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88

2023.05.05

신비로운 장밋빛 고대 도시, 요르단 페트라

[재이의 여행블루스] 와디 럼에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은하수 감상해야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3-05-0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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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요르단 페트라는 요르단 여행의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으로, 도시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연 요새다. 이국적이다 못해 외계적인 느낌마저 드는,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만든 고대 세계다. 페트라는 해발 950m 사막 속 바위산을 깎고 다듬고 파내어 만든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기원전 7세기부터 2세기까지 이 지역에 살았던 유목민인 나바테아 사람들은 향신료 중개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다 6세기 무렵 지진으로 흙 속에 묻혔다. 이후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됐다. 페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알카즈네(암벽 사원)뿐 아니라 알데이르(수도원), 로마 원형극장, 왕들의 무덤, 나바테아 유적 등이 그 시절 화려했던 번영을 보여준다.

    고대 보물창고 알카즈네

    요르단 페트라 알카즈네. [GETTYIMAGES]

    요르단 페트라 알카즈네. [GETTYIMAGES]

    페트라를 여행할 때는 알카즈네에서 알데이르 방향으로 코스를 잡는 게 일반적이다. 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해 거대한 바위 사이 좁디좁은 사암 절벽 협곡길(아랍어로 ‘알시크’)을 30여 분 걸어 들어가면 갑자기 활짝 하늘과 맞닿을 만큼 넓은 공간과 만난다. 보물창고를 뜻하는 12층 건물 높이의 ‘알카즈네’가 마법처럼 위용을 드러낸다. 이역만리 이곳까지 날아온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페트라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알카즈네는 궁전처럼 보이지만 아레타스 3세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너비 30m, 높이 43m 건물을 바위산을 깎아 만들었다니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나바테아인들의 건축 기술 수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제 감탄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이다. 800계단으로 연결된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니 신발 끈을 다시금 조여야 한다. 가파른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다 보면 어느새 거대한 사원 ‘알데이르’에 도착한다. 알데이르는 ‘수도원’이라는 뜻으로 나바테아인들의 주요 성지 중 하나다. 높이 45m, 폭 50m로 페트라 유적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정교하다. 아래쪽 도시에는 최대 8000명까지 수용 가능한 원형극장과 목욕탕, 그리고 거대한 규모의 대신전과 왕궁이 있고 절벽 쪽으로는 왕실 무덤들이 있다.

    보통 페트라 탐험으로 하루를 보낸 뒤 붉은 사막 와디 럼으로 이동해 사막 캠핑을 하지만, ‘페트라 바이 나이트’ 투어도 놓쳐서는 안 될 필수 코스다. 칠흑 같은 한밤중에 쏟아지는 별빛과 호롱불에만 의지해 빛나는 페트라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멋진 풍경 ‘와디 럼’을 만나볼 차례다. 720㎢ 면적의 와디 럼은 아랍어로 계곡을 뜻하는 ‘와디’와 옛 셈족의 언어로 높다는 뜻의 ‘럼’이 합쳐져 ‘높은 계곡’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가장 낮은 곳이 해발 1000m에 달할 만큼 고지대다. 수백m 높이의 사암, 화강암으로 이뤄진 바위산들과 붉은 사막, 그리고 협곡이 기가 막힌 절경을 선사한다.

    붉은 사막 와디 럼

    별이 쏟아지는 와디 럼의 밤하늘. [GETTYIMAGES]

    별이 쏟아지는 와디 럼의 밤하늘. [GETTYIMAGES]

    와디 럼을 관광하려면 먼저 방문자센터에서 지프와 가이드를 구해야 한다. 이곳은 자연문화유산 보호구역이기에 개인 관광이 불가능하다. 등록된 베두인(아랍계 유목민을 지칭) 가이드와 함께 다녀야 한다. 사륜구동 지프에 탑승해 붉은 사막을 질주한다. ‘지혜의 일곱 기둥’과 ‘나바테 사원’, 선사시대 ‘암벽화’, 기암괴석이 높게 치솟으며 길게 이어진 ‘카즈알리 협곡’, 독특하게 생긴 ‘부르다 바위 다리’ 등 붉은 사막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비밀의 땅 와디 럼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은 어쩌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일 수 있겠다”는 착각마저 든다. 그래서 많은 작가가 이곳을 ‘지구 안의 외딴 별’이라고 표현했나 보다.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와디 럼에서 보내는 ‘사막에서 하룻밤’도 무척 특별한 시간을 선물해준다. 베두인 스타일의 캠핑은 인공 불빛이나 소음 없이 원시 그대로인 사막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며 잠을 청할 수 있다. 캠프에서 제공되는 저녁식사는 이왕이면 베두인이 즐겨 먹는 바비큐 요리 자르브(Zarb)를 요청하자. 자르브는 허브와 감자, 당근 등 각종 채소를 양고기, 닭고기, 쌀 등을 넣고 야자수 잎으로 싸서 사막 모래 밑에 피운 숯불에 올린 다음 모래를 덮어 숯 열기로 천천히 쪄내는 전통음식이다. 맛도, 영양도 훌륭하지만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요르단에 협곡과 사막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양스포츠를 즐기고 싶다면 요르단 최남단 항구도시 ‘아카바’가 제격이다. 와디 럼에서 아카바까지는 약 60㎞이며 차로 30분만 이동하면 도착한다. 홍해 끝자락에 위치한 아카바는 요르단에서 유일하게 해상으로 통하는 관문으로 아카바만(灣)을 끼고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요르단 정부가 2001년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공항과 호텔들이 건설됐고 국제적인 휴양도시가 됐다. 홍해 수온이 연중 20도 내외로 따뜻해 스쿠버다이빙과 윈드서핑, 수상스키 등 해양스포츠를 즐기기에 좋다. 특히 세계적으로 희귀한 산호초들을 보려고 세계 각국 다이버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최남단까지 내려왔으니 이제 다시 북쪽을 향해 올라가 볼 차례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해저 400m 지점에 위치한 소금 바다 ‘사해(死海)’ 체험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남북 길이가 75㎞, 동서 폭은 최대 17㎞이며 둘레도 200㎞에 이르는 꽤 규모가 큰 갇힌 바다다. 이곳 해수는 염분 농도가 보통 바다보다 6배 가까이 높아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도 구명조끼 없이 몸이 둥둥 뜨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염도가 높아 어떠한 생물도 살지 않지만, 고농도의 마그네슘과 칼륨 등 21가지 미네랄이 포함돼 있어 피부병이나 류머티즘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몸에 까맣게 머드팩을 바르고 물에 둥둥 뜬 채로 책을 보는 등 개성 넘치는 포즈로 인생 사진을 남겨보자.

    중동의 폼페이 제라시

    제라시에 있는 하드리아누스의 개선문. [재이 제공]

    제라시에 있는 하드리아누스의 개선문. [재이 제공]

    사해 인근 요단강 동쪽에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밀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지만 무수한 성지 유적지들이 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도시 ‘마다바’의 성 조지 교회 바닥에는 모자이크로 고대 예루살렘 모습을 그린 세계 최고(最古) 지도가 있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이끈 모세가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한 채 120세 나이에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지는 ‘느보산’과 예수가 성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알려진 ‘베다니’ 등은 전 세계에서 성지순례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성지들을 찾아봤으니 이제는 고대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볼 순서다. 중동의 폼페이로 불리는 ‘제라시’는 암만에서 북쪽으로 4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고대 도시 제라시는 페르시아와 예루살렘왕국, 오스만제국 등을 거치며 번영과 패망을 거듭했다. 영원할 것만 같던 명성은 로마제국의 멸망, 726년 일어난 대지진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제라시 유적은 1806년 독일 탐험가 세첸에 의해 다시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도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놀라운 건 현재까지 25%만 발굴됐다고 하니 전체 규모는 감히 상상조차 안 된다. 게다가 고대 로마의 위성도시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편이라 하드리아누스의 개선문, 아르테미스 신전과 원형극장, 제우스 신전 등 유적 대부분이 놀라울 정도로 온전하다.

    우리는 지금 챗GPT, AI(인공지능)가 여행을 설계하고 예약까지 해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곳 요르단에서만큼은 그 어떤 최첨단기술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뜨거운 태양이 지배하는 사막에서 낙타에 올라타 모래바람을 가로지르고, 밤이 되면 은하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순간을 만끽하며, 고대 도시들의 흔적을 그저 두 발로 열심히 걷고 보면서 생각하는 이 모든 행위는 최첨단이 채워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미지의 나라 요르단으로 떠나야 하는 가장 확실한 이유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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