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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자의 문화유산 산책

동굴학자들도 탄복한 세계 최고 지하보물

제주 용천동굴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sjchoi5402@naver.com

동굴학자들도 탄복한 세계 최고 지하보물

동굴학자들도 탄복한 세계 최고 지하보물

당처물동굴 내부.[사진 제공 · 이광춘]

지금까지 한국 문화유산을 취재하면서 이처럼 감동적인 장면은 본 적이 없다. 제주 지하에 있는 보물 동굴 이야기다. 신비로운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동굴 속 사람 흔적은 통일신라시대 것만 나오고, 당시 온갖 토기들이 지금도 물속에 잠겨 있다.

세계적 동굴학자인 영국 크리스 우드는 이렇게 말한다. “용천동굴에 들어간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얼마나 멋지고 우연한 발견인지! 이 동굴은 웅장하고 아름답죠. 하얀색과 노란색, 그리고 붉은색이 어우러진 석회질 생성물이 동굴 절반을 덮고 있어요. 긴 호수가 있는, 평범하지 않은 내부는 인상적입니다. 동굴에 들어온 신라인의 흔적도 진흙바닥에 남아 있어요. 동굴 속 어두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눈이 먼 물고기도 살고 있죠.”

호주 지질학자 앤디 스페이트가 덧붙인다. “세계 22개 나라의 동굴에 가봤지만 용천동굴은 독특한 최고의 용암동굴입니다. 탄소 퇴적물의 규모와 풍부함은 세계 어느 동굴과도 견줄 수 없어요.”

이런 동굴학자들의 감탄 속에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이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1972년 인류 전체를 위해 보편적 가치가 뛰어난 유산을 보호하고자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을 채택하고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 그리고 두 성격을 지닌 세계복합유산을 등재하기 시작했다. 2015년 말 현재 163개국의 1031건(세계문화유산 802건, 세계자연유산 197건, 세계복합유산 32건)이 등재된 상태다. 우리나라 세계문화유산은 11건(석굴암과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수원 화성, 창덕궁, 남한산성,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경주역사지구, 백제역사유적지구, 조선 왕릉, 하회와 양동마을), 세계자연유산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1건이 등재됐다.





전봇대 교체 공사 중 우연히 발견

동굴학자들도 탄복한 세계 최고 지하보물

1 나무뿌리에 석회질이 입혀진 당처물동굴 석주. 2 용천동굴의 아름다운 석회질 종유관. 3 당처물동굴 내부. 4 용천동굴 상류 막장. 모래로 입구가 막혀 있다 [사진 제공 · 이광춘]

용천동굴은 우연히 발견됐다. 2005년 5월 전봇대 교체 공사를 할 때였다. 지질학자인 이광춘 박사(상지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기존 전봇대를 바꾸려고 땅을 깊이 파다 시추 장비가 푹 들어가서 주변을 넓게 팠죠. 거기에서 굴이 나왔어요. 그때 한창 당처물동굴과 만장굴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신청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이 동굴을 발견해 행운이었어요.” 지금도 제주는 그 전봇대 밑동 일부분을 그대로 두고, 용천동굴 발견을 기념하고 있다.

제주에는 이미 만장굴과 빌레못동굴 등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처물동굴은 2001년 한 농부가 밭을 갈다 발견해 학계에 보고되면서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탄산염 성분의 생성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천동굴 발견은 더욱 대단했다. 이전까지 알려진 동굴과는 성격이 달랐다. 지질학적 경관 가치가 세계 최고로 평가됐다.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해 사전 실사팀이 용천동굴을 본 후 나머지는 더 볼 필요가 없다고 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우경식 국제동굴연맹(UIS)회장(강원대 지질학과 교수)은 동굴의 가치를 강조한다. “1997년 문화재청과 제주도가 세계자연유산 신청을 준비할 때 한라산 식물이나 동물에만 주목했죠. 그때만 해도 화산섬 제주가 가진 지질학적 가치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어요. 제주의 탁월한 경관적·지질학적 가치는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에 있죠.”

용천동굴은 전혀 손상되지 않은 자연의 신비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탄산염 종유관이 장관이다. 제주를 둘러싼 바다에서 생성된 모래가 바람에 의해 동굴 위에 쌓이고, 여기에 비가 내리면 탄산염이 만들어져 동굴로 스며든다. 아름다운 용암종유와 석순은 오랜 세월 스며든 빗물의 조화다. 나무뿌리가 내린 곳은 탄산염이 겹겹이 쌓여 많은 기둥을 만들어낸다. 석회암동굴의 특징인 종유석이 용암동굴에 대규모로 생긴 곳은 세계에서 제주가 유일하다.

동굴의 석순은 제주를 비롯한 한반도의 기후 변화를 추적하는 자료가 된다. 용천동굴 석순을 측정한 결과 연간 0.033mm씩 성장했고, 성장띠는 연간 0.02~0.07mm씩 자랐다. 우경식 교수는 지난 600년간 성장한 석순 내 미량원소 마그네슘과 칼슘의 농도비를 분석한 결과 소빙하기에서 현세 온난기로 넘어오며 기후가 변화돼 온도와 강수량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2014년 조경남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와 우경식 교수가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은 논문도 동굴 석순이 주요 자료가 됐다. 동굴 안 석순이 따뜻하고 습윤한 간빙기에 잘 자라고 빙하기에는 정체됐으며, 북반구와 남반구가 서로 반대되는 성장기를 가졌다고 밝혔다. 지구온난화로 슈퍼 간빙기가 올 것인지, 아니면 지구가 차가워져 빙하기로 전환될 것인지를 알아내는 기초 자료가 바로 동굴 석순이다.

해발 454m의 작은 화산인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지표를 따라 약 13km 떨어진 해안까지 흘러가면서 형성된 일련의 동굴을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라고 한다. 이 동굴들은 각기 이름이 있다.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이다.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은 육지의 석회암동굴에서 볼 수 있는 종유석, 석순, 종유관, 석주, 석화 등 각종 탄산염 성분의 생성물로 만들어진 장관이 세계적으로 유일하다고 평가받는다.

이 용암동굴계 가운데 가장 늦게 발견된 용천동굴에서만 인간의 흔적이 나왔다. 통일신라가 멸망한 지 1070년 만에 용천동굴 속 신라 유산이 세상과 조우했다. 토기 20여 점과 철제망치 1점을 포함한 철기 3점, 멧돼지 뼈 등 70여 점을 수습했다.



천년 전 신라인은 왜 동굴에 들어갔을까

동굴학자들도 탄복한 세계 최고 지하보물

용천동굴 출입구에 서 있는 호주 지질학자 앤디 스페이트(왼쪽). 용천동굴 안에 앉아 있는 우경식 교수와 이광춘 박사(왼쪽부터).[사진 제공 · 이광춘]

2005년 처음 용천동굴에 들어간 이광춘 박사는 3.4km 동굴 전역에서 통일신라시대 토기를 발견했다고 설명한다. 깨진 토기가 대부분이지만 완형도 있었다. “멧돼지 혼자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멧돼지 뼈를 발견했어요. 2011년 국립제주박물관이 ‘용천동굴의 신비’ 특별전을 하면서 맞춰봤는데 신기하게 족발 4개는 발견되지 않았죠. 인위적으로 자른 거예요. 동굴 내에 쓰인 글자 ‘화천(火川)’도 흥미롭고요. 아직 호수 안에는 긴 통나무와 토기가 많이 있습니다.”

국립제주박물관은 토기 원료가 제주 화산토는 아니고, 7세기 후반부터 9세기까지 만든 통일신라 ‘도장무늬토기’로 추정했다. 한반도 서남부에서 출토되고 통일신라 귀족이 사용하던 토기라고 한다. 제주에서 나오지 않는 홍합과 꼬막 껍질도 출토됐는데, 이로 미뤄 짐작해보면 통일신라시대 육지에 살던 귀족이 용천동굴에 드나든 것이다. 그들은 왜 왔을까.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형상(1653〜1733)이 만든 화첩 ‘탐라순력도’에는 김녕사굴만 기록돼 있다. 용천동굴은 모르고 있었다. 전남 완도에서 해상활동을 한 신라인들이 우연히 동굴을 발견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들이 동물과 해산물을 제물로 해 의식을 치르지 않았을까. 김상태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실장은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이 왜 용천동굴 안으로 들어갔는지,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토기를 사용했는지는 알기 어렵죠. 제사를 지내거나 임시 피난처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용천동굴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전용문 박사(제주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는 “한 시점에만 사람들이 출입하다 자연적 또는 인위적 이유로 동굴이 폐쇄된 것은 맞지만, 내부 습도가 매우 높아 빛이 멀리 빠져 나갈 수 없어 임시로라도 사람이 살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한다.

용천동굴이 더 흥미로운 것은 약 800m 길이의 ‘천년의 호수’가 있어서다. 200m는 물이 반쯤 차 있고, 600m는 물로 가득 찬 수중동굴로 염분이 포함된 점으로 봐서 바다와 연결된 상태인 듯하다. 호수를 탐사했던 우경식 교수는 “호수 진흙 속에 눈이 먼 흰 물고기가 살아요. 바다에서 사는 망둥이 종류로, 휩쓸려 들어왔다 동굴이 막히자 독자적으로 진화해 생존해온 거죠. 최근 제주대에서 연구한 결과 시신경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어요”라고 설명했다.

국립제주박물관은 올해 말 용천동굴 학술조사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현재 용천동굴은 개방하지 않고 있다. 인터넷으로 ‘세계자연유산 제주’의 동굴가상체험관에 들어가면 3D(3차원)로 만든 용천동굴을 볼 수 있다. 

동굴학자들도 탄복한 세계 최고 지하보물

용천동굴에서 발견된 멧돼지 뼈. [사진 제공 · 이광춘]

동굴학자들도 탄복한 세계 최고 지하보물

◀ 용천동굴에서 수습한 통일신라 도장무늬토기. ▶ 용천동굴 호수. [사진 제공 · 이광춘]





주간동아 2016.06.08 1041호 (p72~74)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sjchoi54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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