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도쿄는 비슷한 인구수가 사는 도시이지만 미쉐린 레스토랑 수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미쉐린가이드 도쿄 2023’에 의하면 도쿄에는 미쉐린 가이드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 12곳, 2스타는 39곳, 1스타는 149곳으로 총 200곳이다. 반면 서울은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 안성재 셰프가 운영하는 ‘모수’가 유일한데 이마저도 휴업 중이다. 서울에서 미쉐린가이드 2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8곳이며, 1스타는 25곳이다. 도쿄의 6분의 1인 셈이다. 한국이 일본보다 서양 문물을 늦게 받아들여 근대화가 늦었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 안목이 뒤떨어진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인은 잘 모를 수 있지만 서울은 ‘힙’한 도시다. 서울이 매력적인 이유는 서울 시민이 힙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이를 먼저 알아봤고, 우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 과정에서 일본 역할이 있었다. 과거부터 한국 문화가 세계로 전파될 때 독특한 패턴이 관찰됐다. 일본이라는 ‘문화적 중개자’를 거쳐 서구에 알려지는 경로를 밟아온 것이다. 조선시대 달항아리부터 현대 K팝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이 만들면 일본은 발견하고 세계는 감탄한다.
일본인의 안목은 이전부터 서양에 영향을 미쳤다. 영국 도예가 버나드 리치와 일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관계에서도 이것이 드러난다. 야나기와 리치는 예술적 동반자였다. 1910년대 시라카바(白樺) 동인을 중심으로 일본 미술계는 서양 예술을 수용했다. 이때 야나기는 동서양 예술의 가교 역할을 했다. 덕분에 리치 역시 동양 도자기의 미학을 깊이 이해하게 됐고, 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리치는 영국 도예의 혁신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동양 기법 및 미학을 영국 전통과 결합해 새로운 도예 양식을 창조했다.
조선시대 양반은 청나라의 화려하고 정교한 도자기를 선호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인은 조선의 막사발과 달항아리 등에서 더 큰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살짝 비뚤어진 모양과 완벽하지 않은 곡선, 군더더기 없는 순백의 빛깔 같은 ‘불완전함’에서 오히려 멋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와비사비(侘寂)’라는 개념이 있다. 불완전하고 소박한 것에서 깊은 아름다움을 찾는 미의식이다. 야나기를 비롯한 일본인은 달항아리에서 와비사비의 정수를 발견했고 이는 리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1935년 리치가 서울을 방문해 구입한 달항아리는 현재 영국 대영박물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작가의 예술성을 강조하는 스튜디오 포터리 운동이 영국에서 나타났을 때도 조선백자의 역할이 컸다.
1943년 리치는 달항아리를 동료 도예가 루시 리에게 선물했다. 이 달항아리는 오랫동안 리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으며 그의 작품 세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말 사진작가 스노든 백작이 촬영한 리의 초상에서 달항아리는 멋지게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 말 또 다른 문화적 달항아리가 일본을 홀렸다. 바로 K-드라마와 K팝이다. “이런 퍼포먼스는 본 적이 없다! J-팝과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다.” 일본 음악 프로듀서가 한국 아이돌을 보고 흔히 하는 평가다. J-팝이 친근함과 귀여움을 추구했다면, K팝은 완벽한 퍼포먼스와 강렬한 카리스마를 추구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음악시장은 칼군무와 끊임없는 장르적 실험에서 K팝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한국 대중음악 기획자 역시 일본을 이용했다. 방탄소년단(BTS) 한 프로듀서는 “일본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이자 테스트 베드(test bed·시험장)였다”고 말했다.
일본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단순히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를 서구 문화코드에 맞게 바꾸는 ‘문화적 번역가’ 역할을 해왔다. 한국 문화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서구인이 이해하기 쉽게 재해석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관계는 잘 짜인 퍼즐 같다. 한국이 혁신적인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내면 일본은 그 가치를 세계에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패턴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무도회장에서 서로 다른 스텝을 밟으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댄서들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일까. 임윤찬의 K-클래식일까, 한강의 K-문학일까. 지금도 한국 어느 곳에선 새로운 문화적 혁신이 일어나고 있고, 새로운 예술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본은 언제나처럼 이를 발견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이제는 일본이라는 중개자가 필요 없을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중동과 남미가 지대한 관심을 갖고 한국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 수요자가 먼저 판단한 다음 소비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남의 눈에 의지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일을 졸업할 때도 됐다. 문화적 사대주의를 넘어서고, 스스로를 보는 눈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을 바로 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럴 때 한국은 계속해서 새로운 문화적 달항아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영국에 상륙한 달항아리
방탄소년단(BTS) RM이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를 안고 있다. [RM 인스타그램 계정 캡처]
일본인의 안목은 이전부터 서양에 영향을 미쳤다. 영국 도예가 버나드 리치와 일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관계에서도 이것이 드러난다. 야나기와 리치는 예술적 동반자였다. 1910년대 시라카바(白樺) 동인을 중심으로 일본 미술계는 서양 예술을 수용했다. 이때 야나기는 동서양 예술의 가교 역할을 했다. 덕분에 리치 역시 동양 도자기의 미학을 깊이 이해하게 됐고, 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리치는 영국 도예의 혁신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동양 기법 및 미학을 영국 전통과 결합해 새로운 도예 양식을 창조했다.
조선시대 양반은 청나라의 화려하고 정교한 도자기를 선호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인은 조선의 막사발과 달항아리 등에서 더 큰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살짝 비뚤어진 모양과 완벽하지 않은 곡선, 군더더기 없는 순백의 빛깔 같은 ‘불완전함’에서 오히려 멋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와비사비(侘寂)’라는 개념이 있다. 불완전하고 소박한 것에서 깊은 아름다움을 찾는 미의식이다. 야나기를 비롯한 일본인은 달항아리에서 와비사비의 정수를 발견했고 이는 리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1935년 리치가 서울을 방문해 구입한 달항아리는 현재 영국 대영박물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작가의 예술성을 강조하는 스튜디오 포터리 운동이 영국에서 나타났을 때도 조선백자의 역할이 컸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명 도예가 루시 리. [GETTYIMAGES]
1990년대 말 또 다른 문화적 달항아리가 일본을 홀렸다. 바로 K-드라마와 K팝이다. “이런 퍼포먼스는 본 적이 없다! J-팝과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다.” 일본 음악 프로듀서가 한국 아이돌을 보고 흔히 하는 평가다. J-팝이 친근함과 귀여움을 추구했다면, K팝은 완벽한 퍼포먼스와 강렬한 카리스마를 추구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음악시장은 칼군무와 끊임없는 장르적 실험에서 K팝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한국 대중음악 기획자 역시 일본을 이용했다. 방탄소년단(BTS) 한 프로듀서는 “일본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이자 테스트 베드(test bed·시험장)였다”고 말했다.
K팝은 미국 팝의 변형
중국 문물은 한국을 경유해 일본으로 갔고, 서양 문물은 일본을 통해 한국으로 왔다. 이때 수입된 문화들은 한국에서 그 가능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새롭게 재탄생했다. 실제로 한국은 중국보다 유교적이고, 유럽보다 기독교 신앙심이 더 뜨거운 나라다. 마찬가지로 미국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수입한 대중문화 역시 한국화된 후 일본을 경유해 다시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K팝도 미국 팝의 변형으로 볼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세계인의 강력한 호응을 받는 것인지 모른다.
일본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단순히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를 서구 문화코드에 맞게 바꾸는 ‘문화적 번역가’ 역할을 해왔다. 한국 문화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서구인이 이해하기 쉽게 재해석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관계는 잘 짜인 퍼즐 같다. 한국이 혁신적인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내면 일본은 그 가치를 세계에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패턴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무도회장에서 서로 다른 스텝을 밟으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댄서들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일까. 임윤찬의 K-클래식일까, 한강의 K-문학일까. 지금도 한국 어느 곳에선 새로운 문화적 혁신이 일어나고 있고, 새로운 예술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본은 언제나처럼 이를 발견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이제는 일본이라는 중개자가 필요 없을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중동과 남미가 지대한 관심을 갖고 한국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 수요자가 먼저 판단한 다음 소비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남의 눈에 의지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일을 졸업할 때도 됐다. 문화적 사대주의를 넘어서고, 스스로를 보는 눈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을 바로 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럴 때 한국은 계속해서 새로운 문화적 달항아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