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4월 2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란팅 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한 발언에 대해 경고하며 한 말이다. 중국 고대 역사서 ‘춘추좌전’에서 유래한 이 고사성어는 ‘무모한 일로 남을 해치려다 자신이 피해를 입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4월 20일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不容置喙)”면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비난했다. 불용치훼는 청나라 작가 포송령이 쓴 기담집 ‘요재지이’ 중 ‘삼생’ 단편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고 즉시 참수했다(不容置喙, 立斬之)”는 문장에서 따왔다. 여기서 훼(喙)는 짐승의 주둥이를 의미한다. ‘말참견 말라’는 단순 경고가 아니라 ‘목이 잘리기 싫으면 주둥이를 닥치라’는 협박에 가깝다. 윤 대통령은 4월 19일 미국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대만해협 긴장 상황에 대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랑외교를 상징하는 친강 중국 외교부장(왼쪽)과 전묘외교를 상징하는 샤오메이친 주미 대만 대표. [CGTN, 동아DB]
“타인의 말참견 허용하지 않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에 3번째로 선출된 이후 중국 정부가 이른바 ‘전랑(戰狼: 늑대전사)외교’ 전술을 공세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전랑외교라는 용어는 중국 ‘국뽕’ 영화 ‘특수부대 전랑 1·2’에서 유래됐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국수주의 또는 쇼비니즘(chauvinism: 광신적 애국주의)을 뜻한다. 전랑 시리즈는 2015년과 2017년 중국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로, 말 그대로 중국판 ‘람보’ 시리즈다. 이 영화의 1편은 람보처럼 중국군 특수부대 출신 주인공이 미국 네이비실 출신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편도 중국군 특수부대 출신 주인공이 내전 중인 아프리카에서 미국 용병들과 싸우며 학살 위기에 처한 중국인과 난민을 구조하는 내용이다. 전랑외교는 늑대 같은 전사가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무력, 보복 등 공세적인 외교를 지향하는 전술을 말한다.전랑외교는 시 주석이 2013년 집권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시 주석은 중국 개혁·개방 총설계자인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韬光养晦: 때를 기다리며 능력을 키운다) 노선을 폐기하고 ‘대국굴기’(大國堀起: 대국으로 우뚝 선다) 노선을 적극 추진해왔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기치로 내걸고,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초강대국이 되기 위해 군사력과 경제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원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서구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배울 필요는 없다”고 강조해왔다.
중국 외교부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공세에 거침없이 대응하고 있다. 미국 외교 전문지 ‘디플로매트’는 “과거 보수적·수동적·저자세 외교를 추구하던 중국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제사회를 상대로 단호적·주도적·고자세의 전랑외교 전술을 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시 주석의 3연임 이후 핵심 이익이라고 규정한 대만, 홍콩, 티베트, 신장웨이우얼(위구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 주석과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외교부에 국익 수호를 위해 국제 현안들에 대해 강력한 의견을 표시하고 강경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외교부장을 비롯한 각국 주재 대사와 외교관들은 전랑외교 전술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루사예 주프랑스 중국대사는 4월 21일 프랑스 TF1 방송과 인터뷰에서 “소련 붕괴 이후 등장한 국가들은 주권 국가 지위를 구체화한 국제적 합의가 없었기에 국제법상 유효한 지위가 없다”면서 발트 3국 등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들의 주권에 의문을 제기했다. 루 대사의 발언은 중국과 중·동유럽의 경제협력체인 ‘17+1(CEEC)’에서 탈퇴하고 대만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을 겨냥한 것이다. 발트 3국과 중·동유럽 국가는 이에 격분해 자국 주재 중국대사들을 초치하고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루 대사는 지난해 12월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방역 조치에 반대해 벌어진 백지시위와 관련해 “외세에 선동당한 것”이라 주장했고, 독립을 지지하는 대만 국민을 향해서는 “세뇌당한 것이며 재교육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전랑외교 수장 친강 외교부장
황시롄 주필리핀 중국대사는 4월 14일 “필리핀이 대만에서 일하는 15만 명의 노동자를 생각한다면 대만 독립을 명백히 반대하는 게 좋다”고 밝혀 필리핀 국민의 공분을 샀다. 황 대사의 발언은 중국을 지지하지 않으면 필리핀 국민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일종의 협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필리핀이 미국에 군 기지 4곳에 대한 추가 사용권을 부여하자 이를 강하게 비난하는 등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중국의 대표적인 ‘늑대전사’는 지난해 12월 왕이 외교부장 후임으로 임명된 친강 외교부장이다. 그는 2005∼2010년, 2011∼2014년 외교부 대변인으로 활동할 때 자국 입장을 강경하게 표명하는 거침없는 발언으로 이 같은 별명을 얻었다. 2021년 7월 주미 중국대사로 부임한 후에도 미·중 무력 충돌 가능성을 경고하는 등 강경한 언사를 서슴없이 구사했다.
친 부장은 3월 7일 베이징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전랑외교와 자신의 외교부장 발탁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중국 외교는 충분한 관대함과 선의로 이뤄지지만, 승냥이가 길을 막고 굶주린 늑대가 습격해오면 중국 외교관은 반드시 늑대와 함께 춤을 추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을 차용해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거나 도발해오면 피하지 않고 대응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친 부장은 4월 14일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과 치열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베어보크 장관이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와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탄압을 비판하자 “중국은 서구 식민주의의 낡은 경로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서방의 ‘큰 스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대만은 전묘(戰猫: 고양이전사)외교로 중국의 전랑외교에 맞서고 있다. 전묘외교는 민주주의, 자유, 평화, 인권 존중의 가치를 앞세워 국제사회의 우군을 늘리려는 대만의 외교 전술을 말한다. 2020년 7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샤오메이친 주미 대만 대표를 임명하면서 “유연한 ‘고양이전사’의 자질이 있다”고 소개한 데서 유래했다. 샤오 대표는 “대만 외교는 팽팽한 밧줄 위를 경쾌하고 유연하게 걷는 고양이와 같다”면서 “중국의 오만하고 무례한 외교와 다르다”고 강조해왔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왼쪽)이 4월 5일(현지 시간)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가운데)의 안내를 받으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AP]
‘한국·미국·유럽·일본’과 교류 확대하는 대만
샤오 대표는 전묘외교를 내세워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샤오 대표가 공화·민주당 상관없이 미국의 주요 의원 및 전현직 관리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다져왔다고 강조했다. 샤오 대표는 2021년 1월 미국과 대만의 단교 이후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대만 대표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도 물밑에서 조율했다.당시 화가 난 중국 정부는 그를 ‘영구 제재’한다는 조치를 내렸다. 차이 총통이 4월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해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회동을 하자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하며 그를 다시 한 번 영구 제재 대상에 올리기도 했다. 대만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샤오 대표는 미국 몽클레어고와 오벌린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천수이볜 전 대만 총통의 영어 통역을 맡기도 했던 그는 입법위원, 총통부 국가 안전회의 위원 등을 거쳤다. 그는 대표적인 고양이전사답게 고양이 4마리를 키우고 있다.
대만 정부는 각국 의원단과 유력 인사를 대거 초청해 연대 및 교류를 강화하고 있다. 대만과 국교를 단절한 미국 의회 대표단은 물론, 유럽 각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각국 의원들이 중국의 방해에도 대만을 수시로 방문하고 있다. 매기 루이스 미국 시턴홀대 교수는 “전묘외교는 강력한 세력 앞에서 유연성과 민첩성을 강조한다”고 평가했다. 대규모 자금을 앞세운 중국 때문에 대만의 수교국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대만의 고양이전사들은 굴하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중국 늑대전사들보다 호감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