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4

2016.09.07

정치

이정현의 벌써 한 달 남은 건 3개월뿐

현안엔 침묵, 주변만 맴돌아…새누리당 대표로서 존재감 바람처럼 안 보여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09-02 16: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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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한 달’이다. 이러다 ‘벌써 일 년’이 될까 걱정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이야기다. 그의 대표 당선(8월 9일)이 어차피 대박 사건은 아니었다. 그래도 기대가 없지 않았다. 보수 정당 첫 호남 대표에 입지전적 신화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 달, 이 대표는 무엇을 이뤘을까.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물 위에서 유유자적 노니는 백조도 물 아래 발놀림은 분주하다. 이 대표는 언제나 분주하다. 부산하기조차 하다. 발놀림에 열심이라는 점에서 백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앞으로 나아가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청업자라면 관계없다. 어차피 주어진 일만 해주면 그만이다. 반면 자영업자라면 이래선 곤란하다. 굶어 죽기 십상이다. 발놀림이 아니라 발버둥을 쳐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거친 뒤다. 그래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 비대위가 비대위다웠는가. 혁신형 비대위라고 이름 지어졌지만 관리형 비대위에 머물렀다. 당연히 새 지도부는 혁신에 박차를 가해야 했다. 총선 참패 이후 차일피일 미룬 혁신이다. 내년 대통령선거(대선)도 임박했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 대표도 혁신을 강조했다. ‘유능하고 따뜻한 보수 혁신’이라는 기치 아래 “새로 구성된 지도부가 제대로 된 새누리당 혁신을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전당대회 직후 대표 수락 연설에서도 “유능하고 따뜻한 혁신 보수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대표 경선 초반 누구보다 먼저 혁신을 들고 나왔던 비박(비박근혜)계 김용태 의원조차 “이정현 대표가 하는 새누리당 혁신의 길에 기꺼이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힐 정도였다. 이 대표는 요즘 혁신을 말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슈퍼스타K’ 방식으로 대선 경선을 치르겠다고 공약했다. 경선 혁신이다. 당장 이것부터 제동이 걸렸다. 주요 대권주자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먼저 비박계 김무성 전 대표가 “지난 총선 당시 비례대표를 ‘슈퍼스타K’ 방식으로 선출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다른 사람들이 반대해 못 했다”면서 “대선후보 선출은 당헌·당규에 못 박혀 있다. 그대로 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친박(친박근혜)계 정우택 의원도 “일국의 대통령이 될 후보를 뽑는 일에 인기 연예인이나 가수를 뽑는 방식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또한 “특정 주자를 세우기 위한 방식으로 고려되고 있을 개연성이 있는 만큼 지켜볼 필요는 있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당내 유력 대권주자들의 이런 부정적 인식을 바꾸려면 빨리 설득에 나서야 한다. 올해 안에 전국위원회와 상임전국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도 개정해야 한다. 시간은 3개월뿐이다. 더욱이 정기국회 중이다. 그런데 잠잠하다.

    당직 혁신도 약속했다. 그러나 당직 인선이 계속 미뤄져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이 또한 반응은 느리기만 하다. “당직에 대해서는 일절 서두르지 않을 것이고, 예고도 하지 않을 것이며, 지금처럼 아주 긴 템포로 천천히 해나갈 것이다.” 여럿 숨넘어가게 생겼다.





    바람타령 하다 보낸 한 달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야당이 연일 우 수석의 자진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비박계는 물론 친박계조차 자진사퇴 불가피론을 제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병우 사수에 나선 친박계는 손에 꼽을 정도다. 정진석 원내대표조차 거듭 “민심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며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터다. 이런 속에서도 이 대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도 역할을 한다”는 이른바 바람론을 언급한 후 침묵 모드에 들어갔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지론인 ‘소이부답(笑以不答)’을 떠올리게 한다.

    워낙 과묵한 편이라면 납득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온 국민이 아는 이 대표는 최소한 말하기를 즐기는 애변가, 더 나아가 말을 참지 못하는 폭변가다. 자진사퇴가 맞다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는 저간의 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당 대표가 여야 간 쟁점으로 떠오른 중요한 정치 이슈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용서받기 어렵다. 급기야 국민의당이 말 못 하는 이 대표를 ‘무기력한 식물대표’라고 명명하기에 이르렀다.

    비판론은 야당 쪽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비박계 김성태 의원 역시 “이 대표는 절대 바람같이 일하는 분이 아니다”라며 “과연 민심을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집권당 공당의 대표인지 일손을 잠깐 내려놓고서라도 되새겨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변인 격 시절, 그리고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당시 이 대표의 발언 수위는 거의 태풍 수준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미풍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당청관계에서 최소한 자기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무기력한 여당 대표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이 대표에 대해 최근에는 ‘한시적 대표’에 불과하다는 혹평까지 나온다. 비박계 하태경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내년 초부터는 대선후보 중심의 정국이 된다. (중략) 이 대표의 사실상 임기는 연말까지다. 4개월 정도밖에 안 남았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인데, 그만큼 대표 권위가 실추됐다는 방증이다. 대표의 권위 실추는 당 지도부·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 핵심 중진 절반 이상이 불참한 데서도 확인 가능하다. 시작이 이러할진대 끝이 어떠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금세 일 년

    2017년 대선에서 패배하면 이 대표는 무조건 사퇴해야 한다. 내년 4월 재·보궐선거(재보선)에서 참패해도 사퇴론에 시달릴 것이다. 어쩌면 비대위에 권한을 넘겨줘야 할지도 모른다. 19대 총선 당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던 당선인은 79명이었다. 이 가운데 8명이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재선거를 치렀다. 20대 총선은 당선인 104명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들 가운데 몇 명이나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그래도 19대 총선 때보다 늘어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당연히 내년 4월 재보선도 미니 총선으로 판이 커질 공산이 크다.

    최근 ‘제3지대론’이 힘을 얻는 중이다. 개헌을 매개로 한 중도보수 신당 창당이 가시화한다면 내년 4월 재보선은 정계개편의 중대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이런 파고를 넘어서야 하는데, 대표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재보선에서 또다시 참패하고 만다면? 당연히 당내외 비판론과 사퇴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대표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다. 새누리당의 사실상 오너는 박 대통령이다. 당내외 비판론과 사퇴론이 거세질수록 이 대표의 박 대통령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질 것이다. 이제까지 두 사람이 일해온 방식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럴수록 이 대표는 당 내외에서 더욱 고립될 것이라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조언한 것처럼 ‘소명의 시간까지 고난을 벗 삼아’ 살아간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1년 뒤인 내년 9월까지 새누리당은 대선후보를 결정해야 한다. 이 대표의 취임 1주년 직후다. 그때까지 용케 살아남더라도 2017년 대선에서 패배하면 사퇴는 불가피하다. 물론 승리하면 차기 정권 총리 후보로 등극한다. 취임 1주년을 맞는 내년 8월 9일 이 대표는 어떤 소감을 내놓을까 궁금하다. 대선 승리에 파란불이 들어왔다고 말하려면 닥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혁신 일 년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혁신이다. 경선 혁신과 당직 혁신을 비롯해 정책 혁신까지 이뤄야 한다. 전제조건은 친박패권주의 청산, 곧 박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이다. 이 대표로서는 피하고 싶은 일이다. 배신자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도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의 가신, 그러니까 내시로 끝난다. 그런 점에서 이 대표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이 대표에게 가장 부족해 보이는 점은 숲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표 자질에 회의론이 이는 가장 결정적 이유다. 빨리 참모의 인식을 버리고 지휘관으로서 비전을 갖춰야 한다. 이 대표가 취임 이후 추진한 일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최고위원회의 전면 비공개’다. 정당사에 남을 ‘혁신적’ 조치였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또 비박계 내에서는 반대론을 원천봉쇄하는 반혁신적이고 비민주적 조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제는 이조차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8월 10일 첫 최고위원회의 때 당대표와 원내대표 발언만 공개했다. 그다음 날에는 전부 비공개로 전환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7일에는 최고위원 개개인의 발언을 전면 공개했다. 그다음 날에는 원내대표 발언만 공개했다. 절차적으로도 원칙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혁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눈길을 끈 것은 최고위원회의 개최 시간을 오전 9시에서 7시 30분으로 당긴 조치다. 열심히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는 있겠다. 하지만 언론 몰래, 결국 국민 몰래 최고위원회의를 해치운 뒤 선별한 결과만 알리겠다는 속셈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이런 사소하고 지엽적인 조치가 혁신이냐고 반문하고 싶다.

    그나마 민생 현장을 챙기는 것은 눈에 띈다. 민생을 챙기는 일은 정책 혁신 관점에서도 필요한 조치다. 그런데 이조차 숲보다 나무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8월 26일 이 대표는 콜레라, C형간염, 학교급식 집단식중독 관련 긴급 당정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24일 김광림 정책위원회 의장 주재로 식중독 당정회의를 가진 지 이틀 만이다. 31일에는 최수일 울릉군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원을 약속했다. 대표 취임 직후 정몽규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선수단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하기도 했다. 이렇게 직접 챙기다 보니 정책위원회 의장단이 항상 5분 대기조 상황이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열심히 한다. 다만 주요 이슈에 침묵함으로써 늘 주변을 맴돈다는 인상만 주는 것이 문제다. 이런 당대표도 처음이 아닐까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계속 이런 행보를 보일 요량이면, 차라리 청와대로 가서 비서실장을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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