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하자면 가상현실은 꿈이다. 꿈꾸는 동안 우리는 마치 깨어 있을 때처럼 여러 사물을 보고 청각, 미각, 후각, 운동감각을 느낀다. 영화 속 주인공이 돼 하늘을 날 수도 있고, 평소 가보고 싶던 곳으로 여행을 떠나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며,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나 이야기도 나눈다. 물론 꿈은 깨면 곧 사라지고 만다. 그 느낌과 경험을 재현하거나 지속하기 어렵다. 반면 가상현실에서 만들어지는 환경은 언제든 접속해 즐길 수 있는 ‘지속가능한 꿈’이다.
가상현실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오감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인지함으로써 현실로 느끼는 것’이다. 즉 특정한 가상환경을 컴퓨터로 만들어 사용자로 하여금 실제 주변 환경처럼 느끼게 하거나, 가상환경과 상호작용을 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컴퓨터 간 인터페이스를 통칭한다. 직접 필드에 나가지 않고도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스크린 골프나 많은 인기를 끌었던 닌텐도의 위(Wii) 게임기가 초보적인 가상현실 기술이 적용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몰입감 높은 콘텐츠 구현
미국 보훈부 산하 뉴욕하버헬스케어시스템 맨해튼병원에서 가상현실 시스템을 활용해 상황을 재연하는 방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하지만 30여 년 사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가상현실 기기의 성능이 높아지고 경량화와 슬림화, 저가화가 함께 진행되면서 사용자에게 성큼 다가선 것이다. 콘텐츠의 완성도가 함께 높아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남았다. 궁극적으로 가상현실 기술로 3차원(3D) 환경을 구축하려면 컴퓨터 그래픽스, 기하모델링과 알고리즘, 센싱, 디스플레이, 햅틱, 입체음향, 인간공학 및 상호작용, 심리학 등 다양한 기술이 융합해야 하기 때문. 개별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는 것과 더불어 이를 융합하는 시도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가상현실에서는 기존의 TV나 컴퓨터, 모바일 기기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몰입감 높은 콘텐츠를 구현할 수 있다. 3D 게임뿐 아니라 박물관, 미술관, 테마파크 체험 등에도 활용 가능하다. 오큘러스 리프트 같은 HMD 기술과 360도 카메라 기술, 드론 기술의 발달은 영상과 음향효과를 중심으로 한 체험형 콘텐츠를 수없이 쏟아내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와 형식이 유사한 가상현실용 콘텐츠 플랫폼이 생기는 건 시간문제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는 아마존 밀림이나 심해 밑바닥, 그랜드캐니언, 지하동굴 등에서 촬영한 수많은 콘텐츠를 통해 실제로 방문한 것과 구분하기 어려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외과수술이나 모의 전투훈련, 부품 조립이나 제작 같은 산업용 시뮬레이션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가상 환경을 공황장애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의료 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의 차별화된 고객 가치가 엄청나다는 뜻이다.
더욱이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는 소셜서비스와 가상현실을 접목하면 이야기는 한층 더 달라진다. 앞서 설명한 대로 다양한 기술 발달로 가상공간의 몰입감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을뿐더러, 소셜서비스를 통해 가상현실이 단순한 여가나 오락이 아니라 제2, 제3의 삶을 이어가는 무대 구실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지금 이 순간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 전체의 경험과 모험을 공유한다고 상상해보라”고 말한 바 있다.
무수한 경제 활동과 비즈니스가 소셜서비스에 연결된 가상현실에서 이뤄지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구글은 구글어스와 스페이스를 통해 현실세계와 같은 가상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고, 아마존은 막강한 콘텐츠와 유통망을 통해 가상의 서재나 도서관을 공급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유통시장이 현실세계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시나리오도 얼마든 가능하다.
가상현실 잠재력은 무궁무진
고도화한 가상현실 기술이 인간 욕망을 대리 해소해주는 순기능을 할 수 있지만, 가상현실에 대한 집착이 현실세계와의 혼동으로 이어져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할 무렵 불거졌던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현상이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른 바 있는데 가상현실이 활성화할 경우 그 중독에 의한 폐해가 훨씬 심각할 수 있다.
물론 가상현실에는 여전히 많은 가정과 질문이 남아 있다. 과연 소비자는 3D 안경보다 훨씬 번거롭고 무거운 HMD를 착용하고 가상세계에 들어가는 일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까. 향후 5~10년 내 강력한 변화 모멘텀을 제공할지 단언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장성 부족을 이유로 퇴출됐던 태블릿PC가 주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만개한 사례만 봐도 가상현실이 가진 잠재력은 쉽게 가늠할 수 없다. 이제까지 인터넷은 연습게임이었고 바야흐로 본게임이 시작될 수도 있다. 해외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과 달리 우리 기업들의 관련 행보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염려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