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오가는 얘기를 들으며 한 성범죄자가 필기를 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최상섭 국립법무병원 원장이 성범죄자들에게 물었다.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반부터 한 시간 동안 그곳에 수감된 성범죄자 전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인지행동치료시간.(국립법무병원은 공주치료감호소라 부르던 곳으로 3월 23일 현재 소아기호증 10명, 성도착증 3명, 관음증·인격장애 2명, 정신분열증 7명, 알코올 의존·중독증 3명, 노출증 1명, 반사회적 인격장애 1명, 정신지체 1명, 충동조절장애 1명 등 총 29명의 성범죄자가 수감돼 있다. 이들은 강간치상, 강간, 상해, 성폭력, 특가법위반, 특수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최고 20년형과 함께 치료감호를 선고받았다.) 보통은 수간호사만 강의실 한쪽에 앉아 있지만 이날은 ‘주간동아’ 기자가 동석했다. 강의실 밖에는 서무과장, 카메라 기자, 간호사들도 있었다. 잠시 후 반장이 침묵을 깼다.
“저희가 성의 개념, 성 인지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닐까요?”
맨 앞자리에 앉은 남자가 긴장해 떠는가 싶더니 이내 생각을 말한다. 본격적인 토론이다.
“학생들이 생각 없이 막 (행동)하기 때문에 성범죄가 일어납니다!”
“맞아요, 개념이 없는데 너무 빨리 (성을) 알게 되고, 컴퓨터 보고 모방하는 사건이 많거든요. 그런데 교육을 받질 못하니 나가서 또 해도 상관없겠구나 생각해서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거예요.”
이쯤 해서 최 원장이 대화 내용을 정리했다.
“유해환경의 탓이 크네요. ‘야동’이나 야한 책이 범람하니까요. 여러분 중에도 그런 것을 접하고 (모방한) 그런 경우가 있죠. 성범죄의 원인에 대해 개인적 체험을 얘기해주실 분?”
맨 뒷자리의 눈빛 몽롱한 20대 남자가 힘없이 손을 들더니 어눌한 말투로 얘기를 이어갔다.
“어려서 강…간을 당했거나 부모 성관계 장면을 봐서 재범을 하는 게 아닐…까요?”
이 말에 최 원장이 “여러분은 가해자이기 전에 피해자네요!”라고 하자 여기저기 웅성웅성. 그러나 가운데 앞자리에 앉은 흰머리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언성을 높였다.
“저도 어려서 그런 걸 봤지만 그래서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아니에요. 부부끼리 강간한 게 아니니까….”
이후 재소자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성범죄 때문에 교도소를 20년 넘게 들락거렸지만 한 번도 교육받은 적이 없어요. 김길태도 8년 (징역) 살면서 (교육을) 받지 않았으니, 나와서도 (일을) 저지르는 것 아니겠어요?”
“저는 판사님께 치료받은 뒤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려서 오게 됐고, 이제야 성이란 것이 상대방과의 (상호) 존중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최 원장이 교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박수를 쳤다.
“바~로 그거예요! 상-호-존-중!”
심각한 표정의 20대 남자가 손을 들고 말하는데 흰머리 남자가 이번에도 말허리를 잘라 분위기가 흐트러졌다. 최 원장이 20대 남자에게 다시 말할 기회를 주자 “일단은 마음이 중요한 거죠”라며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다음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국립법무병원 인성치료재활센터에 수감 중인 성범죄자들은 “그간 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저는 (성기) 왜소증이 있었는데 교육을 받고는 성적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그러자 갑자기 반론이 튀어나왔다.
“○○형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전 인지행동치료 받았다고 해서 크게 반성하진 않아요.”
잠시 정적. 최 원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수치심은 스스로 느껴야지, 지적해서 느끼게 하는 건 아니에요.”
다시 질문이 이어졌다.
“아니 원장님, 교육으로 그렇게 (느끼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가만히 응시하던 원장의 차분한 말.
“여기에 온 것 자체가 수치스럽지 않아요? 그건 교육이나 훈련을 받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느껴야죠! 그런데도 느끼지 못한다면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명에 열을 올리던 원장이 화이트보드에 용어를 적었다.
“인지행동치료는 무엇으로 한다고요? 말, 말은 생각. 이걸 표현해서 뭘 느꼈어요? 감정! 말, 생각, 감정이 성범죄의 원인이에요. 수치심을 못 느꼈다고요? 감정이 너무 메말라서 그런 거예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원장님의 그런 설명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병동으로 돌아가서 오늘 나눈 얘기를 생각하며 반성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어느새 종료 시간.
“배우고 듣고 하다 보면 마음으로 느끼게 되니까 세월이 흘러야 해요. 세월이 뭐라고요? 그래, 약이라고 했지요! 어려서 생긴 잠재의식을 교정한다는 게 쉽나요? 쉽지가 않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얘기조차 못했을 겁니다. 이제는 이런 느낌을 표현하고 알게 됐다는 게 중요해요. 여러분이 여기 온 지 몇 개월 됐나요? 9개월? 바로 치료가 되나요, 어디. 여러분이 이분처럼 정직한 말을 한다는 게 중요해요. 수치심을 못 느꼈다지만 3년, 5년 지내다 보면 결국 완치될 수 있어요. 자, 높은 곳을!”
공책을 접던 이들이 몸짓을 정돈하고 일동 우렁차게. “향하여!”
정부는 2008년 치료감호법을 개정해 성범죄자도 다른 정신질환자처럼 치료감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비정상적 성범죄자는 정신과 전문의의 감정과 법원의 판결에 따라 지난해 1월 설치된 국립법무병원 내 인성치료재활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감호는 형 집행기간에 포함된다. 그러나 치료감호 ‘기간’이 선고되지 않기 때문에 6개월마다 ‘치료감호심의위원회’를 통해 완치 통보를 받지 못하면 최장 15년까지 치료가 장기화될 수 있다.
치료 기회 늘려 얼마나 효과 낼지 의문
문제는 출소시기에 수감자의 정신상태가 불안해져도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성범죄자는 헌법에 따라 치료감호를 먼저 받은 뒤 교도소에서 징역 형기를 마치면 ‘자동 출소’한다. 반면 호주는 우리와 반대로 교도소 형기를 마친 뒤 정신치료를 진행하고, 미국에서는 정신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성범죄자의 출소를 금한다. 허찬희 국립법무병원 의료부장은 한국의 한계상황을 고려해 “무엇보다 미국처럼 교도소 파트와 치료감호소 파트의 공조체계부터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에 그치지 말고 치료 기회를 늘려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세월이 약’인 지금과 같은 치료가 얼마나 효과를 낼지 의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의 공포가 커지는 만큼 범죄자에 대한 인내심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