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5일 인천공항이 발칵 뒤집혔다. 토리노에서 동계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인 금메달 6개를 따낸 쇼트트랙 대표팀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도 남녀 모두 종합 1위를 하고 금의환향한 그때였다. 환영인파 속에서 대표팀이 꽃다발을 전달받는데 한쪽에서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대표팀 에이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코치가 다른 선수들에게 안현수가 1등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라고 시켰다”며 김형범 빙상연맹 부회장 등 코칭스태프에게 항의했던 것.
“강요에 출전 포기 vs 정상적인 교체”
4년 후 다시 동계올림픽이 열린 뒤 치러진 세계선수권대회. 이번에도 그때와 똑같이 안씨가 뉴스의 중심에 섰다. 안씨는 안현수의 팬카페를 통해 “밴쿠버 2관왕 이정수가 강요에 의해 다른 선수에게 출전을 양보했다”고 주장했다. 3월 19~21일 불가리아 소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이정수는 경기 전 발목 통증으로 개인 종목 출전자 명단에서 빠졌다. 특히 논란이 된 부분은 이정수 대신 출전한 선수가 2009년 국가대표선발전 4위 김성일이 아닌 5위 곽윤기라는 점이다. 이정수와 김성일은 모두 단국대 소속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빙상연맹)은 안씨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이정수와 김성일의 친필 사유서를 공개하면서 “정상적인 엔트리 교체였다”고 해명하며 발 빠르게 대처했다. 그러나 이정수는 불과 1개월 전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세계선수권대회 직후인 27일 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열린 팀 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단순히 경기 출전 일정만 봐도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4년 전 빙상연맹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진상조사위원회까지 만들며 뿌리를 뽑으려 몸부리쳤던 쇼트트랙 파벌싸움이 재현된 걸까? 현장의 목소리는 일단 “아니다”로 좁혀진다. 하지만 “파벌보다 심각한 고질병인 밀어주기 관행은 남아 있다”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쇼트트랙 선수의 아버지는 “쇼트트랙은 종목 특성상 파벌이나 밀어주기 관행이 사라지기 힘들다”며 “한체대와 비(非)한체대 간의 파벌다툼은 많이 사라졌지만 밀어주기 등 악습은 남아 있다. 파벌 문제로 연맹과 한 차례 싸운 적 있는 현수 아버지가 이번에는 관행을 문제로 꺼내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쇼트트랙은 빙판 위 트랙에서 펼치는 기록경기다. 그러나 ‘형제’ 종목인 스피드스케이팅과 달리 기록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어떤 상대와 어떤 레이스를 펼치느냐에 따라 기록의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의 신체 기량뿐 아니라 몸싸움, 작전계획이 중요해 동계스포츠 중 변수가 가장 많은 종목으로도 꼽힌다. 한국이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하고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쇼트트랙은 400m 트랙에서 경기하는 스피드스케이팅과 달리 111.12m의 짧은 타원형 트랙에서 펼쳐진다. 그런 만큼 곡선 구간에서의 자리다툼은 순위로 이어진다. 한국대표팀은 그동안 한 명이 안쪽으로 치고 나가는 사이 다른 한 명이 크게 원을 돌아 대각선으로 치고 들어와 선두를 동시에 제치는 등 팀워크를 바탕으로 유럽과 북미 선수들이 혀를 내두르는 다양한 작전을 선보였다. 그리고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19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에이스가 1위로 골인하기까지 나머지 선수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또한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의 판단에 따라 특정 선수의 밀어주기도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종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코치의 권한이 커졌고 이 과정에서 치열한 파벌다툼, 밀어주기 관행이 논란을 일으켰다.
쇼트트랙계는 한체대와 비한체대가 코치 선임권, 대표팀 선발 문제로 수년간 대립했다. 세계 정상을 휩쓸며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2003년부터 서서히 표출됐고, 2005년 모 선수가 안현수에게 동계유니버시아드 출전 양보를 강요하다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해 결국 폭발했다.
금메달 땄으면 알아서 양보하라?
2006년 토리노대회 직전에는 한체대 소속 안현수가 한체대 출신이 코치인 여자팀에서 훈련을 받고 일부 여자선수는 남자팀에서 훈련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당시 한체대 코치 소속 선수들과 비한체대 코치 선수들은 함께 식사도 하지 않았으며, 계주를 제외하고 각자의 코치에게 작전을 지시받는 상황이었다. 세계선수권대회 직후 파벌다툼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강력한 내부 자정노력이 이뤄졌고, 일부 인사가 빙상연맹을 떠나기도 했다. 코치 선임 및 선수 선발의 공정성을 위해 외국인 심판을 영입하기도 했다. 그래서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올림픽 메달 따기보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이정수 선수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포기 강요’ 논란이 일자 일부에서는 “올림픽도 끝났는데 세계선수권 성적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성적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이 대회 개인종합에서 우승하면 국가대표 선발전 면제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쇼트트랙 내부에는 2005년 안현수 폭행사건처럼 “금메달을 땄으면 알아서 양보하라”는 식의 관행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또 다른 쇼트트랙 선수의 아버지는 “예전에는 국제대회에서 페이스메이커를 하며 에이스의 우승을 도운 선수를 국가대표로 뽑아주고자 대표선수 선발 방침을 바꾼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금메달을 함께 만들었던 관행이 남아 있어 큰 경기에서 우승하면 다음 대회는 양보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정수 본인과 가족은 이번 논란에 직접적인 반박이나 문제 제기를 피하고 있다. 그러나 체육계에서는 부상 선수가 논란에 대비해 사유서까지 제출해야 하는 쇼트트랙계의 상호 불신에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다. 4년 전 상처가 컸던 만큼 빙상연맹 내부에서도 ‘이번 기회에 모든 의혹을 확실히 밝히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안씨의 문제 제기에 빙상연맹 관계자는 “파벌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 정상적인 엔트리 교체였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빙상 종목이 좋은 성적을 거둔 뒤 이런 일이 생겨 아쉬움이 크다. 모든 부분을 떳떳이 공개하겠다”고 했다. 빙상연맹은 팀 선수권대회가 모두 끝난 3월 29일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엔트리와 관련해 제기된 문제의 사실 규명을 위해 대한체육회에서 감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강요에 출전 포기 vs 정상적인 교체”
4년 후 다시 동계올림픽이 열린 뒤 치러진 세계선수권대회. 이번에도 그때와 똑같이 안씨가 뉴스의 중심에 섰다. 안씨는 안현수의 팬카페를 통해 “밴쿠버 2관왕 이정수가 강요에 의해 다른 선수에게 출전을 양보했다”고 주장했다. 3월 19~21일 불가리아 소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이정수는 경기 전 발목 통증으로 개인 종목 출전자 명단에서 빠졌다. 특히 논란이 된 부분은 이정수 대신 출전한 선수가 2009년 국가대표선발전 4위 김성일이 아닌 5위 곽윤기라는 점이다. 이정수와 김성일은 모두 단국대 소속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빙상연맹)은 안씨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이정수와 김성일의 친필 사유서를 공개하면서 “정상적인 엔트리 교체였다”고 해명하며 발 빠르게 대처했다. 그러나 이정수는 불과 1개월 전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세계선수권대회 직후인 27일 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열린 팀 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단순히 경기 출전 일정만 봐도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4년 전 빙상연맹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진상조사위원회까지 만들며 뿌리를 뽑으려 몸부리쳤던 쇼트트랙 파벌싸움이 재현된 걸까? 현장의 목소리는 일단 “아니다”로 좁혀진다. 하지만 “파벌보다 심각한 고질병인 밀어주기 관행은 남아 있다”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쇼트트랙 선수의 아버지는 “쇼트트랙은 종목 특성상 파벌이나 밀어주기 관행이 사라지기 힘들다”며 “한체대와 비(非)한체대 간의 파벌다툼은 많이 사라졌지만 밀어주기 등 악습은 남아 있다. 파벌 문제로 연맹과 한 차례 싸운 적 있는 현수 아버지가 이번에는 관행을 문제로 꺼내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쇼트트랙은 빙판 위 트랙에서 펼치는 기록경기다. 그러나 ‘형제’ 종목인 스피드스케이팅과 달리 기록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어떤 상대와 어떤 레이스를 펼치느냐에 따라 기록의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의 신체 기량뿐 아니라 몸싸움, 작전계획이 중요해 동계스포츠 중 변수가 가장 많은 종목으로도 꼽힌다. 한국이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하고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쇼트트랙은 400m 트랙에서 경기하는 스피드스케이팅과 달리 111.12m의 짧은 타원형 트랙에서 펼쳐진다. 그런 만큼 곡선 구간에서의 자리다툼은 순위로 이어진다. 한국대표팀은 그동안 한 명이 안쪽으로 치고 나가는 사이 다른 한 명이 크게 원을 돌아 대각선으로 치고 들어와 선두를 동시에 제치는 등 팀워크를 바탕으로 유럽과 북미 선수들이 혀를 내두르는 다양한 작전을 선보였다. 그리고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19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2006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직후 쇼트트랙 대표선수 가족과 빙상연맹 관계자들이 공항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 모습.
쇼트트랙계는 한체대와 비한체대가 코치 선임권, 대표팀 선발 문제로 수년간 대립했다. 세계 정상을 휩쓸며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2003년부터 서서히 표출됐고, 2005년 모 선수가 안현수에게 동계유니버시아드 출전 양보를 강요하다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해 결국 폭발했다.
금메달 땄으면 알아서 양보하라?
2006년 토리노대회 직전에는 한체대 소속 안현수가 한체대 출신이 코치인 여자팀에서 훈련을 받고 일부 여자선수는 남자팀에서 훈련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당시 한체대 코치 소속 선수들과 비한체대 코치 선수들은 함께 식사도 하지 않았으며, 계주를 제외하고 각자의 코치에게 작전을 지시받는 상황이었다. 세계선수권대회 직후 파벌다툼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강력한 내부 자정노력이 이뤄졌고, 일부 인사가 빙상연맹을 떠나기도 했다. 코치 선임 및 선수 선발의 공정성을 위해 외국인 심판을 영입하기도 했다. 그래서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올림픽 메달 따기보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이정수 선수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포기 강요’ 논란이 일자 일부에서는 “올림픽도 끝났는데 세계선수권 성적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성적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이 대회 개인종합에서 우승하면 국가대표 선발전 면제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쇼트트랙 내부에는 2005년 안현수 폭행사건처럼 “금메달을 땄으면 알아서 양보하라”는 식의 관행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또 다른 쇼트트랙 선수의 아버지는 “예전에는 국제대회에서 페이스메이커를 하며 에이스의 우승을 도운 선수를 국가대표로 뽑아주고자 대표선수 선발 방침을 바꾼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금메달을 함께 만들었던 관행이 남아 있어 큰 경기에서 우승하면 다음 대회는 양보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정수 본인과 가족은 이번 논란에 직접적인 반박이나 문제 제기를 피하고 있다. 그러나 체육계에서는 부상 선수가 논란에 대비해 사유서까지 제출해야 하는 쇼트트랙계의 상호 불신에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다. 4년 전 상처가 컸던 만큼 빙상연맹 내부에서도 ‘이번 기회에 모든 의혹을 확실히 밝히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안씨의 문제 제기에 빙상연맹 관계자는 “파벌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 정상적인 엔트리 교체였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빙상 종목이 좋은 성적을 거둔 뒤 이런 일이 생겨 아쉬움이 크다. 모든 부분을 떳떳이 공개하겠다”고 했다. 빙상연맹은 팀 선수권대회가 모두 끝난 3월 29일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엔트리와 관련해 제기된 문제의 사실 규명을 위해 대한체육회에서 감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