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바닷속에 들어가 유물을 발굴한다. 2015년 10월 19일 충남 태안 앞바다 누리안호에서 만난 이 학예연구사는 ‘마도4호선’ 발굴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는 “충북대 재학시절부터 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중유물 조사연구에 참여했다. 이후 다이버 자격증까지 땄다”고 밝혔다.
마도4호선은 2015년까지 발견된 고선박 14척 가운데 처음 확인된 조선시대 선박이다. 배 안에서 발견된 목간(木簡·글씨가 쓰인 나무패) 63점 중 52점에 나주 광흥창(羅州 廣興倉)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배 출발지가 나주, 도착지가 광흥창이란 뜻이다. 이를 통해 마도4호선이 전남 나주 조창에서 출발해 서울 마포구 광흥창으로 가다 난파한 조운선(漕運船·세금용 쌀 등을 운반하던 배)인 것으로 확인됐다.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인 마도4호선은 발굴 당시 수심 9~15m 지점에 뱃머리가 남동쪽을 향한 채 묻혀 있었다. 선체 길이 12m, 폭 5m, 선심 2m로 가로형 구조인 배의 앞부분과 뒷부분 기둥 일부도 남아 있었다. 고려시대 선박과 달리 배가 벌어지거나 안으로 오므라들지 않도록 배의 좌우 외판재를 연결하는 가룡목(加龍木)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 배에서는 분청사기, 목간, 세곡(稅穀), 선원들의 생활용품 등 다양한 유물 386점이 발굴됐다.
이 가운데 마도4호선의 연대와 성격을 밝히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유물은 분청사기 155점이다. 이 중 3점에 궁중물품을 관리하던 ‘내섬시(內贍寺)’를 뜻하는 ‘내섬’이란 글씨가 쓰여 있어 궁궐에 공납하던 분청사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부가 관청 이름 내섬을 분청사기에 새긴 때는 1417년(태종 17)이고 해당 그릇 모양이나 무늬, 그리고 제작 기법은 15세기 초반 양식이다. 이에 따라 마도4호선에 실려 있던 분청사기가 1417~1425년(조선 태종·세종 재위기) 만들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보존센터에서 보존 처리 중인 분청사기 가운데 새와 물고기를 새긴 분청사기 대접 3점도 눈길을 끈다. 조선 초기 분청사기는 무늬가 활달한 것이 특징인데, 이들 대접은 특히 그렇다. 새의 눈동자는 600년을 건너 우리를 보고 있는 듯하고, 물고기들은 금방이라도 펄떡일 것 같다. 홍광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다른 분청사기는 완충재로 짚단을 사용한 반면, 새와 물고기 대접 3점은 직물에 싸여 있었다”고 했다. 귀한 사람이 사용할 그릇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도4호선에서는 목간을 제외한 목제 유물 127점도 나왔다. 이 중에서는 바가지 모양의 목제품이 중요 유물로 평가된다. 물푸레나무 속을 직육면체 형태로 파내 만든 이 목제품은 곡물량을 재던 도구로 보이는데, 용량 측정 결과 세종시대 사용하던 승(升·되)과 일치했다.
조선시대 화가 유운홍(劉運弘·1797~1859)이 그린 풍속화에는 가로형 세곡 운반선이 나온다. 배 가득 세곡을 싣고 쌍돛을 세운 조운선에서 뱃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뱃머리의 네 사람이 닻을 올리고, 뒷부분의 두 사람은 긴 장대로 배를 밀어 방향을 잡는다. 마도4호선은 이 그림 속 배와 같은 모양이다. 마도4호선은 태안 앞바다 뻘 속에 묻혀 있지만, 여기서 발굴한 유물들은 6월 완공될 태안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서해수중유물보관동 전시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