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이 한창이다. ‘압도적 2강’으로 손꼽히는 FC서울과 전북현대모터스가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클래식에 속한 각 구단의 순위 싸움이 치열하다. 어느 해보다 뜨거운 순위 경쟁이 펼쳐지고 있지만 팬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 같지는 않다.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A매치에만 팬들의 관심이 몰리고, 정작 프로축구 관람석은 썰렁하다는 데 있다. 클래식 흥행카드는 서울과 수원삼성블루윙즈가 벌이는 ‘슈퍼매치’와 전북-서울전뿐이고, 나머지 경기는 팬들의 큰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여기에는 프로구단답지 않은 미숙한 운영과 허술한 선수단 구성 등으로 ‘클래식 클래스’를 떨어뜨리는 일부 도·시민구단의 존재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K리그 클래식(12개 팀)과 챌린지(2부 리그·11개 팀) 총 23개 팀 가운데 도·시민구단은 12개에 이른다. 대부분 2002 한일월드컵 이후 갑작스레 일어난 축구붐에 힘입어 창단됐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재정 압박, 성적 부진 등으로 도·시민구단은 K리그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2016 K리그 클래식에서 양 극단의 길을 걷고 있는 시민구단 성남FC와 인천유나이티드FC 사례를 통해 클래식 도·시민구단이 나아갈 바를 짚어본다.
성남FC가 잘나가는 이유
성남은 올 클래식에서 손꼽히는 ‘핫(hot)한 구단’ 중 하나다. 3라운드 직후 깜짝 1위에 올랐던 성남은 8라운드까지 4승3무1패, 승점 15로 서울(승점 19), 전북(승점 16)에 이어 당당히 3위에 올라 있다.성남시는 2013년 10월 성남일화천마축구단을 인수해 성남을 재창단했다. 성남은 2014년 중반까지 큰 시행착오를 겪었다. 박종환 감독에 이어 이상윤 대행, 이영진 대행 등 3명이 지휘봉을 잡는 등 혼란을 겪다 그해 9월 김학범 감독이 부임한 이후 새로운 팀으로 탈바꿈했다. 그해 말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해 시민구단으로는 처음으로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16강에 오르는 쾌거도 달성했다. 관중도 눈에 띄게 늘었다. 2014년에 비해 지난해 평균 관중은 50.8% 늘었고, 유료관중 비율은 227%나 증가했다. 올해 홈 개막전에는 지난해보다 약 2.5배나 많은 1만4504명이 입장했다. 홈 최다관중 신기록이었다.
시민구단 성남이 쟁쟁한 기업구단 틈바구니 속에서 클래식의 중심축으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는 성남시장인 이재명 구단주의 힘이 컸다. 축구 문외한에 가까웠던 그는 구단주를 맡은 뒤 “‘축빠’가 됐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축구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현장을 찾아 선수단과 함께 호흡했고, 구단에 대한 투자도 확대했다. 2014년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그는 자신의 임기 내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장기 프로젝트인 ‘성남형 유소년 축구 공정 시스템’을 운영하며 구단의 미래 성장동력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치인답게 팬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언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수원FC 구단주인 염태영 수원시장과 함께 만들어낸 ‘깃발라시코’가 대표적이다. 김학범 감독은 “구단주가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선수들은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구단주는 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직접 현장을 챙기기도 하지만, 선수단 구성 등에 대해서는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 시민구단의 특성상 프런트에는 ‘자기 사람’을 영입했어도 선수 구성만큼은 절대적으로 감독의 선택을 존중하고 있다. “이 구단주가 ‘만약 나 이재명이가 선수 영입이나 기용을 부탁하더라도 절대 들어주지 말라’고 했다”는 게 김학범 감독의 설명이다.
인천유나이티드FC의 끝없는 추락
2003년 창단한 인천은 한때 ‘시민구단의 롤모델’로 불린 팀이다. 2004년 K리그에 참가해 이듬해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돌풍을 일으켰고, 젊고 유능한 선수들을 배출해 ‘스타 산실’로도 불렸다.그러나 누적된 적자와 지방자치단체장의 무관심이 겹치면서 수년째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좋지 않은 모습까지 보여줬다. 전지훈련 경비 부정 사용에서 시작해 선수들의 임금 및 수당 체불 문제로 법정 소송을 당하는 등 연이어 문제가 불거졌다.
팀 성적도 밑바닥이다. 무기력함이 느껴질 정도다. 12개 구단 중 유일하게 1승도 거두지 못하고 3무5패, 승점 3으로 최하위에 처져 있다. 김도훈 감독이 사령탑으로 데뷔한 지난해만 해도 ‘늑대축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끈질긴 모습을 보였지만 올해는 시즌 초부터 불거진 추문 탓인지, 팀 성적 역시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렇게하면 꼴찌는 ‘떼어놓은 당상’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2014년 6월 새롭게 구단주가 된 유정복 인천시장은 취임 초기 제법 관심을 가지고 팀을 지켜봤다. 전문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팀 개혁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여러 문제점이 돌출된 요즘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축구단이 인천시민의 자긍심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임 초 다짐은 온데간데없다. 일각에선 유 구단주의 관망이 의도적인 ‘축구단 고사작전’ 아니냐는 의문을 내비칠 정도다. 구단과 인천시청을 통해 수차례 유 구단주의 의중을 확인하려고 시도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것이 인천의 현주소다.
2014년 FA컵 결승 때 이재명 구단주는 현장에서 선수들을 독려했고, 성남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5년 같은 대회에서 인천도 결승에 올랐지만 유정복 구단주는 다른 일정을 이유로 현장을 찾지 않았고, 팀은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축구를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 차이를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성남과 인천의 예에서 보듯, 각 도·시민구단에게 중요한 것은 책임자인 지방자치단체장의 관심과 의지다. 축구단을 시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존재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전임자들이 만들어놓은 ‘세금 먹는 도둑’으로 치부하느냐에 따라 그 구단의 운명이 결정된다. 시민의 혈세를 쏟아부으면서 자긍심은커녕 시민의 마음을 불쾌하게 한다면 시민구단이 존립할 이유가 없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