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건국 60주년 기념 국군의 날 행사에 참가한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희 국방부 장관.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국방개혁 2020 수정안을 보고 적잖은 사람들이 던진 의문이다. 이 수정안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북핵 및 미사일 문제가 심각한 시점에 나왔다. 한반도의 안보 수요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임에도 수정안에는 이런 현실은 물론, 우리 군의 미래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반영되지 않았다.
수정안을 만들 때 이명박 정부가 던진 가이드라인은 하나였다고 한다. 미국발(發) 경제위기를 감안해 2020년까지 잡혀 있던 필요예산 621조3000억원을 무조건 600조원 이하로 낮추라는 것. 이상희 장관이 이끄는 국방부는 이를 수용해 599조3000억원짜리 수정안을 만들었다.
해·공군 전력증강 사업 줄줄이 연기
안보 수요가 급증한 시기에 599조3000억원으로 한정해놓은 수정안을 마련했으니 전력증강 사업은 규모를 줄이고 그 달성 시기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사람 키에 맞춰 침대를 구입한 게 아니라,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의 키를 줄이거나 여의치 않으면 잘라버리겠다고 한 격이다. 노무현 정부가 만든 것보다 적은 예산을 편성했으니 이명박 정부가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정권이냐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미래전은 하늘에서 시작한다. 미사일이 먼저 날아가고 전투기가 공격한 후 병력이 투입되므로 항공 전력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다. 그런데 수정안은 공군의 전력증강 사업을 줄줄이 연기시켰다.
공군이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은 △스텔스 성능을 갖춘 전투기 ○○대를 도입하는 2차 F-X 사업 △공군의 작전 범위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공중 급유기 ○대를 도입하는 KC-X 사업 △공중 수송은 물론 육군 특수전 부대의 침투 능력을 증가하기 위해 대형 수송기 ○대를 도입하는 C-X 사업 △U-2 정찰기를 능가하는 정보수집 능력을 가진 고고도 무인기 ○대를 도입하는 UAV 사업 △유도탄을 요격할 능력이 없는데도 독일에서 도입한 중고 패트리어트를 대체할 차기 SAM-X 사업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하는 KFX 사업 등이다. 그런데 수정안은 예산이 줄었다는 이유로 이들 사업의 달성 연도를 모두 연기했다.
제공권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제해권이다. 제해권을 확보하면 우리 군은 다양한 라인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다. 바다의 전쟁도 하늘에서 시작한다. 미사일을 발사하고 항공기로 적진을 쓸어버린 후 병력을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침투)시킨다. 바다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기지는 함정이므로 미사일을 쏠 수 있는 함정 건조가 중요하다. 해군의 꿈은 이러한 함정으로 구성된 기동함대를 만드는 것. 이 함대가 3개 전단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수정안은 2개 전단으로 줄여놓았다.
국내 유일의 대형 수송함인 독도함. 헬기를 이용한 항공작전에는 독도함급 대형 수송함이 3척 필요하지만 국방개혁 2020 수정안에서 2척으로 줄었다.
헬기를 이용해 항공작전을 하려면 독도함급 대형 수송함이 3척 정도 필요한데, 수정안은 2척으로 줄였다. 더 답답한 것은 헬기 전력의 증강이 요원하다는 점. 헬기 확보가 뒤로 미뤄졌기에 지금도 독도함은 빈 배로 다니고 있다.
국방개혁 2020 원안에는 헬기 전력의 증가에 따라 해군에 항공사령부를 둔다고 돼 있었다. 그러나 해군 헬기 전력증강이 늦춰진 까닭에 지금과 같은 항공전단 체제로 간다는 수정안이 나왔다.
노후한 호위함과 초계함을 대체하기 위해 펼치는 차기 호위함 건조 계획인 FF-X 사업의 달성 연도도 늦춰졌고, 한국형 중(重)잠수함 건조 계획인 KSS-X의 목표 연도도 뒤로 밀려났다. 해·공군 사업은 규모가 크고 단순하기에 달성 연도를 늦추면 예산 감축을 쉽게 할 수 있다.
국방개혁 2020을 만든 기본정신은 많은 병력에 의존하는 재래식 군대를 첨단장비를 활용하는 과학군으로 만들자는 것. 이에 따라 육군병력을 16만6000여 명 줄이기로 했지만, 수정안에서는 감축 규모가 14만9000여 명에 그쳤다. 1개 사단 규모인 1만7000여 명을 덜 줄이게 된 것이다. 국방개혁 2020 원안은 ‘9개의 지역군단과 1개의 기동군단’인 육군을 ‘4개의 지역군단과 2개의 기동군단’으로 바꾼다고 돼 있었다. 그런데 수정안은 ‘5개의 지역군단과 2개의 기동군단’ 체제로 바꿨다.
국방개혁 2020 원안에서는 육군에 수방사-특전사-유도탄사-항작사로 이어지는 4개 기능사(司)를 두기로 했다. 그런데 수정안에서는 수방사를 폐지해 기능사를 3개로 줄이고 그 대신 지역군단을 하나 더 늘렸다. 수방사의 규모는 사단급에 불과하니, 수방사를 지역군단으로 개편하는 것은 곧 육군병력을 덜 줄이겠다는 뜻이다. 육군에게 가장 큰 고통은 14만9000여 명이라는 많은 병력을 줄이는 일이다. 사병은 쉽게 줄일 수 있지만 직업군인 축소는 쉽지 않다. 고급장교일수록 자리를 줄이는 일이 어려워진다.
유도탄사의 구성도 이상해졌다. 유도탄사는 미사일이라는 전략무기를 운용하지만 부대 규모는 클 수가 없다. 대대급 인원으로 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해 사령관에는 소장을 보임한다. 그런데 수정안은 이러한 유도탄사 병력을 2개 대대 규모의 인원을 가진 부대로 바꾼다고 한다. 이는 미사일 전력증강과 무관한 것이라, 줄여야 할 병력을 병력이 적은 유도탄사로 보냄으로써 병력 축소 부담을 줄이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예산절감과 군 개혁 혼동하는 정권
국방개혁 2020 원안에 따르면 육군에서 2명의 대장 자리가 사라진다. 1군과 3군이 지작사로 통합되면서 한 자리가 줄고, 2012년 전시 작전권 환수에 따른 한미연합사 해체로 연합사 부사령관직이 사라진다. 국방개혁 수정안을 만든 주체는 역시 육군이다. 육군은 이 문제를 육군 대장이 취임하는 합참 1차장직을 설치하는 것으로 풀어나갔다.
합참의장의 본래 임무는 대한민국군 최고 사령관인 대통령이 군령권을 바로 행사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군 합참의장은 육·해·공군의 작전부대를 통합 지휘하는 합동군사령관 임무까지 겸해왔다. 따라서 두 기능을 떼어낸다는 것이 국방개혁 2020의 한 방침이었다. 이를 위해 수정안은 합참의장은 대통령에 대한 군령 보좌만 하고, 합동군사령관 기능은 신설하는 합참 1차장이 맡으며, 기존의 합참차장이 하던 일은 합참 2차장을 신설해 맡도록 했다. 그리고 합참의장과 합참 1차장은 육군 대장이 맡게 함으로써 육군 주도를 재확인했다.
미래전의 성패를 결정할 해·공군의 전력사업은 줄줄이 연기하고 육군의 지배력은 어떻게 해서든 유지하려 한 것이 국방개혁 2020 수정안이다. 예산을 줄이라는 지침은 줘도, 미래를 위해 ‘한국군을 이렇게 만들라’는 지침은 주지 못하는 게 이명박 정부의 한계다. 국방개혁의 본래 목표는 전력증강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안보에 대한 철학이 없기에 군 개혁을 예산 절감으로만 보는 실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