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전 아라비아 반도는 사막이 아니라 호수 수천 개가 있는 초목이 무성한 땅이었다. 유향과 몰약이 오갔고, 그 교역로에 도시가 번성했다. 이슬람 순례자들도 그 길을 따라 모여들었다. 5월 9일부터 8월 27일까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아라비아의 길-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는 바로 이 지역을 조명한 전시다. 130만 년 전 구석기부터 20세기 초 근대 유물까지, 귀한 아라비아 문화재 466점이 한국에 왔다. 사우디아라비아 13개 박물관에서 선별한 중요 문화재들이다.
이 유물들은 2010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시작으로 독일, 스페인,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을 순회 중이다.
1998년 여름 사우디아라비아 담맘박물관 발굴단이 황폐화된 고대도시 타즈의 성벽 밖에서 도굴을 피한 무덤 하나를 발견했다.
부서진 관 일부를 제거하자 황금가면과 함께 보석이 장식된 목걸이, 팔찌, 귀고리와 반지, 금판, 금단추 등 화려한 장신구가 나왔다. 머리를 북쪽으로 둔 채 잠들어 있는 무덤 주인은 6세가량의 여자아이였다. 1세기 무렵 타즈를 다스리던 세력가의 사랑스러운 자녀였을 것이다. 이 무덤에서 발굴된 그리스식 황금가면은 고대도시 타즈가 그리스 · 로마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유물을 이번 특별전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다섯 주제로 구성된다. 처음은 기원전 4000년대 석상이 인도하는 선사시대다. 아라비아 북부와 남서부에서 출토된 석기는 인류의 정착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 제2부 ‘오아시스에 핀 문명’은 딜문(Dilmun)으로 알려진 고대문명을 보여준다. 이 문명이 자리 잡은 아라비아 만 연안은 기원전 3000년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계곡을 잇는 해상 교역로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거대한 두 문명이 교류한 흔적은 다채로운 무늬의 녹니석 그릇에서 확인된다.
기원전 1000년 무렵 아라비아에는 향 교역로가 생겨났다. 전시 제3부 ‘사막 위의 고대 도시’는 향 교역으로 번성한 북서부의 타이마(Tayma), 알울라(al-Ula), 까르얏 알파우(Qaryat al-Faw) 등을 소개한다. 제4부 ‘메카와 메디나로 가는 길’은 6세기 이후 형성된 이슬람 순례 길을 조명한다. 메카의 카바 신전에 있던 문도 전시된다. 제5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탄생’은 초대 압둘아지즈 왕의 유품과 19세기 공예, 민속품 등을 선보이며 왕국의 역사를 소개한다.
김승익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 연구사는 “이 전시를 위해 국립사우디아라비아박물관의 상설전시실 진품이 모두 서울로 왔다. 현재 그곳에선 복제품을 전시 중”이라고 했다. 아라비아의 130만 년 전 구석기 올도완기 찍개부터 지난 40여 년 동안 고고학자들이 사막에서 발굴한 출토품, 20세기 초 왕국의 탄생 유물까지 모두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아라비아 역사 개설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