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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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예쁘면 강도 짓도 용서?

수배 얼짱 이미혜씨 때아닌 스타덤 … 외모 지상주의가 빚은 해프닝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02-05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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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만 예쁘면 강도 짓도 용서?
    ”범행 동기는 무엇이라고 파악하셨습니까?”

    “피해자 얼굴을 보니 자신보다 예뻐서 칼로 찔렀나 보지요. 얼굴이 최고라면서요.”

    “? !”

    최근 ‘강도 얼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인터넷을 통해 ‘스타’가 된 특수강도 용의자 이미혜씨(22)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북 포항 북부경찰서 관계자는 바로 “미안하다. 어안이벙벙해서 그렇다”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전국을 누비며 이씨의 뒤를 쫓고 있다는 그는 이날도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아침 겸 점심식사 시간을 냈다고 했다.

    경찰은 강도가 얼굴이 예뻐서 인기를 얻게 된 예상외의 상황에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을 잡아야 할 경찰이 범인을 인기인으로 만들어놨으니, 피해자에게 면목이 서지 않아 밥이 안 넘어간다”고 덧붙였다.



    긴 생머리에 달걀형 얼굴, 또렷한 이목구비 등 전형적인 미인형인 이씨의 사진이 ‘흉악한’ 범죄 용의자들의 사진과 함께 5000만원 현상금이 걸린 공개 지명수배자 전단에 오른 것은 2004년 1월1일이다. 이씨는 지난해 1월 공범 김영근씨(32)-이씨 옆에 사진이 올라 있다-와 함께 포항 외곽 H읍 ‘카풀 정류소’에 서 있던 여성을 납치한 뒤 현금과 신용카드 등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도무지 강도처럼 생기지 않은’ 젊은 여성이 태워주겠다고 하자 피해자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안심하고 차에 올라탔고, 차가 읍내를 빠져나가자마자 두 사람은 흉기를 든 강도로 돌변해 피해자를 묶은 뒤 금품을 강탈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 여성은 몸에 상처까지 입었다.

    이씨와 공범 김씨는 빼앗은 신용카드로 포항의 한 은행에서 현금 70만원을 인출했다. CCTV가 작동 중이었지만 이씨는 모자와 목도리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가린 상태였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경주까지 진출해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다 지문 감식으로 신분이 드러나자 자취를 감췄다.

    여기까지는 흔하디 흔한 한 강도 사건이다. 문제가 된 건 올해 1월1일 새로운 지명수배자 명단이 배포되면서부터였다. 전국의 경찰서와 지하철 등에 지명수배자 명단이 붙자 ‘평범한’ 수배자의 얼굴 사이에서 젊은 이씨는 단연 돋보였다. 한 네티즌이 카메라폰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린 이씨의 사진은 때마침 타오르고 있던 ‘얼짱 신드롬’에 다이너마이트를 던진 꼴이었다.

    얼굴만 예쁘면 강도 짓도 용서?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5천만원 현상금이 걸린 이미혜씨의 사진을 보고 있다. 20명의 지명수배자 사진들 사이에서 단연 눈길을 끈다.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는 순식간에 10여개의 ‘강짱 이미혜 카페’가 등장했다. 용의자와 동갑내기인 남자 대학생이 ‘이미혜씨가 빨리 검거되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게 돕고 싶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알고 싶어’ 개설했다는 ‘강짱’ 카페의 회원 수는 이미 1만명을 넘었다.

    회원들이 올린 글을 보면 적잖은 사람들이 이미 지명수배자 명단을 보고 이씨의 얼굴에 주목한 것을 알 수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진을 보고 첫눈에 예쁘다고 생각했다’는 글이 많기 때문이다. 이씨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예쁘게 생긴 여자가 정말 강도짓을 했을까’란 의문을 곧 ‘이렇게 착하게 생긴 여자가 강도일 리 없다’는 단정으로 바꾼다.

    ‘마누라 삼고 싶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나도 예뻐서 아는데 강도 짓 같은 거 못한다’,

    ‘예뻐서 금품을 그냥 주었을 것이다’,

    ‘○나라당에서 영입할 것이다’,

    ‘자수하면 연예인으로 밀어주자’.

    이런 종류의 의견들은 ‘예쁘다=착하다’가 상식을 넘어서 사람들의 무의식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일부 네티즌들은 ‘착한 이씨’를 주인공으로 한 픽션을 공동 창작하기에 이른다. 자칭 이씨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동창들이 나와 이씨를 ‘증언’하기도 한다.

    “학창시절부터 예쁘고 겸손해 미인대회 한번 나가지 않은 ‘조용한 얼짱’이었던 이씨는 착하다 보니 판단력이 흐려졌고 열 살 연상의 김영근에게 덜미를 잡혀 그의 협박을 받고 어쩔 수 없이 강도가 되었다. 지금도 그가 이씨를 구금하고 있어 자수하지 못하고 있다(또는 수사망에 포위되어 자살했다)”는 게 현재 사이버 공간에서 떠돌고 있는 이야기다.

    경찰은 인터넷에 올라 있는 ‘증언’들 중 90%는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무엇보다 이미혜씨는 김영근씨의 ‘종범’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 범행을 저지른 공범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이나 은행 CCTV에 찍힌 두 사람의 행동을 분석해봐도 ‘협박’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얼굴만 예쁘면 강도 짓도 용서?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올린 합성 사진들. ‘강짱’의 인기는 외모 지상주의와 왜곡된 인터넷 문화가 함께 만들어낸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가 지명수배 후 ‘뜨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은 보통 서민들인 피해자들과 이씨의 부모라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아무리 범죄 용의자라 해도,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로 어린 딸의 사진과 온갖 나쁜 이야기들이 인터넷으로 퍼지고 있는데 어떤 부모가 마음 편하겠느냐”고 되묻는다.

    사실 ‘강짱’ 카페에는 이씨와 카페 개설자에 대한 인권침해성 의견과 모욕적 글들이 적지 않다.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려면 회원 가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회원 수는 강짱 팬과 안티 강짱을 더한 것이다. 안티 강짱들은 범죄자를 미화하는 카페를 자진 폐쇄하라고 주장한다.

    ‘강짱’ 카페가 주로 모여 있는 ‘다음’ 운영자인 ㈜다음커뮤니케이션측은 “음란성과 상행위 외에는 카페를 폐쇄할 법적 근거가 없어 모니터링만 하고 있다”면서 “사회적 이슈가 없어지면 카페 활동도 바로 축소된다. 문제는 카페가 아니라 외모 지상주의라는 사회적 신드롬”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죠. 신창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말로 서민들의 응어리진 마음에 호소한 것이지만, 이번 경우는 얼굴만으로 떠받들어지니….”

    경찰은 1998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강도 신창원과 ‘강짱’을 비교하는 말에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로는 역시 ‘예쁘면 착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맞불을 놓겠다는 것인지 “수배자 사진은 주민등록증에 붙어 있던 것으로 18세 때의 ‘이미지 사진’(수정된 사진)이다. 머리 모양도 바뀌고 예쁘지도 않다(?)”고 덧붙인다.

    신창원이 줄무늬 티셔츠가 잘 어울리는 젊고 샤프한 외모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테러리스트 얼짱 1호 김현희가 ‘슈렉’의 피오나 공주처럼 생겼다면 그처럼 큰 사회적 동정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피해자가 흉악범에 공감하는 심리를 일컫는 ‘스톡홀름 신드롬’에서도 호감 가는 외모는 중요한 전제가 된다. 그러나 로비스트였던 린다 김씨처럼 빼어난 외모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에서 볼 수 있듯 대중들이 범죄자와 ‘자기 동일시’가 가능한가이다. ‘오죽했으면…’이란 말이 바로 전형적인 공감 심리다.

    역학과 관상 전문가인 노해정씨는 “일부 관상학자는 범죄형 얼굴은 날 때부터 정해진다고 말하지만, 사실 얼굴은 끊임없이 변한다. 동양학에서 운명을 정하는 것을 상(象), 수(數), 리(理)라고 한다. 얼굴은 사주가 변화시키고, 사주를 바꾸는 것은 세상의 이치란 뜻이다. 수배전단에 있는 18세 꿈 많던 소녀 이미혜씨와 칼을 든 강도 이미혜씨는 다른 사람이다. 검거되면 알게 되겠지만 얼굴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씨의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 널리 알려졌음에도 쓸 만한 제보가 없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지.

    ‘강짱’ 이미혜씨가 신창원이 될지, 린다 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네티즌들의 맹목적 동정을 사고 있는 것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강짱 신드롬’은 외모가 바로 현금과 무한 권한으로 환산되는 외모 지상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같은 현실에 대한 자기 경멸과 독설이 빚어낸 해프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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