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아시아 e스포츠 및 체육계에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lympic Council of Asia · OCA)와 알리스포츠(Alisports)가 전략적 제휴를 맺고 2022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에서 e스포츠를 정식종목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힌 것.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아경기대회에서 먼저 e스포츠를 시범종목으로 선보이는 계획도 함께 공개했다.
OCA의 협력사 알리스포츠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자회사이자 스포츠 콘텐츠 기업으로, 지난해 총상금 40억 원이 넘는 국제e스포츠대회 ‘WESG(World Electronic Sports Games) 2016’을 개최한 바 있다.
하지만 e스포츠의 아시안경기대회 정식종목 채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떤 게임을 정식종목으로 정할지, 공정한 룰을 담보할 수 있는지 등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e스포츠, 기존 스포츠 인기 능가
‘스타크래프트’를 중심으로 태동한 e스포츠는 가파르게 성장했고 ‘리그오브레전드(LOL)’ 등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현재는 국내뿐 아니라 북미지역과 중국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e스포츠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1조481억 원으로 집계됐다. 해외 게임 전문 조사기관 뉴주는 e스포츠 시장이 2020년 15억 달러(약 1조7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전 세계 시장 규모로 보면 북미지역이 37%로 가장 크고, 한국은 7%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e스포츠는 이미 북미지역에서 전통적인 스포츠 경기의 관객을 능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니벳의 e스포츠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지역에서 LOL 결승전 시청자는 3600만 명에 이르렀으며 이는 지난해 미국프로농구(NBA) 결승전 시청자 수 3100만 명에 비해 500만 명이나 많은 수치다. 시장조사업체 스테이티스타는 미국 e스포츠의 관람객 수가 올해 2억8600만 명에서 2020년 3억3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아이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e스포츠 이용자 수는 1억70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중국 온라인 e스포츠 생중계 플랫폼 수는 200여 개에 달한다. 올해 생중계 시장 규모만 500억 위안(약 8조7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럽에서도 파리 생제르맹 FC, 맨체스터 시티, 비야레알 CF, 레알 소시에다드 등이 e스포츠 지역팀을 창단했거나 준비 중일 정도로 세계 e스포츠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번 OCA와 알리스포츠의 발표는 제휴일 뿐, 아직까지 아시아경기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양측이 함께 발표한 만큼 채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OCA는 이미 바둑을 2010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한 전례가 있다. e스포츠 종목인 PC 및 비디오 게임이 정식종목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e스포츠의 아시아경기대회 정식종목 편입 절차에 문제점이 드러났다. 아시아경기대회 정식종목을 선정하려면 OCA 산하 단체가 종목 추가를 요구하고 자체 심의 과정을 거친 후 총회가 승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번 파트너십은 그런 절차 없이 발표됐다.
e스포츠업계에서는 알리스포츠가 사기업으로서 대회 스폰서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OCA와 협의를 통해 정식종목을 확정지을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국제e스포츠연맹(International e-Sports Federtion·IeSF) 관계자는 “대회(아시아경기대회 등)와 관련해 OCA의 공식 업무 처리 상대는 IeSF다. 영리기업이 단독으로 공식 대회에 종목을 넣거나 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IeSF는 2009년부터 OCA와 손잡고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 정식종목에 e스포츠를 편입한 단체다.
어떤 게임이 정식종목 되나
어떤 게임을 정식종목으로 체택할지에 대한 논의도 공정성 등의 문제로 첩첩산중이다. 특정 게임이 아시아경기대회 e스포츠 종목으로 채택되면 해당 게임사는 엄청난 홍보 및 마케팅 효과를 누리기 때문. 벌써부터 게임업계에는 중국 알리바바의 라이벌 텐센트가 서비스하는 LOL이 정식종목에서 제외되고 같은 장르의 경쟁 게임인 밸브의 ‘도타2’가 채택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1인칭 슈팅게임(FPS) 중에서는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와 오랜 기간 FPS 장르의 대표로 꼽히던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리즈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e스포츠 정식종목 채택만으로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르는 데 추가 비용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축구, 야구 등 기존 스포츠 종목은 별도의 라이선스 비용이 발생하지 않았고 룰의 개선도 자유로웠다. 하지만 e스포츠는 결국 하나의 게임으로 치르기 때문에 저작권과 관련해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또 해당 게임사에서 일반 스포츠의 규칙에 해당하는 캐릭터의 능력치 등을 살짝 바꾸기만 하면 그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 수 있어 공정성 시비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종목의 연속성 보장도 문제다. 지금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게임이 20년이고 30년이고 꾸준히 인기를 유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 때문에 매회 다른 게임을 선정해야 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나올 수도 있기에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여러 문제점에도 체육계와 게임업계는 e스포츠의 아시아경기대회 정식종목 채택 논의를 시장 확대를 위한 좋은 기회로 보고 있다. 아시아경기대회가 양 업계의 관람객을 크게 늘릴 수 있기 때문. 국내 대형 게임업체 엔씨소프트가 야구 구단 NC 다이노스를 창단해 회사 인지도를 올린 것처럼, 게임업계는 아시아경기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체육계도 e스포츠에 열광하는 10~30대 젊은 층이 아시아경기대회에 흥미를 느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