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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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분쟁 vs 형벌 분쟁 진실은 밝혀야 한다

형사책임과 민사책임

  •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1-09-19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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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리 분쟁 vs 형벌 분쟁 진실은 밝혀야 한다
    8월 23일 서울남부지법 민사11부(최승록 부장판사)는 생후 5개월 된 아이를 엎드려 재워 숨지게 했다며 어머니 H씨 등 유족이 어린이집 원장 강모(33) 씨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억548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09년 1월 당시 생후 5개월이던 K군은 서울 영등포구 한 어린이집에서 바닥에 엎드려 자던 중 호흡 곤란 등으로 숨졌다. 당시 법원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원장 강씨와 보육교사 이모(55) 씨에 “엎드려 재운 게 영아급사증후군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유족은 어린이집을 상대로 2억50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이번에 승소했다. 형사소송에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민사소송에서는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과거 미국에서 아내와 정부(情夫)를 죽인 혐의를 받은 전직 미식축구 선수 O. J 심슨도 형사소송에서는 무죄, 민사소송에서는 유죄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 화제가 된 바 있다. 일반 시민 처지에서는 법원이 같은 사안을 두고 재판하는데 왜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의 결론이 다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민사사건은 원칙적으로 개인 간 권리에 관한 분쟁이고, 형사사건은 범죄를 전제로 한 국가 형벌권 행사 문제다. 따라서 민사사건은 일반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쪽에 입증 책임이 있고, 형사사건은 국가를 대표한 검사에게 입증 책임이 있다.

    민사사건은 좀 더 우월한 증거를 가지고 범죄를 입증하는 측이 승소한다. 반면, 형사사건은 피고인이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으므로 검사는 공소사실에 대해 증거 능력이 있는 엄격한 증거를 바탕으로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입증해야 한다.



    법원이 과연 이러한 원칙을 모든 사건에 적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와 비판이 존재할 수 있으나, 헌법상 원칙은 분명하다. 따라서 사실관계가 동일하다 해도 법원은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의 심리에서 그 심증 형성의 기준을 달리하므로 앞서 살핀 사건에서와 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권리 분쟁 vs 형벌 분쟁 진실은 밝혀야 한다

    O. J 심슨은 1994년 아내와 정부를 살해한 혐의를 받았으나 변호인단의 전략에 힘입어 형사소송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우리 대법원은 일관되게 무죄판결은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이 없다는 의미일 뿐, 공소사실의 부존재가 증명됐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형사소송에서 이미 무죄판결이 확정됐다 해도 관련 민사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인용할 수 있다는 판례를 견지한다. 물론 관련 형사사건의 판결에서 인정한 사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사재판에서 유력한 증거 자료가 된다. 그러나 민사재판에서 제출한 다른 증거 내용에 비춰 형사판결의 사실 판단을 그대로 채용하기 어렵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이를 배척할 수도 있다.

    사람이 만든 제도는 언제나 허점을 내포할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 문명은 야만을 제거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와 희생 속에 발전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국가라는 이름으로 지배세력이 행사하는 폭력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이를 통제하려는 법치주의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진실을 밝혀 당사자의 억울함을 해소할 책임을 부여받은 법관과 검사의 책임은 그래서 더욱 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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