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가 국민으로부터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수십 년 관료 생활로 많은 퇴직연금을 챙기면서도 수억 원대 연봉을 받는 자리를 전관예우 차원에서 독차지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들이 기업이 주는 고액 연봉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재직 당시 자신이 거느렸던 관료들에게 기업 이익을 관철할 수 있도록 로비하는 일이 돼버렸다. 실제 기업이 관피아 능력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는 이전에 근무했던 부처에 대한 지배력이다.
판결 집행 독립적 사법기관 기능
관피아 세계는 알려진 곳 외에도 많다. 세월호 참사에서 문제가 된 해양수산부에 ‘해피아’와 기획재정부에 ‘모피아’(옛 재무부를 뜻하는 MOF+마피아)가 있다면 법원, 검찰 등 법조계에는 ‘법피아’(법조+마피아)가 있다. 대형 로펌에 들어가 한 해 수억 원 연봉을 꿰차는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얘기가 아니다. 법원행정처와 검찰청 사무국 소속 일반직 공무원 중 서기관급 이상 관료 출신이 장악한 ‘집행관’이 바로 그들이다.
집행관은 예전 집달리라고 부르던 이들로, 쉽게 말해 법원과 재판에서 승소한 채권자를 대신해(위임) 채무자에게 재판 결과를 알리고(최고, 송달), 채무자의 재산을 압류(가압류 포함) 및 보관하며, 경매나 공매에 부쳐 매각한 후 채무자에게 물리력을 동원해 재산을 강제로 몰수, 채권자에게 인도하는 일을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법원과 채권자는 각종 비용과 수수료를 집행관에게 지불해야 하며, 집행관법은 채권자가 비용과 수수료를 집행관에게 지불하지 않을 경우 집행관에게 집행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서울 한 지방법원의 집행관 사무소. 강제집행을 의뢰하려면 이곳을 찾아야 한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집행관은 국가공무원법의 적용을 받는 정식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어떤 월급도 받지 않으면서 사법부 판결을 집행하는 독립적 사법기관의 기능을 하는, 조금은 이상한 지위를 갖고 있다. 그들의 신분은 집행관법으로 보호받는 4년 단임 임기(만 61세까지)의 ‘특별직 공무원’이라 볼 수 있다. 각 지방법원에 소속돼 사무실까지 제공받으면서도 채권자로부터 집행 사건을 수임하고 각종 비용과 수수료를 받는다는 점, 갑종근로소득세가 아닌 종합소득세를 낸다는 점에서 보면 ‘공무원’이라는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지만 어쨌든 신분은 공무원이다.
국가로부터 월급 한 푼 받지 않고, 일반적으로 채무자가 극히 싫어하는 일을 하는데도 법원과 검찰 관료들이 집행관을 ‘로또복권’이라고 부르며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안달복달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소문으로만 알려져 왔던 그들의 고액 수입 때문이다. 법원과 검찰 주변에선 집행관의 월수입이 2000만 원을 상회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었다.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국세청의 ‘각 지방 국세청별 집행관 수입 금액 현황’(국회 제출)에 따르면 2011년 전국 집행관 1인당 평균 연소득은 2억955만 원이었고 2010년은 2억2352만 원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법조계 주변에서 떠돈 소문이 얼추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2011년 부산지방국세청 관할 지역 법원에 소속된 집행관의 1인당 연소득은 4억3264만 원, 대전청 관할은 3억9650만 원이었으며 2010년의 경우는 부산청 관할이 7억1359만 원, 대전청 관할이 7억875만 원이었다. 이런 금액은 평균치로만 따져도 4급 서기관 이상 고위 공직자의 평균 연소득의 2.5~3배에 달하며 5급 사무관의 약 4배, 6급 주사의 5~6배에 해당하는 연소득이다.
경매를 통해 큰 물건이 팔리면 집행관은 돈방석에 올라앉게 된다(왼쪽). 미술품 등 압류한 동산의 경우 경매를 통해 매각돼도 수수료가 적어 집행관들도 피한다.
심지어 집행관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수료 수입만 따져도 집행관이 누리는 특권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2010년과 2011년 전국 법원별 집행관 수수료 현황(국세청이 국회에 제출)에 따르면 2010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속된 집행관 1인당 연평균 수수료 수입은 8억700여만 원이며, 2011년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 소속 집행관의 연평균 수수료 수입은 1인당 13억8000여만 원에 달한다. 한 해 수임료로 16억 원을 받은 게 문제가 돼 국무총리 후보직에서 물러난 안대희 전 대법관과 맞먹는 수준이다.
집행관이 받는 수수료는 주로 부동산 매각 과정에서 발생하며 대법원 규칙으로 정해져 있다. 대법원의 집행관수수료규칙에 따르면, 집행관은 평가액 기준으로 건물이 경매에서 1억 원에 낙찰, 매각될 경우 수수료 120만 원을 가져가고, 5억 원에 건물이 매각되면 330만 원을 챙기게 돼 있다. 100억 원에 팔리면 수수료 1330만 원을 가만히 앉아서 가져가게 된다. 보통 매각 대금의 0.5%를 받는 부동산중개인의 경우는 고객을 확보하려고 광고를 하는 등 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해당 계약에 대한 법적 책임까지 지지만, 집행관은 그 어떤 수고도 없이 엄청난 수수료를 가져가는 셈이다.
서울 지역 한 검찰 수사관(6급)은 “집행관 수입 구조에는 대다수 국민이 받는 보수체계 구성 범위인 기본급, 법정 수당, 퇴직금 및 기타 부가급여 같은 기본 개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경쟁이 치열해진 변호사나 회계사처럼 사건 수임을 하려고 남다른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집행 사건은 많은데 집행관 수는 너무 적어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앉아서 접수된 사건에 대한 수수료만 챙겨도 4년 임기 동안 매달 최소 2000만 원 이상을 벌 수 있다”고 전했다.
모 지방법원 경매계 한 직원은 “집행관은 특별직 공무원 신분임에도 출근은 매주 2~3회만 하고 그마저도 오전만 근무하며, 나머지 시간은 골프장에 가는 등 여가를 즐긴다. 그럼에도 집행관을 임명하는 각 지방법원과 검찰 고위직 관료들은 자기 밥그릇을 놓칠까 정원을 사건 수에 맞게 적절히 늘린다거나 집행관을 법원으로 흡수해 정규직 공무원에게 강제집행하게 하는 제도 개혁에 대한 노력은 뒷전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특권을 누리는 계층이 또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성토했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나 부동산중개인과 달리 법원 집행관이 집행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집행관이 한 해 동안 직접 접수하는 집행 사건만 22만7496건(2011년 통계)에 달하는 반면, 법원에서 임명하는 집행관은 전국적으로 400여 명(정원 374명)에도 못 미쳐 별 노력 없이도 집행 사건을 수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추 계산해도 집행관 1인당 집행 사건만 570여 건에 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두환 압수물 경매(부동산, 동산 포함)처럼 법원과 검찰이 강제 배당하는 사건을 모두 합치면 집행관 1인당 한 해 집행 사건은 2000여 건이 넘어가고, 거기다 때로 수천억 원 대 부동산을 매각하는 집행 사건이 배당되면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 집행관의 사례처럼 한 번에 수수료 수억 원을 받는 일이 벌어진다. 집행관은 외환위기 같은 기업의 줄도산 사태나 그룹 전체가 해체되는 일이 벌어질 때 오히려 큰 수익을 얻는다.
법조 공무원들이 집행관을 ‘로또복권 당첨’에 비유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현행 집행관법은 10년 이상 법원주사보(7급, 등기주사보 포함) 또는 검찰주사보(7급, 수사관 포함) 이상의 직에 있던 자 가운데 지방법원장이 임명하게 돼 있다. 법무사, 세무사, 행정사처럼 국가공인시험에 의한 자격증 제도는 아예 없다. 일반인은 아무리 실무와 이론에 능해도 집행관이 될 수 없는 상황. 아예 법으로 진입 장벽을 쳐버린 것이다. 대법원과 대검찰청은 여기에 한술 더 떠 10년 7급 이상이던 자격을 고위직으로 한정해버렸다.
일반인은 취업차단 진입 장벽
실제 대법원이 국회에 제출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간 집행관 신규 임용자의 최종 직급별 분포현황(표3 참조)을 분석하면, 신규 임용자 총 363명 중 4급 서기관급 이상이 86.5%인 314명이었고, 3급 부이사관급 이상(검찰직 고위공무원 포함)도 28%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집행관 선발 과정이 고위직끼리 나눠 먹기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표4 참조). 2009년엔 96명 지원자 전원이 임명됐고, 2010년엔 138명(퇴직자 125명)이 지원해 110명이 임명됐으며, 2011년엔 102명(퇴직자 125명)이 지원해 86명이 임명됐다(표2 참조).
비록 법상으로는 지방법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집행관선발위원회에서 누구를 집행관으로 뽑을지를 결정한다고 하지만 법원과 검찰 내에선 퇴직을 앞둔 고위직 관료와 법원장 사이에 서로 임명에 대한 사전 교감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다분하다. 더욱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임명된 법원 집행관 292명 중 70%인 205명이 법원 출신이고 검찰 출신이 86명, 헌법재판소 출신이 단 1명뿐이었다는 점은 법원이 ‘제 식구 챙기기’를 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서울의 한 지방법원 관계자는 “법원과 검찰이 법적 근거도 없이 상위직급 및 선임자 에게 유리한 예규를 만들어 서기관급(4급) 4년 차 이상만 집행관을 독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집행관이 법원과 검찰 고위직의 노후 보장용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는 방증이며 고위 공직자의 낙하산 인사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집행관이 되려고 바른 말을 하는 직원은 사라지고 줄 서기에만 바쁘다. 갈수록 조직에 관료주의만 만연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지방검찰청 관계자는 “검찰 일반 공무원의 인사권은 각 지검 사무국장에게 있는데 국장 자신이 집행관이 되고 싶으니까 아예 인사권을 검사장에게 줘버리는 경우도 있다. 검찰 수사관의 경우 서기관급 이상으로 승진하려고 검찰 본연의 임무인 수사 업무보다 승진에만 집착함으로써 인사권을 쥔 검사의 비위만 맞추고 있다”고 개탄했다.
김종호 호서대 법학과 교수는 “영미법체계의 국가나 독일법체계를 가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법조 공무원에게만, 그것도 고위직 공무원에게만 집행관 임용 자격을 한정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으며, 법원공무원이 집행업무도 함께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시험을 치는 국가도 있고, 심지어 선거를 통해 뽑는 곳도 있는 실정이다. 집행 사건당 집행관 수가 너무 많아 오히려 국가가 세금으로 수수료를 보조해주는 곳도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집행관 한 사람이 맡은 집행 사건이 워낙 많기 때문에 각종 부작용도 속출한다. 재판이 끝나고 판결이 나와 채권자가 강제집행을 법원에 신청하고 집행관을 선정했음에도 집행 절차를 이유 없이 미루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집행관 처지에선 “급한 사건부터 처리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법적으로 먼저 들어온 사건부터 순차적으로 처리하라는 규정은 그 어디에도 없다.
2013년 7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운영하는 출판사 시공사에서 압수한 미술품들이 트럭으로 옮겨지고 있다. 검찰은 집행관에 강제집행을 의뢰했고 이 경우 집행관은 국가로부터 비용 및 수수료를 받게 된다.
서울 지역의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민사재판을 이기고 강제집행을 신청해도 매각 대상의 평가액이 적어 수수료가 미미하거나 물건 자체가 팔릴 가능성이 희박하면 집행관이 도무지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상품권이든 뭐든 집어줘야지만 움직이는 집행관이 적지 않다. 달라 하지 않아도 챙겨주는 게 관행이 됐다. 경매와 부동산 소송을 많이 하는 변호사는 다들 알겠지만 집행관의 급행료 수수 관행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법원 집행관의 비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2011년 10월에는 서울 지역 지방법원 소속 집행관 3명이 명도소송(명도집행) 사건 채무자들의 압류물품을 특정 업체가 보관하도록 도와주고 알선료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는데, 이들은 최근 징역 1년에서 1년3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2심 재판부는 당시 “금품수수를 매개로 삼아 국가가 집행하는 강제집행의 공정성을 훼손해 실형이 불가피하다. 강제집행 절차를 잘 알지 못하는 채권자에게 알선료를 전가할 위험이 있어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했다.
최근 전국 법원 집행관 연합회가 강제집행 비용과 관련한 시비를 차단하려고 ‘집행에 사용할 노무자 등의 수와 수당 기준(강제집행 비용 기준)’을 마련한 것도 이런 부작용과 무관치 않다. 강제집행에 투입되는 노무자 수와 노임을 실제보다 부풀려 채권자에게 신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2009년 12월 말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소속 회원들을 대상으로 집행관 업무 수행의 적정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 87명의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운 39명이 민사집행절차에서 집행관의 부당한 업무 수행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는데 업무 해태(19명), 고압적 태도(18명), 금품수수(12명) 순이었다. 대법원이 국회에 제출한 2005년부터 2011년 6월까지 전국 집행관 징계 현황에 따르면 각종 비리 행위로 면직된 집행관이 3명, 정직된 집행관이 3명 등 총 146명이 징계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같은 시기 법원공무원의 징계 정도와 궤를 같이한다. 각종 비리 행위로 파면 14명, 해임 13명, 정직 19명 등 총 913명 공무원이 징계 처분을 받았다.
법원 행정처 측은 “현재 집행관 수는 비교적 적정한 수준이며 지역 편차도 없다. 정원 변경이 필요한지 검토 중이다. 집행관 임명과 관련한 예규에는 상위직, 고참 순이라는 기준이 없다. 근무 성적과 직급, 근무 기간, 업무 수행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뽑다 보니 결과적으로 상위직급자가 주로 선발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집행관의 급행료 관행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