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이 3월 26일 백상예술대상 TV예능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대부분 성공한 프로그램은 여기서 관련 이슈를 마친다. 이미 대중은 즐길 만큼 즐겼고, 그 공로를 치하받으며 무대 뒤로 사라진다. 하지만 ‘지붕킥’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백상예술대상 수상이 곁가지 이슈로 붙으면서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3월 19일 방영된 마지막 회 후폭풍 탓이다. ‘지붕킥’ 마지막 회에서 극 중심인물인 세경(신세경 분)은 지훈(최다니엘 분)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이후 둘은 빗길 교통사고로 죽는다. 사실상 시트콤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예상 밖 결말이다.
이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거셌다. 마지막 회가 끝나자마자 ‘지붕킥’ 홈페이지는 불이 났다. 3월 31일 현재까지 1만4000여 건의 글이 올라왔다. 대부분 예상과 다른 결말에 분노하는 내용. “MBC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아내자”는 제안부터 “일상이 힘든데 ‘지붕킥’ 탓에 자살충동이 일게 됐다”는 협박까지 다양하다. 방송이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도통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전형적 내러티브에 대한 집착
이 같은 ‘예상치 못한 결말’ 후폭풍은 사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중은 본래 정형적 내러티브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여기서 벗어나면 낯설어하는 게 아니라 분노한다. 소비자 우롱이라 여기기 때문.
예는 많다. 홍콩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아비정전’ 사건이 대표적이다. 1990년 12월 국내 개봉된 ‘아비정전’은 당시 분노에 찬 관객들의 항의 탓에 입장료 환불소동까지 있었다. 홍콩 누아르 영화인 줄 알고 극장을 찾았는데 예술영화에 가까워 탐탁지 않았던 터에 ‘아리송’하게 결말이 나자 분노가 폭발했다. 2005년 ‘오픈 워터’ 사건도 있다. 대구지역 멀티플렉스에서 저예산 해양 스릴러 영화 ‘오픈 워터’를 보고 나온 30여 명의 관객이 “무슨 영화가 상어 한 마리와 사람 두 명밖에 안 나오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던 것. 그중 일부는 입장료를 환불받았다.
물론 ‘지붕킥’ 사건을 ‘아비정전’ ‘오픈 워터’ 등과 단순 대입해볼 일은 아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유료 미디어이기 때문. 관객은 시간과 공간을 투자한 유료 소비자로서의 인식이 뚜렷하다. 즉 힘들여 극장까지 가서 돈을 내고 입장료를 사서 본 영화가 자신의 기대를 현격히 배반했을 경우, 그런 분노가 폭발할 수도 있다(물론 성숙한 문화시민의 자세는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TV 드라마나 시트콤은 무료 미디어다. TV만 켜면 볼 수 있다. 그리 투자하는 게 많지 않다. 그만큼 콘텐츠의 만족도가 떨어지더라도 별일 없이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난리법석일까. 이는 조금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 등장으로 인한 ‘쌍방향 시대’의 특성으로 보는 게 옳다. 이른바 ‘인터랙티브(interactive) 드라마’가 일반화한 시점이기에 벌어진 현상이다.
과거에도 ‘예상치 못한 드라마 결말’은 늘 존재했다. 김수현 작가의 1987년 작품 ‘사랑과 야망’은 등장인물 간 갈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끝났다. 주인공 박태준(고 남성훈 분)이 아내 김미자(차화연 분)의 따귀를 때리며 끝났다. 당시로서 파격적이었던 이 결말은 신문 기사에 비중 있게 다뤄졌지만, 그렇다고 MBC에 집단 항의전화가 왔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장동건과 김미숙이 출연한 1998년 작품 ‘사랑’은 이야기가 중간에 산으로 간 드라마였다. 본래 한참 연상인 김미숙과 풋풋한 장동건 사이 연애를 그릴 예정이었으나 시청률이 너무 저조하자, 김미숙을 ‘죽여버리고’ 대신 비슷한 연배의 최지우를 투입해 드라마 자체를 틀어버렸다. 그럼에도 시청자 항의는 거세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2000년 이후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드라마 1회분이 끝나자마자 드라마 홈페이지는 물론 각종 블로그, 카페 등에 시청소감이 줄을 잇게 됐다. 항의전화나 엽서 등을 통한 적극적 반발을 하지 않더라도, 소감 피력만으로 충분히 여론 조성이 가능해졌다. 그러자 방송사 측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시청자 반응이 좋지 않은 연기자는 역할을 크게 축소하고, 갈등관계가 진부하다는 반응이 나오면 플롯을 선회하기도 했다.
머릿속에 오래 남으려는 방법?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TV 드라마가 ‘제작진과 시청자가 함께 만드는’ 형식으로 변화했다. 사전제작이 아닌 동시제작을 하는 한국 드라마 환경이 낳은 기현상이다. 이런 제작 형태를 지지하는 입장도 있다. 한류 드라마의 핵 ‘겨울연가’를 연출한 윤석호 PD는 2006년 드라마 ‘봄의 왈츠’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NHK 관계자 등은 한국 드라마의 강점을 시청자와의 피드백이라고 본다. 20~30%를 만들어 던져놓고 시청자의 느낌을 받아들이는 제작 시스템이 맞지 않나 싶다”고 소견을 밝혔다.
이에 드라마 제작사들은 일말의 거부감도 없이 시청자 의견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기획 의도를 틀어버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TV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권리의식’도 높아졌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드라마에 대해선 인터넷 서명운동까지 벌이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결국 ‘지붕킥’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지붕킥’ 김병욱 PD는 이전에도 히트 시트콤을 다수 만들었고, 매번 비슷한 전개방식을 보여줬다. 다소 심심한 초반부를 지나면 중반부에선 박장대소의 코미디를 선보였다. 그러다 끝에 가선 갑자기 뒤통수치듯 비극적인 결말을 내밀었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모두 그랬다. 흥미로운 것은 매번 같은 패턴으로 뒤통수를 치는데도, 그에 따르는 후폭풍은 작품의 연도순으로 증폭됐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청자의 ‘권리의식’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편 이 같은 ‘뒤통수’ 결말이 점차 일반화하는 현상도 함께 지목해볼 만하다. 근래 들어 이런 현상이 특히 심해졌다. SBS ‘쩐의 전쟁’, KBS2 ‘아이리스’ 등에서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끝나 허망감을 안겨줬다면, SBS ‘하늘이시여’ ‘천만번 사랑해’ 등은 극의 전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해피엔딩’으로 끝나 또 다른 기이함을 선사했다. SBS ‘파리의 연인’ 결말은 한국 드라마사에 길이 남을 ‘허무’ 엔딩으로 악명이 높다.
이에 대해선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그간 시청자 눈치 보느라 애먹었던 제작진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 아닐까 싶다. 시청자와 알력싸움, 두뇌게임 하느라 기진맥진해진 제작진에게 ‘어떻게 만들어도 시청률은 나오게 돼 있고 후속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회가 시청자를 크게 한번 배신해도 좋은 해방구가 아니겠느냐는 것.
그러나 더 설득력 있는 이유는 드라마 생명력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TV 드라마란 오랫동안 ‘남는’ 장르가 아니다. 그런데 비상식적 결말은 논란을 부른다. 논란은 드라마의 생명력을 연장시킨다. 좋은 기억이든 아니든 머릿속에 오래 남기 때문. 즉 ‘지붕킥’ 마지막 회에서 ‘하이킥’ 한번 맞았다고 그리 소란 떨 일은 아니다. 시청자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거셌다. 마지막 회가 끝나자마자 ‘지붕킥’ 홈페이지는 불이 났다. 3월 31일 현재까지 1만4000여 건의 글이 올라왔다. 대부분 예상과 다른 결말에 분노하는 내용. “MBC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아내자”는 제안부터 “일상이 힘든데 ‘지붕킥’ 탓에 자살충동이 일게 됐다”는 협박까지 다양하다. 방송이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도통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전형적 내러티브에 대한 집착
이 같은 ‘예상치 못한 결말’ 후폭풍은 사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중은 본래 정형적 내러티브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여기서 벗어나면 낯설어하는 게 아니라 분노한다. 소비자 우롱이라 여기기 때문.
예는 많다. 홍콩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아비정전’ 사건이 대표적이다. 1990년 12월 국내 개봉된 ‘아비정전’은 당시 분노에 찬 관객들의 항의 탓에 입장료 환불소동까지 있었다. 홍콩 누아르 영화인 줄 알고 극장을 찾았는데 예술영화에 가까워 탐탁지 않았던 터에 ‘아리송’하게 결말이 나자 분노가 폭발했다. 2005년 ‘오픈 워터’ 사건도 있다. 대구지역 멀티플렉스에서 저예산 해양 스릴러 영화 ‘오픈 워터’를 보고 나온 30여 명의 관객이 “무슨 영화가 상어 한 마리와 사람 두 명밖에 안 나오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던 것. 그중 일부는 입장료를 환불받았다.
물론 ‘지붕킥’ 사건을 ‘아비정전’ ‘오픈 워터’ 등과 단순 대입해볼 일은 아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유료 미디어이기 때문. 관객은 시간과 공간을 투자한 유료 소비자로서의 인식이 뚜렷하다. 즉 힘들여 극장까지 가서 돈을 내고 입장료를 사서 본 영화가 자신의 기대를 현격히 배반했을 경우, 그런 분노가 폭발할 수도 있다(물론 성숙한 문화시민의 자세는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TV 드라마나 시트콤은 무료 미디어다. TV만 켜면 볼 수 있다. 그리 투자하는 게 많지 않다. 그만큼 콘텐츠의 만족도가 떨어지더라도 별일 없이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난리법석일까. 이는 조금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 등장으로 인한 ‘쌍방향 시대’의 특성으로 보는 게 옳다. 이른바 ‘인터랙티브(interactive) 드라마’가 일반화한 시점이기에 벌어진 현상이다.
과거에도 ‘예상치 못한 드라마 결말’은 늘 존재했다. 김수현 작가의 1987년 작품 ‘사랑과 야망’은 등장인물 간 갈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끝났다. 주인공 박태준(고 남성훈 분)이 아내 김미자(차화연 분)의 따귀를 때리며 끝났다. 당시로서 파격적이었던 이 결말은 신문 기사에 비중 있게 다뤄졌지만, 그렇다고 MBC에 집단 항의전화가 왔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장동건과 김미숙이 출연한 1998년 작품 ‘사랑’은 이야기가 중간에 산으로 간 드라마였다. 본래 한참 연상인 김미숙과 풋풋한 장동건 사이 연애를 그릴 예정이었으나 시청률이 너무 저조하자, 김미숙을 ‘죽여버리고’ 대신 비슷한 연배의 최지우를 투입해 드라마 자체를 틀어버렸다. 그럼에도 시청자 항의는 거세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2000년 이후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드라마 1회분이 끝나자마자 드라마 홈페이지는 물론 각종 블로그, 카페 등에 시청소감이 줄을 잇게 됐다. 항의전화나 엽서 등을 통한 적극적 반발을 하지 않더라도, 소감 피력만으로 충분히 여론 조성이 가능해졌다. 그러자 방송사 측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시청자 반응이 좋지 않은 연기자는 역할을 크게 축소하고, 갈등관계가 진부하다는 반응이 나오면 플롯을 선회하기도 했다.
머릿속에 오래 남으려는 방법?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TV 드라마가 ‘제작진과 시청자가 함께 만드는’ 형식으로 변화했다. 사전제작이 아닌 동시제작을 하는 한국 드라마 환경이 낳은 기현상이다. 이런 제작 형태를 지지하는 입장도 있다. 한류 드라마의 핵 ‘겨울연가’를 연출한 윤석호 PD는 2006년 드라마 ‘봄의 왈츠’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NHK 관계자 등은 한국 드라마의 강점을 시청자와의 피드백이라고 본다. 20~30%를 만들어 던져놓고 시청자의 느낌을 받아들이는 제작 시스템이 맞지 않나 싶다”고 소견을 밝혔다.
이에 드라마 제작사들은 일말의 거부감도 없이 시청자 의견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기획 의도를 틀어버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TV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권리의식’도 높아졌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드라마에 대해선 인터넷 서명운동까지 벌이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결국 ‘지붕킥’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지붕킥’ 김병욱 PD는 이전에도 히트 시트콤을 다수 만들었고, 매번 비슷한 전개방식을 보여줬다. 다소 심심한 초반부를 지나면 중반부에선 박장대소의 코미디를 선보였다. 그러다 끝에 가선 갑자기 뒤통수치듯 비극적인 결말을 내밀었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모두 그랬다. 흥미로운 것은 매번 같은 패턴으로 뒤통수를 치는데도, 그에 따르는 후폭풍은 작품의 연도순으로 증폭됐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청자의 ‘권리의식’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편 이 같은 ‘뒤통수’ 결말이 점차 일반화하는 현상도 함께 지목해볼 만하다. 근래 들어 이런 현상이 특히 심해졌다. SBS ‘쩐의 전쟁’, KBS2 ‘아이리스’ 등에서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끝나 허망감을 안겨줬다면, SBS ‘하늘이시여’ ‘천만번 사랑해’ 등은 극의 전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해피엔딩’으로 끝나 또 다른 기이함을 선사했다. SBS ‘파리의 연인’ 결말은 한국 드라마사에 길이 남을 ‘허무’ 엔딩으로 악명이 높다.
이에 대해선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그간 시청자 눈치 보느라 애먹었던 제작진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 아닐까 싶다. 시청자와 알력싸움, 두뇌게임 하느라 기진맥진해진 제작진에게 ‘어떻게 만들어도 시청률은 나오게 돼 있고 후속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회가 시청자를 크게 한번 배신해도 좋은 해방구가 아니겠느냐는 것.
그러나 더 설득력 있는 이유는 드라마 생명력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TV 드라마란 오랫동안 ‘남는’ 장르가 아니다. 그런데 비상식적 결말은 논란을 부른다. 논란은 드라마의 생명력을 연장시킨다. 좋은 기억이든 아니든 머릿속에 오래 남기 때문. 즉 ‘지붕킥’ 마지막 회에서 ‘하이킥’ 한번 맞았다고 그리 소란 떨 일은 아니다. 시청자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