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 로 피해를 입은 개인투자자들이 한 포털사이트 종목토론실에 올린 게시물. [네이버 증권 종목토론실 캡처]
4월 28일 한 포털사이트 삼천리 종목토론실에 올라온 게시물 내용이다. 삼천리 주가는 4월 24일 발생한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 이후 약 3년 전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한 주 전만 해도 50만 원을 웃돌던 주가가 10만 원대로 떨어지면서 피해를 호소하는 개인투자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삼천리 외에 이번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에 휘말린 다올투자증권, 다우데이타, 대성홀딩스, 서울가스, 선광, 세방, 하림지주 등의 종목토론실에서도 “당장 전세금을 치러야 하는데 하한가에 내놔도 팔리질 않는다”거나 “몇 년 뒤 결혼자금으로 쓸 돈을 전부 넣었는데 제발 살려달라”는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와 이를 촉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주가조작 세력 탓에 가장 피해를 입는 건 또다시 힘없는 개미다.
부풀려진 주가에 속아 신용거래까지…
그중에는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선 투자자가 적잖다. 폭락한 8개 종목은 전체 거래 중 신용거래(개인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주식 매수 대금을 대출받아 거래하는 것) 비율이 10% 안팎으로 다른 종목에 비해 높다. 4월 21일 기준 ‘코스피 신용비율 상위 종목’에는 다올투자증권(1위), 세방(3위), 삼천리(4위), 서울가스(14위), 대성홀딩스(19위)가 모두 이름을 올렸다. 선광(2위), 다우데이타(7위)도 ‘코스닥 신용비율 상위 종목’에 속했다. 주가조작 일당이 수년간 부풀린 주가에 속은 개미들이 돈을 빌려서까지 투자에 뛰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금리 영향으로 증권사의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이 8~10%에 달한다는 점도 피해 규모를 키운다.
주가조작 세력으로 지목된 H투자컨설팅 업체에 돈을 맡겼다가 큰 손실을 본 이들도 있다. 대부분 ‘고급 정보’라는 말에 솔깃해 고액을 투자한 자산가다. 라덕연 H투자컨설팅 업체 대표는 4월 30일 언론에 “3년간 개인투자자 1000명으로부터 1조 원을 모아 레버리지(빚) 포함 2조 원을 운용했다”고 직접 밝혔다. H투자컨설팅 업체는 투자자들 명의로 휴대전화 200여 대를 개통하고 차액결제거래(CFD: 개인투자자가 증거금을 내면 증권사가 대리로 주식을 거래하고 수수료를 제외한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장외파생상품) 계좌를 만든 뒤 8개 종목 등을 통정매매(매수자와 매도자가 사전에 가격을 정해놓고 매매하는 불법행위)하며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고액 투자자, 1인 평균 10억 잃어
이들 투자자는 현재 라 대표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인 평균 10억 원의 금전적 손실을 봤으며, 최고 손실 액수는 약 100억 원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은 “H투자컨설팅 업체가 어떤 종목에 어떻게 투자하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았고, 개인정보를 모두 넘기게 해 계좌가 어디에 사용되는지 몰랐다”는 입장이다. 소송 대리를 맡은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대표변호사는 5월 2일 “상담 결과 주식투자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면서 “5월 9일 서울남부지검 합수단(합동수사단)에 라 대표 등 관련자 6명을 형사 고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대표변호사 일문일답
“임창정, 공모자로 인정될 수도”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대건 홈페이지 캡처]
“5월 2일 기준 140명 정도다. 다만 전부 소송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4월 28일부터 순차적으로 상담을 진행해 참여 확정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전체 피해 금액은 약 1500억 원이며, 1인 평균 10억 원가량이다. 개인 단위 최고 피해 금액은 약 100억 원이다.”
어떤 사람들이 H투자컨설팅 업체에 투자했나.
“임창정 같은 유명인, 부동산업계 큰손,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주를 이룬다. (H투자컨설팅 업체가) 먼저 고액 투자 여력이 있는 자산가들에게 접근해 돈을 모으고, 다시 이들의 인지도나 재력을 앞세워 새로운 투자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투자금 운용 규모를 늘린 것으로 보인다.”
소송 진행 계획은 어떻게 되나.
“5월 9일 서울남부지검 합동수사단(합수단)에 형사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라덕연 H투자컨설팅 업체 대표와 투자자 모집 창구 역할을 한 전직 프로골퍼 안 모 씨, 이 밖에 변 모, 조 모, 장 모, 김 모 씨 등 6명이 주가조작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인 혐의점은 무엇인가.
“투자자를 피해자로 하는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사기죄, 특경법상 배임죄다.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및 시장 교란, 미인가 투자 일임도 간단하게 적시할 것이다. 사기죄의 경우 주가조작 일당이 투자금을 받을 당시 이미 해당 투자금을 증거금으로 사용하고,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활용해 레버리지(빚)를 일으킬 목적이었기 때문에 성립된다. 투자자들의 계좌를 관리한 사람은 H투자컨설팅 업체의 사무처리자라고 볼 수 있는데, 이때 명의인 동의 없이 레버리지 거래를 해 업무상 배임죄도 성립한다. 둘 다 피해 금액 5억 원 이상으로 특경법에 저촉된다.”
민사소송은 언제부터 진행하나.
“검찰 조사를 통해 사건 내막이 밝혀지는 단계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민사소송은 피고 변경이나 추가가 안 되기 때문에 보다 신중하게 제기하려 한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가담자일 개연성은 없나.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상담 결과 주식투자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투자 방식도 알지 못한 채 ‘우량주에 장기 투자한다’는 전제 하에서 돈을 맡겼다. 통정매매 같은 전문 용어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임창정도 마찬가지로 단순 피해자인가.
“방송에 보도된 투자자 모임 영상을 보면 임창정과 라 대표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 통정매매를 통한 수익 실현을 사전에 알 수 있는 지위였다는 점,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검찰 조사로 드러나면 임 씨에 대해서는 공모자 지위가 인정될 것이다.”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슬아 기자입니다. 국내외 증시 및 산업 동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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