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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시대’

문화한국의 寶庫 ‘용산 찍고 세계로’

아시아 최대 규모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90여일 앞으로 … 9만여평 부지에 전시 품목은 3배 늘어난 1만2000여점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문화한국의 寶庫 ‘용산 찍고 세계로’

문화한국의 寶庫 ‘용산 찍고 세계로’
국립중앙박물관을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였더라?’

만 10년. 우리 곁에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앙박물관)이 없었던 기간이다. 물론 10년간 문을 닫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광복 이후 박물관이 휴관한 기간은 1950년 6·25전쟁 직후 부산의 창고에 머물던 3년과 용산으로의 이전을 위한 최근 1년을 포함해 총 4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은 물론 서울 시민들마저 중앙박물관의 존재란, 한 번쯤 의례적으로 방문했던 경복궁 인근에 자리한 고색창연한 유물 전시관일 뿐이었다.

광복 60주년을 맞이한 2005년 10월28일은 앞으로 ‘문화 독립일’로 불려질지 모른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왜 우리에게는 이런 박물관 하나 없지?” 하고 탄식하던, 박물관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공간, 나아가 파리의 문화적 자존심인 루브르 박물관에 필적하는 아시아의 문화 수도가 될 새 박물관이 서울의 중심 용산에서 화려한 비상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 60주년이자 중앙박물관 개관 60주년을 맞이한 2005년, 일본군과 미군의 주둔지로 활용되며 근대 역사에서 치욕의 상징이었던 용산이 민족문화의 상징인 세계적 박물관의 터로 거듭난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

이는 단순하게 새 청사, 신축 박물관 하나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문화의 역량이 총집결돼 폭발한 일대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어린이 박물관·대극장 등 복합 문화공간 시설 가득

문화한국의 寶庫 ‘용산 찍고 세계로’
“무슨 성(城)같이 생겼네. 웅장하긴 한데 전통미가 빠진 것 같아.”

서울지하철 1·4호선 이촌역에서 용산 가족공원을 향해 걷다 보면 과거 미군기지와 헬기장이 있던 널찍한 대지에 백색의 길다란 성채가 눈에 들어온다. 중앙박물관 용산 시대를 알리는 상징물로는 누가 뭐라고 해도 길이 404m에 달하는 이 거대한 초현대식 본관 건물을 들 수 있다. 현재 공정률 98%를 보이며 마지막 내부 마무리가 한창이다.

실내 면적 1만5000평에 달하는 초대형 철골철근 콘크리트 구조물. 준비기간 12년, 박물관 부지면적 9만여평, 전시면적 8101평. 길이 404m, 폭150m. 건설비용 4500여억원. 규모나 시설로는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그간 일각에서 “보유한 유물 수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하다”고 지적했지만 박물관 측은 “남북 통일시대에 대비한 미래지향적 규모다”고 주장해왔다. 이제는 “우리도 이 정도 박물관을 가질 때가 됐다”는 뒤늦은 호평도 잇따른다.

문화한국의 寶庫 ‘용산 찍고 세계로’

‘열린 광장’에서 바라본 남산과 새 박물관의 모습. 전통적인 배산임수 배치로 설계됐다(왼쪽). 7월20일 개관 D-100일을 앞두고 벌어진 외벽허물기 행사.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6층의 긴 일자형이고, 가운데에 우리 한옥의 ‘대청마루’ 개념을 형상화한 ‘열린 마당’이라 불리는 공간을 중심으로 동서로 연결됩니다. 건물은 북쪽으로 남산을 등지고, 남쪽으로는 한강을 끼고 있는 한국 전통의 배산임수 배치입니다. 정남북을 축으로 한 의미는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고, 옛 가옥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타원형의 연못은 이를 거울삼아 역사를 반추해보자는 의미를 형상화했습니다.”(박승홍 정림건축 사장)

한눈에 확 트인 ‘열린 마당’은 이 박물관의 모든 정신을 집약한 장소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 남과 북을 이어주는 너른 터이기 때문이다. 물론 장구한 한민족의 역사, 나아가 아시아 역사까지도 관람객에게 인도하는 ‘역사적 광장’이기도 하다.

본관은 열린 마당을 중심으로 동관과 서관으로 구분되는데, 동관은 주된 전시공간으로 주 출입구인 으뜸홀과 널찍한 ‘역사의 길’을 중심으로 고고·역사·미술·기증·아시아관 등 51실의 상설전시실로 구성됐다. 이전에 비해 전시실이 4배 규모로 늘고, 전시 품목만 해도 기존의 3배가 넘는 1만2000여점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적 박물관으로 도약할 채비를 갖췄다.

그러나 겉모습과 전시실 규모만 달라진 게 아니라 전시 내용도 확연히 변화했다. 우선 발해관을 신설하여 신라와 함께 남북국 시대로 서술하는 등 그간 진전된 역사 서술방식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아시아관을 신설하여 박물관의 눈이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로 확장된 것도 혁신적이다. 또한 고고미술 전시에서 벗어나 근현대 미술품 전시를 강화, 박물관의 확장된 개념인 ‘역사박물관’으로의 컨셉트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서관에 설치된 기획전시실, 어린이박물관, 도서실, 강의실 등과 복합 문화공간을 구현하는 대극장, 관람객의 편의를 위한 카페테리아와 뮤지엄 숍 등은 전에 볼 수 없었던 박물관 시설이다. 야외 시설과 조경도 눈부시다. 강원도에서 공수해온 금강송으로 조경을 꾸몄으며, 자그마한 돌덩이 하나하나까지 모양과 배치에 신경을 써 세계적인 박물관을 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열린 박물관을 지향하는 만큼 장애자와 노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은 법에서 규정하는 것 이상으로 배려됐다.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안내 표지를 제작한 것은 물론, 화재가 났을 경우에는 빛이 깜박거려 청각 장애자들의 대피 유도를 돕는 시설도 갖추었다. 물론 박물관의 모든 공간은 휠체어로 이동, 관람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이 같은 초대형 건축물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부실시공 논란이나, 2003년에서 무려 2년이나 지연된 공사기간까지. 여기에 못지않게 박물관 측의 발목을 잡은 일은 한국적 전통을 현대적 방식으로 재해석한 박물관 디자인을 전문가들에게 설득시키는 과정이었다. 지금도 “박물관 건물 외면에서 우리의 전통미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박물관 관계자들은 “한국의 전통적 건축양식이란 반드시 한옥이나 기와를 형상화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향한 대범한 단순성으로도 가능하다”고 반박하며 “새로운 전통을 위한 도전”임을 강조한다.

설계상 주목할 만한 점은 과거 지하에 위치했던 유물 수장고가 지상으로 옮겨진 점이다. 통념상 수장고가 지하에 있어야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환기가 어렵고 수재 위험까지 고려하여 지상으로 옮겨졌다. 최첨단 방범과 화재 및 재난 방지 시스템 역시 국보가 자리한 공간에 뒤따르는 필수 항목이다. 새 박물관은 리히터 규모 7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됐다.

새 건물이 들어섬과 동시에 중앙박물관의 성격 역시 고전적인 박물관 개념을 넘어서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앞으로의 중앙박물관은 열린 박물관으로 대중과 직접 소통할 생각입니다. 특히 전시 위주의 박물관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역사박물관, 종합 뮤지엄을 지향할 생각입니다. 유물 수집에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기초부터 튼튼히 준비해갈 계획입니다.”(이영훈 학예연구실장)

박물관의 의미는 아직도 유물의 보관과 전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박물관의 기능이 보고 느끼고 배우는 장소로 확장되면서 공간도 전시실 중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박물관 역시 극장과 강의실, 세미나실, 도서실 등 부대시설이 대폭 확충된 것은 물론, 이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문화재단까지 설립했다.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은 대극장(879석)과 컨벤션 기능을 갖춘 대강당(430석), 식당과 뮤지엄 숍의 관리를 맡아 운영한다. 과거 박물관이 낮 시간 동안에 사람들이 주로 찾던 곳이라면, 앞으로 밤낮으로 전시와 공연이 이뤄지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 과거 공공활동에 한정됐던 박물관의 제약을 뛰어넘어 재단의 설립으로 인해, 기부금 모금이나 수익사업을 벌이는 데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재단 측은 품격 있는 대중 공연을 박물관으로 끌어들여 박물관의 대중성을 높이고, 우리 문화의 품격을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열린 박물관이 되기 위한 변신의 노력도 눈부시다. 우선 대중과 소통하기 힘들었던 한문체 설명 방식을 과감하게 한글로 바꾸기로 했다. 또한 선진국에서 널리 채용되고 있는 민간 자원봉사자 프로그램을 채택했다. 중앙박물관을 찾는 외국인들이나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자원봉사 시스템은 탄탄한 박물관의 교육 시스템이 바탕이 될 때만 성공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앞으로 교육 기능의 활성화 및 박물관 예산을 절감하는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이는 그간 소원했던 박물관과 시민생활의 간격을 뛰어넘고, 동시에 나아가서는 국제적인 박물관으로의 도약을 의미한다.

박물관은 민족 스스로를 비쳐보는 거울이자, 밖으로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얼굴에 해당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연 우리 국민과 정부가 그만한 대접과 지원을 해왔는지 자문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고, 한국 문화를 상징하는 문화수도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벽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특히 용산에 자리할 중앙박물관이 세계적인 규모와 첨단 시설로 정비되었다고 하나, 운영 수준은 세계적인 박물관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건물 규모 비해 운영 인력 태부족 ‘선결과제’

2년 전 지건길 당시 박물관장은 자리를 떠나며 “새 박물관 시대를 준비하면서 가장 시급한 일은 운영 인력, 특히 연구 인력의 확보인데 용산과 비슷한 규모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1800명의 직원이 일하지만 우리는 전국 10개 국립박물관 직원을 모두 합쳐도 300여명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우리 현실을 지적한 적이 있다. 그간 꾸준하게 △학예직 부족, 전문가 홀대△미흡한 유물 확보 △고질적인 예산 부족 △문화관광부 내의 복잡한 권력 관계 등 여러 문제점이 거론돼왔지만 눈에 띄게 개선된 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학예직 및 연구직 인력 보강이다. 개관 직전의 중앙박물관은 78명의 학예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수만 해도 그간 두 배 이상 증가시킨 인력이다. 실제로 새 박물관은 세계적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전시실 규모 면에서만 비교가 가능할 뿐, 소장 유물이나 이를 관리하는 전문 학예사 수에서는 10%에 불과해 비교하기조차 쑥스러운 현실이다. 또한 화려한 전시장에 대비되는 미흡한 소장품은 구태의연한 전시가 반복될 우려를 안기고 있다.

7월20일, 아직 이러한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적인 개관 100일을 앞두고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명실상부한 국립박물관으로서 국민에게 친근한 박물관, 세계 속의 중심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주간동아 2005.08.02 496호 (p12~15)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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