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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채시라’가 많아야 나라가 산다

‘채시라’가 많아야 나라가 산다

‘채시라’가 많아야 나라가 산다
강의시간에 채시라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학생들이 ‘와’하고 웃는다. 예뻐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더니 ‘에이’ 하며 또 웃는다. 사실 예쁘기도 하다. 그러나 채시라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그가 ‘프로’이기 때문이다. ‘무늬’만 탤런트가 아닌 것 같다. 농염한 연기에서부터 표독한 여인상 또는 능글맞기 이를 데 없는 역할까지 ‘찬란한 변신’을 거듭하는데, 모두 다 그럴듯하다. 주어진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전념한다면 누군들 예뻐보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우리 주변에는 멋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직업의식에 투철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름대로의 카리스마가 형성된 사람들. 이를테면 ‘불곰’ 김응룡 감독이나 ‘영원한 오빠’ 조용필 같은 프로는 한마디로 멋지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 산속에 묻혀 사는 이름 없는 젊은 시인도 정말 아름답다.

임권택 감독도 존경스럽다. 그는 새 작품을 시작하기 6개월 전부터는 일절 다른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행여 자기만의 세계를 담는 데 방해받을까 염려해서다. 그가 만든 영화 ‘서편제’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눈 덮인 계곡을 내려다보며 소리 공부하는 눈먼 소녀는 특히 우리를 전율케 한다. 창(唱)하는 사람들은 득음(得音)을 위해서라면 ‘똥물’ 마시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3년 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교환교수를 할 때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이제는 유학생도 아니고 명색이 같은 교수인데 일방적으로 밀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입술이 부르트게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억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부족하다 하더라도 이네들 같은 환경 속에서 같이 부대끼며 경쟁한다면 나도 무엇인가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끊임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여건도 여건이지만 결국은 사람이 중요한 것임을 뒤늦게, 그것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곳 교수들은 공부밖에 모른다. 그야말로 외곬이다. 술자리도 멀리 하고 신문에 글도 안 쓴다. 세상일에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공부만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자기만의 성을 높이 쌓는 ‘프로 교수’가 되는 것이다. 부끄러울 뿐이다.

플라톤이 어떤 철학자인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플라톤이 이상국가의 요체가 되는 정의(定義)에 대해 설파하는 장면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 철리(哲理)라는 것이 너무 단순하다 못해 싱겁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각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정의의 핵심이란다. 정치가는 정치가로서,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꾼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열심을 다할 때, 그런 사람이 모인 사회가 정의롭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주변에 프로가 넘쳐나면 그곳이 바로 ‘아름다운 국가’라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이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혼란스럽고 지지부진한지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말만 번지레한 사이비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름 값도 못하는 주제에 욕심만 앞서는 자들로 그득하니 나라가 제대로 될 리 없는 것이다. 가수는 뭐니뭐니해도 노래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어쭙잖은 얼굴이나 춤 솜씨로 가수 행세를 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가수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이 먹혀들어간다. 본말전도(本末顚倒), 이것이 우리의 실상이다. 그러니 누가 목소리를 트겠다고 폭포수 아래로 달려갈 것인가. 누가 배곯아 가며 ‘순수’를 붙들려 할 것인가. 껍데기들만의 천국, 그대 이름은 ‘영원한 개도국(開途國)’인가.

새천년이니 어쩌니 하며 유난을 떨더니 결국은 올 한해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가 보다. 모두가 의기소침해 있으니 송구영신(送舊迎新) 기분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럴수록 거울을 자주 보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내가 프로가 될 자격이 있는가. 나 스스로부터 주변을 정돈하며 마음을 다잡는 것, 그것이 나도 살고 나라도 살리는 첩경이다. ‘아름다운 국가’를 만드는 길, 알고 보면 가까운 데 있다.



주간동아 2000.12.28 265호 (p96~96)

  • < 서병훈 숭실대교수·정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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