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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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계 ‘마녀사냥 희생양’

미국 외교 잣대 안 맞으면 ‘인권탄압’… 중동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로 매도

  •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04-09-24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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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의 부정적인 영향 가운데 하나는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전 세계적인 인권탄압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미국 사법당국은 9·11 테러범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다며 미국 내 회교도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해갔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 행태를 보여왔다.

    민족 자립 투쟁을 벌여온 지구촌 소수민족들도 9·11의 애꿎은 피해자들이다. 오랫동안 자치권 투쟁을 벌여온 중국의 위구르족, 러시아의 체첸족, 그리고 중동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로 매도당하고 있다. 미국이 필요에 따라 내세워온 ‘인권’이라는 외교 잣대는 간 데 없고, 부시 행정부는 자신의 ‘테러와의 전쟁’을 돕는 독재정권들과는 기꺼이 손을 맞잡았다. 파키스탄 무샤라프 군정, 우즈베키스탄 카미로프 정권과의 연계가 그러하다.

    테러와의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이슬람계 민중들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면 언뜻 봐도 경계가 삼엄하다는 느낌이 드는 우중충한 건물단지가 하나 나타난다. 메트로폴리탄 구치소 건물이다. 9·11 이후 이곳에는 9·11 테러와는 아무 관련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단지 이슬람계라는 이유 하나로 FBI(연방수사국) 요원에게 붙잡혀왔다. 이들은 수사당국에서 엄격한 조사를 받는 동안 가족들과의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또한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이민법 관련 위반 혐의로 갇혀 있다가 본국으로 추방됐다. 집안의 가장이 갇혀 있는 동안 그 가족들이 겪은 정신적·경제적 고통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탈레반·알 카에다 포로 재판도 없이 무기한 억류


    이들을 도운 시민단체 가운데 하나인 AAFSC 실무간사 쉐이커 라슈어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겠다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추방될 때마다 나도 함께 미국을 떠나 부시 없는 세상에 살고 싶은 생각조차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뉴욕의 인권단체 가운데 하나인 뉴욕시민자유연합(NYCLU) 소속으로 이들 억류자들과 그 가족들을 도왔던 크리스토퍼 던 변호사는 “부시 행정부는 9·11이란 비상사태를 핑계로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하려 들었다. 미국 내 소수인종들이 그 최대의 피해자들이다”라고 부시 행정부의 인권제한을 비난했다.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적인 인권감시단체인 Human Rights Watch의 실무자 질 새비트는 9·11 이후 부시 행정부의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 이슬람계인 약 1200명의 미국 거주 외국인들이 비밀리에 체포돼 9·11 테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조사받았다. 그 가운데 752명이 테러리즘과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는 게 드러날 때까지 장기간 구치소에 갇혀 지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조사 후 미국에서 추방됐다. 뉴저지의 팔레스타인계 ‘불법체류자’ 하니 흐블레시는 이스라엘로 추방됐으나 벤구리온 공항에서 받아주질 않아 현재 뉴저지주(州)의 한 구치소에서 기약 없는 옥살이를 하고 있다. 이런 인권침해 상황들이 워낙 비밀리에 진행됐기 때문에 미 주류 언론들조차 사실보도를 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공론화되지 못했다. 애국주의 바람도 여기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쿠바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내에 억류되어 있는 600명의 탈레반-알 카에다 전사들의 기본적 인권도 무시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적성(敵性) 전투원(Enemy Combatants)’으로 분류돼 변호사를 만날 수조차 없다. 합법적인 재판 절차도 없이 무기한 갇혀 지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부시 행정부 내 군사부문 매파라면,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은 ‘경찰국가론 신봉자’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법 집행 부문의 매파다. 그가 9·11 이후 애국주의 바람을 타고 밀어붙인 것이 이른바 ‘애국자법(Patriot Act)’. 이 법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도청, 인터넷 검열 등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 워싱턴의 보수적인 싱크탱크(두뇌 집단)인 카토연구소(Cato Institute)의 한 보고서조차도 “부시와 애시크로프트는 권리장전을 짓밟았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이 보고서는 부시 행정부가 “비밀 영장, 비밀 체포, 비밀 재판, 비밀 추방 등 자유의 개념과 충돌하는 조처를 취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되돌아보면 50년대 냉전시대엔 매카시즘 열풍으로 많은 이들이 이른바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됐다. 9·11 이후 부시행정부는 제2의 매카시즘 공세를 펴고 있다.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부시 행정부는 TIPS 제도를 시행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테러리즘 정보와 예방체제(Terrorism Informa- tion and Prevention System)의 머리글자를 모은 TIPS에 따르면, 수백만명의 미국 시민이 수사기관의 정보원 노릇을 하면서 수집된 정보를 컴퓨터를 통해 미 수사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 입력시키게 된다. 부시 행정부는 바야흐로 일찍이 조지 오웰이 그의 공상소설 ‘1984년’을 통해 언급한 빅 브라더(Big Brother)가 될 참이다.

    팔레스타인 민중도 9·11의 또 다른 피해자다. 9·11 테러공격을 실행에 옮기기 전부터 오사마 빈 라덴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자신의 반미투쟁의 주요 근거로 내세웠다. 팔레스타인 영토를 불법점령한 이스라엘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이라크를 비롯한 아랍권을 압박하므로, 반미투쟁을 통해 아랍권에서 미국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빈 라덴의 의도와는 달리 9·11로 인해 팔레스타인 민중의 고통은 더욱 커졌다.

    9·11 사흘 뒤 부시 미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의 진행 방향을 놓고 블레어 영국 수상과 긴 전화 통화를 했다. 블레어는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 세력을 상대로 싸우려면, 이슬람권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 “중동평화협상을 새로이 시작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시는 샤론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시는 샤론에게 “중동평화를 위협하는 유혈사태를 줄이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면서 “이것은 당신에게도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은 테러리즘과의 전쟁에서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그것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아프간전쟁 초기 이슬람권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카드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 타고난 강성 샤론은 “우리 이스라엘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느냐”고 반발했었다. 그러나 부시의 말대로 9·11은 샤론에게 기회로 다가왔다. 샤론은 “우리의 정책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 정책과 같은 맥락에 있다”는 주장을 펴며, 저항세력을 소탕한다는 명분 아래 팔레스타인 주거밀집지역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9·11 이후 지난 1년 동안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샤론이 주도한 ‘집단적 징벌’ 때문에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그러나 아랍국가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 부시 행정부가 꺼내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카드는 아프간전 승리와 함께 ‘실종된’ 상태. 탈레반 정권이 두 달 만에 무너진 뒤 부시는 친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으로 돌아섰다. 결과적으로 9·11을 통해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중립적 중재자로서의 미국’이란 거추장스런 외투를 벗을 수 있었다. 지난 6월 부시는 아라파트가 테러리스트들을 단속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면서 (샤론의 오랜 숙원인) 아라파트 제거론까지 꺼냈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아라파트가 9·11의 최대 피해자라는 논리는 이 때문에 설득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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