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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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 위 요정 김연아 최대 무기는 ‘배짱’

어떤 상황서도 긴장 않는 대범함, 위기에서 더 강해지는 승부욕

  • 도쿄=김성규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imsk@donga.com

    입력2007-03-30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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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체육관은 유서 깊은 곳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 체조경기가 열렸던 곳.

    도쿄올림픽은 패전의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선 일본에게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일본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16, 은메달 5, 동메달 8개를 따 미국과 옛 소련에 이어 종합순위 3위에 오르는 눈부신 성적을 냈다.

    그로부터 43년이 흘러 지금 도쿄체육관에서는 2007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다. 일본은 피겨 강국이다. 일본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 일본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단 1개의 금메달을 따고도 그 종목이 단지 피겨 여자 싱글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난리법석을 떨었다.

    일본의 자랑은 17세의 아사다 마오. 일본 언론은 연일 아사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한다.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3바퀴 반 회전)을 구사하는 세계의 몇 안 되는 선수이면서 외모도 빼어나다. 3월18일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첫 공식 연습 때 4100명의 팬들이 3000엔을 지불하고 입장해 아사다가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피겨 대회에 관중 100명 모으기 힘든 우리로선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피겨 유명 인사들 모인 자리서도 “기 안 죽어”



    아사다에 맞서는 한국의 희망은 김연아(17·사진). 그러나 그는 지금 첩첩산중 난관에 봉착해 있다. 허리디스크를 치료하느라 두 달 넘게 연습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번엔 연습 중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꼬리뼈를 심하게 다쳤다. 김연아의 강점은 정신력이다. 기술적으로도 세계 정상급임에는 틀림없지만 최고봉은 아니다. 김연아가 특별한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긴장하지 않는 대범함, 그리고 위기에서 더 강해지는 승부욕 때문이다.

    3월18일 선수단 숙소가 있는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의 2층 홀에서 대회 개막 전야제가 열렸다. 세계 피겨계를 쥐락펴락하는 인물들이 다 모였다. 유니폼이 아닌 사복을 입고 등장한 선수들은 정말 패션모델 같았다. 패션쇼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그 가운데 한국인은 김연아와 몇 명뿐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김연아는 기죽지 않고 의연했다. 그는 “원래 성격이 그래서…”라며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와보면 안다. 한국이 얼마나 세계 피겨계의 변방인지를…. 그렇기 때문에 김연아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이번 대회에서 김연아가 받아든 성적표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뤄두자. 김연아의 존재만으로도 한국은 복받은 나라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복이 계속되도록 다 같이 지켜보자.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우아하게 날아오를 김연아를 떠올리니 벌써부터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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