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가는 곳에 실 간다고 했던가. 20대 총선에서 38석을 확보, 원내 제3당 지위를 확보한 국민의당이 박지원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하자, 박 원내대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비서실장에 김명진 전 청와대 행정관(사진)을 임명했다.
박지원 원내대표-김명진 원내대표 비서실장 콤비는 이번이 세 번째. 2010년 5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박 원내대표가 1년간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을 때, 그리고 2012년 5월부터 그해 12월까지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역임했을 때도 비서실장은 어김없이 김 실장이었다. 더욱이 그는 박 원내대표 외에도 2013년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 비서실장을 지냈고, 2014년 전병헌 원내대표 재임 때는 원내대표 특보를 지내는 등 원내사령탑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원내대표를 계속 보좌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박지원과 김명진. 두 사람의 정치적 인연은 1997년 대통령선거(대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원내대표가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실 담당 특보를, 김 실장은 총재 특보단 간사를 역임했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총재가 당선한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인수위 행정관으로 호흡을 맞췄고,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에는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국내언론 행정관으로 활동해 박 원내대표가 가는 곳에는 김 비서실장이 그림자처럼 함께했다.
2003년 노무현 정권 출범 초 대북송금 특검으로 한동안 영어(囹圄)의 몸이 됐던 박 의원의 옥바라지를 도맡아 했던 이도 김 실장이다. 박 원내대표가 영원한 DJ의 비서실장이라면, 김 실장은 영원한 박지원의 비서실장인 셈. 박 원내대표의 영원한 비서실장인 김명진 실장을 5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만났다.
박 대표의 실용노선 뒷받침할 것
▼ 박지원 원내대표가 세 번째로 원내대표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이젠 원내대표 전문 비서실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배지 달고 내 이름 걸고 정치하고 싶었는데. 운명인지 다시 비서를 하게 됐다.”
김 실장은 20대 총선 국민의당 후보로 광주 동남갑에 공천 신청을 했으나 낙천해 본선 진출 기회를 잡지 못했다.
“처음엔 ‘또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국민의당 등장으로 원내 3당 체제가 된 만큼 원내 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원내대표 비서실장은 십자로와 같은 곳이다. 당과 국회 사이는 물론,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에서 인사와 입법, 정책들이 서로 소통하는 길목과도 같은 자리다. 20대 국회가 일하는 국회, 생산적 국회로 거듭나는 데 일조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더 열심히 일하려 한다.”
▼ 원내 3당 체제가 갖는 의미가 뭐라고 보나.
“양당체제는 대치적 의존관계라 할 수 있다. 양당이 정책에 대해 서로 강력하게 반대해도 2등은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양당체제에서는 합리적이고 균형 잡은 절충을 생각하기보다 당리당략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상대방의 주장을 반대하는 태도만 취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3당 체제는 서로 합리적인 최적의 안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정당이 반대해도 다른 두 정당이 협상해 타협하면 ‘왕따’가 될 수 있다. 국민의당이 리딩을 잘하면 일하는 국회, 생산적 국회, 민생을 먼저 챙기는 국회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 국민의당이 잘하면 양당을 리딩할 수 있겠지만 자칫하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한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할 수도 있을 텐데.
“분명한 것은 국민의당은 야당이라는 점이다. 생명이나 인권 문제처럼 원칙과 관련된 것은 단호한 태도를 견지해야겠지만, 원칙과 관계없는 사안은 과감하게 어느 당과도 타협하고 절충할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갖는 게 필요하다. 국민만 보고 국리민복에 해당하는 일이라면 어느 정당과도 타협하고 절충할 수 있다는 게 박 원내대표의 실사구시적 실용노선이다.”
중앙부처 협력관들이 제일 먼저 반겨
▼ 의석수는 양당에 비해 적지만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해 국민의당의 위상이 남다를 것 같다.“국민의당 소속 의원들이 모든 상임위원회(상임위)에 2명 이상 배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임위 활동에서도 국민의당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원내 컨트롤타워로서 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국민의당에서는 초선의원도 간사를 해야 한다. 우리 당 소속 의원 38명은 각 분야에서 출중한 역량을 갖춘 분들이다. 이분들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뒷받침하겠다. 그뿐 아니라 원내대표와 의원 간 소통의 매개 노릇도 충실히 하겠다.”
김 실장의 국회 컴백을 가장 반긴 이는 국회에 파견 나온 중앙부처 협력관들이라고 한다. 한때 ‘연락관’으로 불리기도 한 이들은 김 실장이 노력해 ‘협력관’으로 이름이 통일됐다고.
“과거 원내대표 비서실장을 할 때 중앙부처에서 국회에 파견 나온 협력관들과 함께 행정부와 입법부 간 가교 노릇을 잘하자는 뜻에서 ‘가교회’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점심을 같이 했다. 앞으로 다시 가교회를 활성화해 입법부와 행정부 간 정책 관련 오해를 줄여 국회에서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실무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이다.”
중앙부처 협력관들이 김 실장을 선호하는 것은 2013년 정부조직 개편 과정과 무관치 않다. “당시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는데, 막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정부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려 하자 각 부처에서는 야당에 부탁해 부처 업무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때 방송통신위원회에 있던 방송심의권을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려던 것을 막았고, 교육부의 산학협력 업무 역시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가져가려던 것을 그대로 두게 했다. 현 정부의 골격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