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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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도심 서핑’ 천국… 청계천 서핑을 꿈꿔본다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독일·이탈리아, 도시에 인공 파도 조성해 서핑 명소로 가꿔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4-08-1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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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공항에 도착한 때는 늦은 오후였다.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을 기념하는 클라라 비크 거리에서 숙박하며 ‘박물관 섬’을 관람했다. 유럽에 올 때마다 이곳 건물들은 천장이 참 높다고 느꼈다. 천장이 높은 건물에서 살면 창의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고대 유물과 그리스 도자기를 구경하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미술관을 단체 관람 중이던 독일 초등학생들을 만났다. 하리보 젤리를 한 개 얻어먹었는데 아이들의 순수함에 미소가 지어졌다.

    독일 뮌헨 아이스바흐강에서는 인공 파도 덕분에 연중 내내 서핑을 즐길 수 있다. [GettyImages]

    독일 뮌헨 아이스바흐강에서는 인공 파도 덕분에 연중 내내 서핑을 즐길 수 있다. [GettyImages]

    도시 풍경 변화시키는 서핑

    하리보는 독일의 강력한 중소기업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s)’ 가운데 하나다. 히든 챔피언은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정의한 개념으로, 세계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지만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강력한 중소기업을 의미한다. 히든 챔피언의 존재는 글로벌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 중심의 성장 구조 탓에 히든 챔피언 수가 경제 규모에 비해 적은 편이다. 이처럼 여행 중에 마주친 작은 것들 속에도 경제가 숨어 있다.

    박물관에서 미술책과 에코백을 구입한 뒤 잠깐 빈 시간을 이용해 크네세벡 거리 주변에 있는 뷔헤르보겐(Bu‥cherbogen) 예술 전문 책방에서 작곡가 존 케이지의 책을 샀다. 유럽에 올 때마다 이런 전문 가게들의 존재가 참 부러웠다. 밤에 우연히 클럽을 갔는데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길 안쪽에 입구가 숨어 있어 찾기 어려웠지만 들어가 보니 규모가 상당했다.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춤이 커다란 방마다 펼쳐지고 있어 좋은 구경을 했다.

    하노버 풍경은 이탈리아와 무척 달랐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경험은 하천 주변 식당에 갔다가 서핑을 하는 사람들을 목격한 일이었다. 매우 신기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물이 급격히 흐르게 만들어 바다가 먼 내륙도시에서도 서핑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곧바로 “서울에도 이 같은 시설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장마철 청계천이나 세검정에서 서핑을 할 수 있을까. 이왕이면 서핑과 스케이트보드를 같은 곳에서 즐기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동해안이나 강원 양양에 가지 않아도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행했던 독일인들과 대화해보니 유럽에는 이런 장소가 곳곳에 있다고 한다. 한 동행인은 “인공 파도가 도심 거주자에게 서핑 기회를 제공한다”면서 “이는 래피드 서핑(rapid surfing)으로 불리며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 풍경을 변모시키고 새로운 서핑 커뮤니티도 창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에 따르면 하노버 구시가지에 위치한 라이네벨레(Leinewelle)는 현지 어업협회와 오랜 법정 싸움 끝에 서퍼들이 파도를 ‘건설’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고 한다. 이들은 “도시 서핑은 건강하고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촉진하고, 이런 장소를 사회적 허브로 변모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바이에른주 주도인 뮌헨은 래피드 서핑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졌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아이스바흐강은 인공 파도 덕분에 1970년대 초반부터 서핑 명소였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래피드 서핑 장소로, 연중 내내 서핑이 가능하다. 덕분에 매년 서퍼 수천 명이 이곳을 찾는다. 뮌헨에 머무르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서퍼 수만 약 3500명에 달한다고 한다. 도시 전역에서 서핑 보드를 들거나 자전거에 싣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인공 파도가 창출하는 경제효과

    이탈리아 밀라노 역시 유럽에서 가장 넓은 인공 급류를 자랑하는 도시다. 특히 인공 파도 조성은 큰 공학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해안에 접근하기 어려운 북부 이탈리아 서퍼들이 모이면서 창출된 경제효과도 상당하다. 서핑 학교와 서핑 용품점이 도시 곳곳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접근성은 물론, 밀라노에서 서핑을 즐길 수 있다는 참신함 덕분에 초보자와 숙련된 서퍼 모두에게 인기 있는 장소가 됐다.

    이른 아침 에어프랑스를 이용해 파리 샤를드골공항으로 돌아왔다. 짧은 기간에 최대한 많이 체험하기 위한 무리한 일정이었다. 현지 사정에 밝은 지인이 투어 가이드를 자청해 다행이었다. 한국인으로서 2023년 플랑 부문에서 1등상인 ‘플랑 그랑프리’를 수상한 서용상 파티시에의 파리 6구에 있는 빵집 ‘밀레앙(Mille & Un)’을 방문해 프랑을 먹었다. 근처 봉 마르셰 백화점에는 다양한 식자재가 가득했다. 올리브오일이 관심을 끌어 종류별로 카트에 담았다. 말린 버섯, 소금, 홍차, 초콜릿을 구입하며 ‘최후의 쇼핑’을 마쳤다. 와인은 고민만 하다가 사지 못했다. 온갖 냄새로 가득한 고통의 광역급행철도(RER)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왔고, 12시간 비행을 끝으로 유럽 여행을 마쳤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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