의 부활이 이를 증명하는 한 사례이다. 그뿐만 아니다. 김현철 씨는 92년 대선 때 나라사랑운동본부(나사본)라는 사조직을 통해 아버지의 당선을 지원했다. 그 덕분에 대통령이 된 김영삼 씨는 93년 8월12일 한국 사회의 투명도를 올리겠다며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

이때 금융실명제 시행으로부터 거의 유일하게 벗어나 있었던 것이 안기부가 관리하는 계좌였다. 당시 안기부에는 YS의 최측근인 김기섭 씨가 안기부 자금을 관리하는 기조실장 자리에 있었다. 이러한 김 실장은 김현철 씨가 92년 대선에서 쓰고 남긴 나사본 자금을 금융실명제 적용 대상이 아닌 안기부 계좌에 넣어 관리하다, 95년 지방선거와 96년 총선 때 활용케 한 사실이 2000년 대검 중수부 수사에서 드러났다.

YS의 안기부는 미림팀을 만들어 도청 정보를 실세에게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YS 세력의 비자금을 관리해주는 사금고 구실까지 했다. YS 초기의 안기부 개혁 주장이 무색할 정도로 둘은 결탁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국가 정보기관으로부터 무수한 해를 입었다. 그러나 그가 집권하던 시절 국정원장을 맡았던 임동원-신건 씨는 김 대통령의 아들에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떡값을 제공했다. 또 ‘은별 사건’의 주역으로 불린 김은성 국정원 차장은 경제단장 시절 보물섬 게이트를 일으킨 이용호 씨와 유착돼 김 대통령의 아들에게 돈을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DJ 시절의 국정원도 DJ 정권의 실세들과 유착됐던 것이다.

왜 공작정치를 비판했던 정치인들은 권력을 잡고 나면 정보기관과 야합했던 것일까. 안기부 X파일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치유해야 할 문제는 바로 권력자와 국가 정보기관 간의 ‘정치적인 결탁’이다.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한 사람은 역시 국정원 (출신) 인사들일 것이다. 국정원에서 간부를 지내고 퇴직한 E 씨는 그 이유를 국정원의 국내 정보활동에서 찾았다.

해외 정보 수집·공작에 전념해야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대공정책실(대정실)이 거론되고 있는데, 대정실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 줄 아는가? 대공정책실에서 ‘대공(對共)’은 아무 의미 없이 붙여진 것이다. 대정실은 대공활동과 무관한 국내 정책 정보활동을 했다. 정부 주요 부처에 정보원을 보내 각 부서가 하는 일을 수집·분석함으로써 그 일을 잘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물 분석도 한다.

YS와 DJ 시절까지도 권력 실세들은 국정원(안기부)이 올린 정보를 토대로 각 부처를 통제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이러한 결탁이 많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부처의 공무원들은 국정원 정보원을 암행어사처럼 떠받든다.

냉정히 생각해보자. 이것이 과연 국가 정보기관이 할 일인가. 지금 정부 각 부처에는 행정고시를 거친 수많은 엘리트가 있다. 또 각 부처의 업무를 통합 조정하기 위해 국무총리 밑에 국무조정실까지 두고 있다. 그리고 감사원과 국가청렴위(부패방지위 후신) 등 수많은 감사기관이 움직이고 있으므로 국가 정보기관이 나설 필요는 적어졌다. 국정원이 국내 정책 정보를 수집 분석한 것은 총력안보를 강조하던 시절의 유산이다. 이제 국정원은 국내 정보활동에 쏟는 노력을 미국의 CIA(중앙정보국)처럼 안보와 해외 정보 수집, 공작활동에 퍼부어야 한다.”

국정원 직원 F 씨는 “국정원에서는 오래전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문재인 민정수석이 원장으로 왔으면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왜 문 수석이 국정원장이 되기를 바라는가”란 질문에 “문 수석처럼 대통령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원장을 해야 노 대통령이 국정원 정보를 귀담아듣고, 그에 따라 국정원의 위상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영구 전 원장이나 김승규 원장은 대통령과 무시로 통화할 수 없는 사람인데, 이들이 원장으로 있는 한 국정원의 위상이 올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 정보활동을 통해 축적한 정보를 미끼로 던져 권력자의 관심을 잡아끌려고 하는 것이 국정원이 안고 있는 속성 중의 하나이다. 이렇다 보니 대북과 해외 등 진짜 국익과 관련된 정보와 공작활동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러한 국정원을 국익을 위해 뛰는 국가 정보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려면, 노 대통령은 국정원 정보를 무시하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국정원에서 국내 파트를 떼어내 해외 및 대북 정보기관으로 바꿔버리는 적극적인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국정원 문제를 냉정히 지켜봐온 사람들의 지적이다. 한 소식통은 “YS-DJ-노무현 정권에서 외치고 있는(외쳤던) 국정원 개혁은 허울뿐이었다. X파일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게 하고, 국정원을 정상화하려면 국내와 해외·대북 파트를 분리하는 개혁부터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05.08.09 497호 (p30~33)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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