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 야구대표팀 류중일 감독.
이승엽(37·삼성)과 김태균(31·한화), 이대호(31·오릭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거포가 다 모였다. 이들 ‘빅3’가 대표팀에 동반 발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1회 WBC 땐 이승엽과 김태균이 있었지만 이대호가 빠졌다. 당시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뛰던 최희섭(KIA)이 대표팀에 승선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베이징올림픽엔 이승엽과 이대호가 동반 출전했고, 김태균은 제외됐다. 당시 김경문 대표팀 감독은 이승엽이 올림픽 출전을 결정함에 따라 고심 끝에 김태균을 제외하고, 지역예선에서부터 헌신했던 이대호를 선택했다. 이어 2009년 제2회 WBC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은 소위 82년생 스타가 주역이었다. 국가대표 터줏대감 이승엽이 대표팀 합류를 고사함에 따라 이대호와 김태균이 주축을 이뤘고,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소속이던 추신수(신시내티)가 이승엽 공백을 메웠다. 이승엽 없이도 대표팀은 WBC 준우승과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번 제3회 WBC 대표팀에선 추신수가 빠졌지만, 빅3가 동시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면서 류 감독이 “타선은 역대 대표팀 중 최강”이라고 자신할 만큼 최고 화력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3명 모두 수비 포지션이 1루라 어떻게 최적 조합을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1명이 1루수, 다른 1명이 지명타자로 뛰면 남은 1명은 대타로 기용될 수밖에 없다. 류 감독은 “3명의 기능을 분담하겠다”고만 말할 뿐 누구를 주전 1루수로 쓰고, 누구를 대타로 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전문가들은 일본 프로야구 진출 첫해였던 지난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이대호가 4번 겸 지명타자를 맡고, 수비 능력이 좋은 이승엽이 선발 1루수 겸 3번 타자, 그리고 김태균이 대타를 맡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당일 컨디션과 상대 선발이 왼손이냐, 오른손이냐에 따라 포지션은 달라질 수 있다. 이대호 등 3명 외에도 테이블세터를 이룰 이용규(KIA)와 정근우(SK), 정교함과 파워를 동시에 갖춘 김현수(두산), 손아섭(롯데) 등 선발 라인업에 포함될 9명 면면은 화려하면서도 짜임새를 갖췄다. 진갑용(삼성)과 강민호(롯데)가 번갈아 지킬 안방 역시 안정감과 패기가 조화를 이뤘다.
마운드 불안? 불펜 운용이 키!
수년간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한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적응 문제로, 그리고 ‘일본 킬러’ 김광현과 봉중근은 부상에 따른 재활 문제로 대표팀에서 이탈했다. 지난해 11월 12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예비엔트리 28명’ 가운데 7명이 교체됐고, 그중 ‘추신수→손아섭’을 제외한 6명이 모두 투수 교체였다. 간판 투수 이탈로 여기저기서 마운드 전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비관론이 나온다. 더구나 선발과 불펜에서 요긴한 활약이 예상되던 이용찬(두산)은 대체선수로 대표팀에 승선하고도 갑작스러운 팔꿈치 통증 탓에 ‘대체선수 발탁 후 재탈락’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크게 우려할 게 없다는 긍정론도 만만치 않다. 대표팀 투수진 맏형인 서재응(KIA)은 “태극마크를 달 정도의 투수라면 기량 차이가 크지 않다. 대회 기간에 얼마나 최고 컨디션을 만들고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WBC는 ‘투구수 제한’이라는 독특한 룰이 있다. 1라운드에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한계 투구수는 65개, 2라운드는 80개, 준결승과 결승은 95개다. 또 50개 이상을 던진 투수는 무조건 나흘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 투수 혹사를 막으려는 조치인데, 결과적으로 마운드 성패가 불펜 운용에 달렸다는 얘기다. 특히 2라운드까지는 두 번째 등판하는 투수 몫이 중요하다. 대표팀에는 오승환(삼성), 정대현(롯데), 손승락(넥센) 같은 특급 마무리 투수가 버티고 있는 데다 서재응, 노경은(두산), 송승준(롯데) 등 선발과 불펜을 오갈 수 있는 스윙맨 자원도 풍부하다. 이들은 선발로 예상되는 윤석민(KIA), 장원삼(삼성), 장원준(경찰야구단)의 어깨를 가볍게 해줄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을 갖췄다.
1월 15일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참가하는 한국 야구대표팀 출정식 및 유니폼 발표회에서 필승을 다짐하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류 감독의 승부수 ‘수비와 기동력’
2월 12일 대만 자이현으로 출국해 한창 전지훈련 중인 대표팀은 2월 26일 1라운드가 펼쳐지는 타이중으로 이동해 현지 적응 훈련에 들어간다. 네덜란드, 호주, 대만과 B조에 편성된 한국은 타이중 인터컨티넨털구장에서 네덜란드(3월 2일), 호주(3월 4일), 대만(3월 5일)과 차례로 격돌한다. 1라운드에서 2위 이내에 들면 2라운드에 진출해 A조(일본, 쿠바, 브라질, 중국) 1·2위 팀과 대결한다. 2라운드 경기는 3월 8일부터 일본 도쿄돔에서 펼쳐진다.
객관적으로 전력을 비교했을 때 1라운드 B조에서 한국이 대만과 함께 2라운드에 진출한다면 A조에서 올라온 일본과 쿠바를 만날 공산이 크다. 그중 다시 2위 안에 들어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4강전 진출 자격을 얻는다. 대표팀이 ‘1차 목표’인 4강 진출을 달성하려면 일본, 쿠바, 대만 가운데 2팀을 제쳐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은 해외파 없이 순수 국내파 위주로 팀을 꾸렸지만, 제1·2회 WBC 연속 우승이라는 저력에서 보듯 탄탄한 공수 짜임새가 자랑이다. 1라운드에서 A조 1위가 되든 2위가 되든, 2라운드 일본에서 첫 경기는 무조건 오후 7시에 편성되는 등 일정 부분 홈 어드밴티지도 안고 있다. ‘아마야구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쿠바는 제1회 WBC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제2회 때는 8강에 그쳤다. 2008 베이징올림픽 결승전 상대이기도 했던 쿠바는 과거에 비해 파워는 약해지고 세밀함은 더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듯, 여전히 베일에 싸인 팀이다. 야구 부흥을 위해 WBC 선전을 다짐하는 대만은 왕첸밍, 궈홍즈 등 전직 메이저리거를 총동원해 최강 멤버로 팀을 꾸렸다. 한국으로선 3팀 모두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09년 제2회 WBC 때 역대 최약체로 여겨지던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 위원장은 ‘위대한 도전’을 준우승으로 마무리해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WBC 대표팀은 또 한 번 ‘위대한 도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류중일호’가 출발선상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