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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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없이 그대로 봐 주세요”

모국 찾은 해외 입양인들의 ‘코리아 일기’… 정체성 혼란 속에 동정은 ‘사절’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

    입력2005-02-22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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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 없이 그대로 봐 주세요”
    당시 마을에 동양인이 거의 없어 나는 특이한 존재였죠. 종종 ‘눈이 작고 치켜올라간 아이’라며 놀리더군요. 지금이라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텐데 그때는 너무 속상했어요.”

    3월17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 건물 2층의 미지센터(Mizzy Center)에는 30여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모두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전형적인 동양인. 하지만 대화는 내내 영어로 이루어졌다. 어릴 적 해외로 보내진 입양아 출신이기 때문. 이 모임은 ‘해외 입양인 연대(GOAL·Global Overseas Adoptee′s Link)’에서 활동하는 입양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모인 토론의 자리였다. 주제는 어릴 적 느꼈던 인종차별. 학교에서, 사회에서 겪었던 차별을 떠올리는 이들의 얼굴은 슬프기보다는 오히려 담담해 보였다.



    사고 방식 ‘외국인’ 겉모습만 ‘토종’

    “편견 없이 그대로 봐 주세요”
    1998년 3월에 창립한 ‘해외 입양인 연대’(http://www.goal.or.kr)는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해외 입양인’에 의해 자생적으로 설립된 단체다. 어릴 적 해외에 입양되었다가 성인이 되어 모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주목적. 여기에 뜻을 같이하는 한국인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모국을 방문한 해외 입양인 500여 명이 이 단체의 도움을 받았고, 50여 명이 이 단체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친부모 찾기’를 통해 가족을 찾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체를 만든 해외 입양인들은 한국에 돌아와 최소 1년 이상 살았거나 살 예정인 사람들이라는 사실. 단순히 여행을 위해 한국에 온 게 아니라 장기간 한국에 ‘살려고’ 온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한때 자신을 버렸던 모국을 다시 찾은 것일까. 그리고 언어와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다른 이들이 겪은 ‘한국살이’는 과연 어떠했을까.

    ‘해외 입양인 연대’의 진인자 대표(30·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마다 한국에 돌아오는 이유가 다르죠. 일부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일부는 한국에 영구 귀화하기 위해 돌아옵니다. 그러나 상당수는 자신을 낳아준 나라인 한국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을 갖고 한국 사회-문화를 체험하려고 옵니다.”

    “평소 한국은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물론 내가 태어난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없지는 않았죠. 그러나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한국에서 며칠 지낸 뒤였어요. 한국인들과 말하다 보면 내 안에 비슷한 정서가 숨어 있는 것 같아 한국인으로서의 나를 찾고 싶었습니다. 친부모도 만나고 싶었고요.” 두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박재명씨(26)의 말이다. 지난해 7월 돌아온 그는 3년 정도 한국에 살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울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한국살이’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언어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어렸을 때 입양됐기 때문에 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초등학교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더러 누리는 외국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를 받는 것도 아니다. 겉모습은 ‘토종’ 한국인이랑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편견 없이 그대로 봐 주세요”
    “누구나 우리가 한국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죠. 한번은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은 적이 있어요. 내가 대답을 못하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냥 가버렸죠. 또 공공장소에서 영어로 대화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어요.” 두 살 때 스웨덴으로 입양된 이원순씨(21·여)의 말이다. 그는 한국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오해받은 적도 많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확하지 못한 발음 때문에 택시 운전기사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과 송파구 ‘신천’을 혼동했던 일, 한국말이 짧아 직업을 구하지 못한 일 등 난감했던 순간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이들에게 가장 서운하고 힘든 것은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눈길’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인과 우리가 살아온 환경은 전혀 달라요.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 관점에서 어긋나면 쉽게 실망하고 편견을 가지죠.” 역시 두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김창호씨(28)의 말이다.

    이들에게는 해외 입양인에 대한 어설픈 동정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일곱 살 때 덴마크로 입양된 방화진씨(29)는 “사람들은 내가 해외 입양아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면 항상 ‘I′m sorry’라는 말을 해요. 나는 슬프거나 불행하지 않습니다. 물론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은 적은 있었죠. 하지만 부모님의 따뜻한 애정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우리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이들은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 오히려 해외 입양인에 대한 편견을 키웠다며 자신들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진인자 대표는 “사람들은 우리를 ‘해외로 입양된 한국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식으로 복잡하게 정의하죠. 하지만 저는 저 개인으로만 봐주길 바랍니다.

    다른 입양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죠”라며 해외 입양인에 대한 편견을 버려달라고 부탁했다. 1950년 이후 해외로 입양된 한국인은 20여만 명. 우리의 ‘편견과 몰이해’가 고향을 찾으려는 이들의 발길을 막아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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