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6

2010.07.19

010 통합,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절대 못 바꿔” vs “일관성 지켜야” 논란 속 방통위 7월 말 결정에 주목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07-19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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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 통합,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2000년대 초반까지 가입된 01×번호는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첫딸이 태어났을 때도 이 번호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번호는 제 상징이고 사업자산입니다.”(010 통합반대 운동본부 회원)

    “정부는 번호통합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미래 통신환경 변화에 대비해 번호자원도 확보해야 합니다.”(방송통신위원회 통신정책국 통신자원정책과 박준선 과장)

    7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이동전화 번호정책 전문가 간담회에서 오간 대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휴대전화 식별번호를 010으로 통합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여전히 892만 명의 이용자가 01X(011, 016, 017, 018, 019를 통칭)를 사용하고 있다. 이제 오랜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시점이 왔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7월 말 010번호 통합 여부 및 통합 시기를 결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1994년까지 모든 휴대전화의 식별번호는 011로 총 10자리였고(예: 011-999-9999), 사업자도 한국이동통신(현재 SK텔레콤) 하나였다. 이런 형식에서는 번호를 총 800만 개밖에 이용할 수 없어 정부가 1996년 새로운 사업자 신세기통신(현재 SKT에 통합)에 017이라는 식별번호를 부여했다. 당시 국번호를 통일하는 대신, 번호를 한 자리 확대하는 방침도 논의됐다. 그러나 당시 유통되던 휴대전화 단말기는 10자리밖에 수용할 수 없어, 번호를 늘리려면 모든 휴대전화를 수거해 단말기를 교체해야 했기에 비용 문제로 불가능했다. 그 후 1997년 개인휴대전화(PCS) 3사에 016, 018, 019번을 제공하면서 ‘식별번호 다양화·브랜드화 시대’가 열렸다.

    휴대전화 이용자 77%가 010



    2002년 휴대전화 가입자가 3000만 명을 돌파하면서 SK텔레콤 등 일부 사업자의 번호 부족 사태가 예상됐다. IMT-2000(3G) 서비스를 제공하는 3개 사업자가 사용할 신규 번호를 확보해야 했다. 이에 정부와 사업자는 모든 3G 사업자가 11자리 010번호(예: 010-9999-9999)를 공동 사용하는 방침을 정했다. 그러면 총 8000만 개 번호를 쓸 수 있어 모든 휴대전화 이용자를 흡수할 수 있다. 또한 당시 고급 브랜드화에 성공해 2G 지배사업자가 된 SK텔레콤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정부와 사업자 간에 논의를 거쳐 2004년 12월 정보통신부(현 방통위)는 “번호통합 비율이 80%에 이르는 시점에 번호통합 정책 방향을 마련하자”고 정책을 결정했다. 현재 010을 사용하는 고객은 약 3700만 명, 전체 이용자(약 4800만 명)의 77%다.

    정부가 번호통합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큰 부담이다. 정부 정책이 바뀌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것. 또한 4000만 명 가까운 고객이 이미 01X에서 010으로 바꿨기 때문에 번호통합을 하지 않으면 정부의 정책을 믿고 따라준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 식별번호가 010으로 통합되면 모든 휴대전화가 뒤의 8자리만 누르면 통화할 수 있어 편리하고, 아이패드·스마트 TV 등 새로운 통신환경을 위해 미리 번호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유도 있다. 방통위 통신정책국 통신자원정책과 이준희 사무관은 “현재 5000만 휴대전화 사용 인구를 위해 010~019까지 4억8000만 개의 전화번호가 시중에 있다. 남은 4억3000만 개의 번호는 사용하지 않은 채 낭비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번호통합을 통해 낭비되는 자원을 줄일 수 있다는 게 방통위의 주장이다. 인터넷에서 휴대전화 소액결제 등을 할 때 010에서 019까지 식별번호를 선택해야 하는데, 개인은 클릭 한 번이면 되지만 업체는 이 시스템을 운용하기 위해 매달 일정 금액이 든다. 식별번호가 통일되면 이 같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회원 수 6300여 명의 ‘010 통합반대 운동본부’ 서민기 대표는 011로 시작하는 2G폰과 010으로 시작하는 아이폰, 두 대의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01X 번호는 3G로 번호이동을 할 수 없어, 01X 번호를 유지하려면 2G만 써야 한다. 2003년 정부는 010의 원활한 통합을 위해 01X의 3G 가입 및 신규 가입을 금지했다. 서 대표에 따르면 다수의 회원이 스마트폰을 이용하기 위해 두 대 이상의 휴대전화를 쓰고 있어 통신비 부담이 크다. 그래도 그들이 01X 번호를 포기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잃을 우려 때문이다.

    “만약 강제 통합 땐 소송도 불사”

    서 대표는 “프리랜서나 개인 사업자의 경우 신용이 떨어지고 영업망이 파괴되기도 하는데, 이는 생계와 직결된 문제”라고 말했다. 게다가 명함, 간판, 휴대전화 메모리 저장 등을 바꾸는 비용이 발생한다. 실제 15년 넘게 011 번호를 유지하고 있는 피플스카우트 임정우 대표는 “내가 하는 헤드헌터 일은 인맥이 중요하다. 15년 이상 쓴 번호를 바꿨다고 일일이 알리는 것도 일이고, 연락이 닿지 않던 파트너가 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는 경우도 있기에 바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2004년 이전 010 통합 추진 근거였던 문제들이 현재 자연스레 사라졌기 때문에 010으로 통합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있다. 번호이동 정책이 가능해지고 KT 아이폰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독과점이 해소된 데다, 요즘은 주로 휴대전화번호 저장 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에 8자리를 누르는 일도 많지 않다는 것. 녹색소비자연대 전응휘 정책위원은 “정책 일관성이란 이유로, 오히려 소비자의 불만만 사는 정책을 끝까지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이동통신사들은 010으로 통합되면 번호연결 서비스, 번호안내 서비스 등을 제공해 01X 이용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600만 명 이상 2G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을 제외하고 대략 100만 명, 170만 명의 2G 고객을 가진 KT, LGU+는 소수 고객을 위해 2G망을 유지하는 게 부담스러운 데다 2G에서 여전히 우세한 SK텔레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010 통합 정책에 찬성하는 편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까? 방통위 박준선 과장은 “전화번호는 공적 자산이고, 개인 이용자가 사업자와 계약을 맺은 약관에 ‘사업자는 경우에 따라 고객의 서비스 번호를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010 통합 정책에는 법률적 하자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 대표는 “현재 01X 이용자들이 3G 휴대전화를 이용할 수 없는 데 대한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만약 강제 통합책이 발표되면 그에 대한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박기식 연구위원은 “010 통합으로 가는 방향은 옳으나 시기가 문제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2015년쯤 01X 사용자가 250만 명, 즉 전체 휴대전화 사용 인구의 4%만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쯤이 적절한 시기”라며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방통위 박준선 과장은 7월 말 방통위 결정 방향에 대해서는 끝까지 말을 아꼈다. 6년을 끌어온 01X 논란. 방통위가 내놓을 해답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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