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건대 그림엔 문외한입니다. 어렸을 때는 꽤나 즐겼던 것 같기도 한데 어느 순간 그림 그리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다들 먹고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그림에 대한 추억은 서랍 속 깊숙이 넣어둔 채 하루하루를 바삐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좀 달랐습니다. 회사에서 기획자로 바쁘게 일하다 문득 잊고 있던 스스로를 기억해낸 겁니다. 그리고 다시 붓을 잡았습니다. 책을 보면서 독학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보고 듣고 배우면서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처음엔 그림을 잊고 사는 저와 별 차이 없어 보이던 그의 그림 실력은 비 온 뒤 죽순처럼 쑥쑥 자라났습니다. 재미를 불쏘시개 삼은 행복한 몰입의 힘이었습니다.
요즘 주변에 그런 분이 많습니다. 직장이나 사업 등 각자 일이 있음에도 새롭게 붓을 들거나 악기를 시작한 아마추어 예술가 말입니다. 그림뿐 아니라 캘리그래피, 서예, 드럼, 플루트 등 분야도 다채롭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찾았다’는 겁니다. 바쁜 일상에 지쳐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니 그 안에 정작 나 자신은 없더랍니다. 이른바 ‘번아웃(burnout) 증후군’입니다. 처음엔 왜 태우는지 그 이유가 명확했지만 쳇바퀴 도는 듯한 도돌이표 일상에서 어느덧 이유는 잊히고 다 타버린 재만 남은 겁니다. 씁쓸하기 짝이 없는 현대인의 자화상입니다.
필요한 건 ‘용기’입니다.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계속 밀려만 가는 어제 같은 오늘에서 과감하게 뛰어내려야 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붓을 잡고 악기를 든 겁니다.
내 삶은 내가 경영한다!
제가 알던 그 기획자 친구도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참 나’를 찾았습니다. 그림을 취미로 삼은 지 3년여, 그는 회사에 사표를 썼습니다. 그리고 취미 드로잉 강좌를 열었습니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 ‘함께’ 그림을 그립니다. 벌써 350명 넘는 사람이 그와 함께 그림을 그렸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프로작가가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잊고 있던 나를 찾고자 마주한 하얀 도화지입니다. 그림을 통한 행복한 자기치유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그림은 진솔하고 담백합니다. 기교로 가득한 ‘보여줌’의 그림이 아니라 집밥 같은 질박함이 정겨운 그림입니다. 그중 작가 열여섯 분이 흐드러진 봄을 맞아 작은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도 전해왔습니다.그 기획자 친구가 회사에 사표를 낼 때 제게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두렵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얘기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안전할까, 아니면 내가 직접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게 안전할까.” 물론 둘 다 불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하는 운전에는 오롯이 내가 있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려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한 번 사는 인생입니다. 그 삶 한가운데 내가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잊고 살던 스스로를 그렇게 찾은 기획자 친구, 아니 작가 친구가 준비한 소박한 전시회가 아직 상자를 부수고 나오지 못한 많은 분에게 작으나마 용기와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장진천 ‘드로잉프렌즈’ 대표가 기획한 온라인 그림전시회 ‘시간을 거슬러 산책’展(bit.ly/sanchaeck)입니다. 내 삶의 경영, 행복해야 합니다.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핀란드 알토대(옛 헬싱키경제대) 대학원 MBA를 마쳤다.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 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