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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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또 하나의 스펙이 된 NCS

난이도 조절 실패로 적용 포기 대학 속출…특성화사업 지원금에 ‘울며 겨자 먹기’식 도입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5-10 11: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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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 4년차에 접어든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y Standards·NCS)이 교육계의 질타를 받고 있다. 학습 난이도 및 분량 조절 실패, 같은 내용 중복, 교수법 획일화 등으로 교육 선진화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999년 자격제도 규제개혁 과제 일환으로 시작된 NCS는 2002년부터 표준개발에 들어갔다. 이후 2013년 ‘능력중심사회를 위한 여건조성’의 핵심 국정과제로 확정돼 지난해 12월까지 총 847개 세분류 개발을 완료했다. 이 제도의 목표는 ‘실무 중심 인재 배양’이지만, 지나치게 정량평가에만 치우쳐 학생들의 인성, 잠재 능력을 외면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NCS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직무능력 평가지표로, 산업 현장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력 양성에 목표를 둔다. 일부 특성화고와 전문대는 NCS를 수업에 반영하고 있고, 올해 230여 개 공기업이 채용 전형에서 NCS에 기반을 둔 시험문제를 출제할 예정이다.



    가시적 성과만 강요, 기본 소양에는 소홀

    NCS는 국내 노동시장의 거의 모든 직무를 24개 분야(사업관리, 경영·회계·사무, 건설 등)로 정리하고 이를 다시 중·소·세 분류로 나눴다. 예를 들어 ‘음식서비스’에 식음료조리서비스(중분류)-식음료서비스(소분류)-바리스타(세분류) 등으로 구체화돼 있는 것이다.

    교육부가 2014년부터 시행하는 ‘전문대학특성화육성사업’은 전문대에 NCS 기반 교육과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업에 선정된 전문대는 총 77개로, 이들 학교는 NCS 중심으로 교육을 운용 중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는 NCS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전문대 교수들은 “기존 교육에 NCS를 무리하게 반영해 교육이 엉망이 됐다”고 성토하고 있다.



    경기지역 전문대 기계과 A(49)교수는 “NCS의 ‘모듈’이 교육 실정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모듈이란 NCS를 수업에 반영하기 위한 학습 교재다. A교수의 주장은 이 교재가 학습 내용의 중요도를 반영하지 못하는 데다 획일화된 교육 방식을 강요한다는 것. 그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가르칠 내용을 수업 1회 만에 끝내게 하고,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내용을 여러 번에 걸쳐 가르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 현장에는 같은 중공업 분야라도 기업마다 중시하는 직무와 기술이 다르다. 그럴수록 기본 소양을 잘 다져야 하는데 NCS 교육은 이를 무시한 채 똑같은 수업과 학생 평가 방식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일부 교수가 NCS 활용에 회의를 느껴 결국 NCS 교육을 포기하는 양상도 생기고 있다. 경기지역 다른 전문대에서 NCS 활용계획에 참여한 B(47)교수는 “NCS 활용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우리 학교에서 NCS 수행기준을 철저히 따라 수업하는 교수는 적다. 일단 성급하게 제도를 도입했는데 교육 현실과 괴리가 크니 최소한의 형식적 실행만 한다”고 전했다.

    한편 NCS 모듈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한 전문대 비서과 C(40·여)교수는 “모듈 때문에 학습 내용이 중복돼 수업시간을 낭비하고, 지나치게 쉽거나 어려운 내용이 혼재돼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비서과 전공에서는 ‘비서’와 ‘사무행정’ 세분류를 모두 가르치는데, 이 두 가지 분류에 ‘문서작성·문서관리’ 모듈이 각각 들어간다. 즉 동일한 ‘문서’ 내용을 중복해 지도하는 것이다. 교수 처지에서는 수업시간이 낭비되고 학생들은 ‘전에 배운 내용을 왜 반복하느냐’는 생각에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 교수는 “‘전자게시판 활용’에는 인터넷에 글 올리기, 남의 글에 ‘좋아요’ 누르기 등 수업에서 배울 필요가 없는 내용이 나오는가 하면, 전문대 수준에서는 난도가 높은 ‘국제업무지원’도 포함돼 있다”며 “교육계와 실무 현장의 연관성이 크게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NCS 기준에 따르면 교수는 학생 평가서에 ‘이 학생이 수업 후 어떤 직무능력을 갖게 됐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C교수는 “NCS가 가시적이고 정량적인 성과만 유도하니 정작 대학에서 키워야 할 인성, 잠재적 역량 등에는 소홀해 교육의 본질을 잃었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교수마다 일괄적인 지도방식을 적용해 ‘수업 선택권이 사라졌다’는 반응이다. 대학생 D(21)씨는 “예전엔 학생들끼리 여러 교수의 수업방식을 비교했는데, NCS가 확대된 후로는 교수들의 수업방식이 점점 비슷해진다. 내게 어느 교수의 수업이 더 적합한지 따질 필요가 없게 됐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구직자들 “스펙 부담만 늘어”

    교육부는 3월 15일 NCS를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 전면 적용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NCS가 학벌 중심이 아닌 능력 중심 사회를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같은 달 28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능력중심채용 실천선언 대국민 선포식’에 참여한 경제단체, 기업 관계자들은 “NCS를 활용하고 스펙 중심의 서류전형을 지양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구직자들은 “NCS는 또 하나의 스펙”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취업 준비와 관련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NCS의 실체가 뭐냐’는 질문부터 ‘출제 예제가 없는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느냐’ ‘시험 부담이 또 늘었다’ 등 한탄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럼에도 대학은 계속해서 NCS 교육을 밀어붙이고 있다. 교육부가 각 대학에 배당하는 지원금 때문이다. 한 전문대 교수는 “NCS를 도입해야 전문대학특성화육성사업에 선정되고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할 수밖에 없다”며 “어느 학교는 2013년 NCS의 미완성 초안을 몰래 입수해 NCS 도입을 서둘렀다고 들었다. 그만큼 대학 간 지원금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와 학생들의 성토에도 한국산업인력공단은 명확한 개선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향후 NCS 개발 및 개선 시 전문대 교수 등 다양한 인력을 통해 교육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가겠다”고만 밝혔다.

    직무능력 전문가는 “NCS 교육이 빨리 보완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주섭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현행 NCS 교육과정은 세부 내용 등에서 수정될 부분이 많다. 아직은 도입 초기라 혼란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점차 보완되면 ‘산업 현장 직무능력 개발’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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