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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반죽 하나에서 빚어진 다양한 맛

사시사철 골라 먹어볼까, 칼국수

반죽 하나에서 빚어진 다양한 맛

멸치로 국물을 내 깔끔한 멸치칼국수 [사진 제공·김민경]

멸치로 국물을 내 깔끔한 멸치칼국수 [사진 제공·김민경]

엄마는 매일 장을 보러 가셨다. 내가 자랄 때는 급식이 없었고 외식 기회도 적었기에 당연히 아침밥, 점심 도시락, 저녁식사는 엄마 손을 거쳐 차려졌다. 김치와 밑반찬 외에 찌개나 요리 한 접시라도 만들어 가족에게 먹이려고 엄마는 정해진 일과처럼 매일 장에 나가 싸고 좋은 재료를 찾았다. 가끔 짐이라도 들어줄 요량으로 엄마를 따라나서면 나를 데리고 꼭 들르는 곳이 있었다. 똑같은 모양의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들이 일렬로 앉아 칼국수 혹은 칼제비를 먹는 국숫집이었다. 나는 엄마가 아침과 점심식사를 어떻게 챙겨 드시는지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저녁은 대체로 가족이 함께 먹었지만 엄마는 늘 드는 둥 마는 둥 하셨다. 결국 분주하기만 하고 부실했을지도 모를 엄마의 끼니에 든든한 온기를 불어넣어준 것은 바로 시장에서 서둘러 먹는 칼국수였던 것 같다. 

칼국수는 흔한 음식이지만 아무나 맛있게 끓이기는 어렵다. 밀가루를 알맞게 반죽해 밀대로 밀고 또 밀어 납작하게 만든다. 들러붙지 않도록 밀가루를 묻힌 뒤 여러 번 접어 칼로 일정하게 썰어 국수를 만든다. 칼국수는 고명보다 국수와 육수의 조화로 먹는 음식이다. 그만큼 국수의 굵기와 두께, 질감, 식감이 중요하다. 너무 되고 두꺼우면 육수를 맛볼 사이도 없이 목이 멘다. 가늘고 힘이 없으면 후루룩후루룩 당기는 재미도, 쫀득하게 씹어 삼키는 맛도 없다. 

어릴 적 서울 강남구 은마상가 지하 시장에서 먹던 칼국수는 멸치로 국물을 내고 호박고명을 얹어줬다. 멸치국수 고명은 대개 소박해 호박, 당근, 대파, 달걀, 다시마, 김 등이 전부다. 그만큼 값도 저렴하고 누구나 좋아한다. 멸치칼국수는 양념간장이나 김치를 넣어 휘휘 저어가며 먹는다. 바지락 등 조개를 듬뿍 넣어 맛을 낸 칼국수는 멸치국물보다 다디단 맛이 진하다. 오래된 아파트 상가 또는 재래시장, 서울 충무로, 을지로, 종로, 여의도 등에 가면 멸치칼국수나 해물칼국수를 맛있게 하는 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국물이 진하고 구수한 사골칼국수 [사진 제공·김민경]

국물이 진하고 구수한 사골칼국수 [사진 제공·김민경]

고기나 사골로 국물을 낸 칼국수는 한 그릇 보양식과 다름없다. 경북 안동국시 스타일의 국숫집이 유난히 많은 서울 성북동에는 저마다 손맛을 뽐내는 고깃국물 칼국숫집이 많다. ‘국시집’ ‘명륜손칼국수’ ‘손칼국수’ 등이다. 한편 ‘연희동칼국수’는 뽀얀 사골국물에 말아 낸 칼국수 한 그릇으로 수십 년 동안 단골을 거느리고 있고, ‘소호정’은 양지를 우린 깔끔한 국물 맛으로 전국 국수 마니아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얼큰한 맛이 일품인 육개장칼국수. [사진 제공·김민경]

얼큰한 맛이 일품인 육개장칼국수. [사진 제공·김민경]

비슷한 고깃국물이지만 완전히 다른 매력의 칼국수도 있다. 입안이 얼얼할 만큼 칼칼하고 대파를 잔뜩 넣어 시원한 육개장에 칼국수를 말아 먹는 이른바 ‘육칼’이다. 애주가에게 맞는 으뜸 해장음식이다. 재료가 해물로 바뀌면 경북 포항의 명물 모리국수가 된다. 해물과 콩나물이 들어간 탕에 칼국수를 넣어 걸쭉하게 끓여 먹는 음식으로 바닷가 사람들이 즐기는 싸고 맛좋은 속풀이 음식이다. 


차가운 육수가 매력적인 냉칼국수. [사진 제공·김민경]

차가운 육수가 매력적인 냉칼국수. [사진 제공·김민경]

더운 날에는 시원한 냉칼국수가 별미다. 성북동 ‘하단’에 가면 메밀칼국수 사리에 시리도록 맑고 차가운 육수를 그득하게 부어 내놓는 칼국수가 있다. 곱게 다져 올린 청양고추 고명의 톡톡 쏘는 매운맛이 차가운 국수와 잘 어울린다. 이외에 장을 풀어 맛을 내는 장칼국수, 닭고기나 꿩고기로 육수를 내고 고명으로도 얹은 칼국수, 푹 삶은 구수한 팥이 주재료인 팥칼국수 등 사시사철 별미로 즐길 수 있는 칼국수가 다양하다.




주간동아 2018.08.29 1153호 (p77~77)

  •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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