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 대테러팀 문희지 중사는 ‘특전사 중의 특전사’ 707대대의 거친 훈련을 무리 없이 소화한다.
1999년 9월 동티모르에 파병될 평화유지군 명단이 발표된 후 한 장교가 사령관을 찾아가 항의했다. 정보학교 영어 교관을 지냈을 만큼 탁월한 영어 실력과 정보능력을 인정받은 자신이 탈락한 것을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령관의 대답은 그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당신은 여자잖아.”
단 한 마디였다.
지금도 육군에서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 장교는 당시 자신이 느낀 감정을 ‘참담함’이라고 표현했다. 아무리 뛰어난 장교라도 ‘여성’이라는 성별을 극복할 수 없던 시절, 수많은 여군들은 좌절감을 느끼며 돌아서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1990년대 후반 사관학교에서 여성을 받아들이면서부터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존재했던 많은 차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2002년부터 전방 소총부대에 여군 소대장이 배치됐고, 올 3월에는 4명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탄생했다. 5월 해군사관학교(이하 해사)를 졸업한 여성 소위들이 전투함에 승함함으로써 드디어 여군들은 육해공군 전투의 최일선에서 ‘남군(男軍)’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과연 이 ‘첫 여성 군인’들은 부대 안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여성과 군인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군대의 오랜 신화에 눌려 좌절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것들을 편견으로 바꿔가며 새 길을 열고 있을까. 이제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진짜 군인이 된 이들을 찾아 나섰다.
지휘는 힘으로 누르는 게 아니야
육군 25사단에 배치된 손지영(위)·마화순 소위는 20여명의 소대원을 지휘하는 소대장이다.
사실 이들은 지금까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대해 탁월한 성적을 올린 점,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든 과정을 이겨낸 ‘오기’ 덕분에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아왔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군인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색안경 쓴 시선을 함께 받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모범생’ 여군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된 지휘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동료가 아닌 거친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의심한다.
망망대해에서 수백명의 부하를 지휘해야 하는 전투 함정의 장교 안효주 소위도 “장교로 임관한 후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지도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지휘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대해서는 단호히 선을 긋는다. ‘남자같이 돼야 남자를 지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란다.
“지휘관의 카리스마는 부하를 싸움으로 제압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 부하가 힘으로 해보자고 달려들 수 없도록 하는 능력, 장교에 대한 믿음으로 저절로 복종하도록 만드는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관학교 성적은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주어집니다.”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함정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3500t급 ‘광개토대왕함’에 배치된 첫 여군 장교인 김정미(왼쪽)·안효주 소위(오른쪽 사진).
사병들이 여성 소위의 명령을 듣지 않고 반항하는 내용의 드라마가 방송된 후 육군 25사단 소대장인 마화순 소위는 부하들에게 “너희가 나한테 저러면 어떻게 되겠냐?”고 묻기도 했다. 사병들의 대답은 “큰일납니다”였다.
물론 이들이 이처럼 당당한 지휘관으로 활동하는 데는 군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자신감이 큰 몫을 한다. 김소위와 안소위는 지금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팔굽혀펴기 57회’로(해사 57기인 이들의 생도 시절부터의 습관이다) 잠을 떨친다. 육사 하급생 시절 뛰는 게 제일 싫었다는 25사단의 손지영 소위도 이제는 가장 자신 있는 것이 구보라고 말할 정도가 됐다. 여군들은 부하에게 기합을 주면서 자기보다 팔굽혀펴기를 잘하는 사병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전투병과에 투입된 여군들의 체력은 기대 이상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전투기나 헬기 조종, 특전사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여군들은 ‘인간 병기’라는 말이 무색치 않을 만큼 ‘강하다’.
여성 조종사들의 전투대대 적응력은 남성 조종사에게 떨어지지 않는 수준. 공군에서 실시한 서바이벌 게임 체험훈련 때 최후의 생존자 4명 가운데 한 명은 여조종사였다. 이들은 모두 하체 근력 측정기구의 최대치인 75kg을 거뜬히 들고, 상체 근력은 남성 조종사의 60~70%에 육박한다. 비행시 착용하는 20kg이 넘는 조끼를 혼자 척척 입고 벗는 모습을 보면 남성 장교들도 혀를 내두른다.
특전사 여군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1분에 윗몸일으키기 80회, 팔굽혀펴기는 40회 이상 할 수 있어야 체력 검정에 통과한다. 5km 구보에서도 여자 요원보다 늦게 달리는 남특전사 요원이 나올 정도로 남군에 뒤지지 않는다. 특전사 고공강하팀장을 맡고 있는 김미란 중사는 특공무술과 태권도뿐 아니라 스킨스쿠버 등 각종 레포츠에도 능하다.
나보다 팔굽혀펴기 잘하는 사병 나와봐!
박지원(왼쪽) 중위는 공대공 전투기 F-5를, 편보라 중위는 공대지 전투기 A-37을 조종한다(오른쪽).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군대생활에서는 축구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항상 공을 찬 남자들에 비해 기술이 떨어져 열심히 해도 잘 안 될 때 좀 속상합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피아노를 전공했던 전투기 조종사 편보라 중위의 말이다. 사실 평범한 여학생으로 살던 이들이 공놀이에 익숙한 남자들을 제치고 골을 성공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러나 주위의 평가는 이와 좀 다르다. 이들의 ‘전투력’과 ‘열정’을 설명하면서 공군부대의 한 남자 장교는 바지를 걷어 올렸다. 얼마 전 열린 축구경기에서 자신의 전담 마크맨이었던 전투기 조종사 박지원 중위에게 걷어차인 흔적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빗속에서 축구를 할 때도 선배, 동료 조종사들과의 어깨 싸움을 피하는 걸 못 봤습니다. 걷어차고, 차이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기회가 오면 직접 헤딩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보통 여자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 박지원(왼쪽)·편보라 중위는 근력측정기구의 최대치인 75㎏을 거뜬히 들 만큼 강한 체력의 소유자들이다.
사실 여군들을 괴롭히는 것은 체력이나 임무가 아니라 그들을 굳이 ‘여자’로 바라보려는 주위의 시선이다. 여전히 군복을 입고 나서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빤히 바라보는 시민들이 있고, 부대 내에는 우연한 실수를 빌미로 ‘여자는 저래서 안 된다니까’라고 판단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군대 축구 이야기 장난이 아니군
행동 하나 말 한 마디까지 더 조심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첫 여군’으로서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일지 모른다. “우리가 잘하지 못하면 능력 있는 후배들이 조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이를 악물게 된다”는 박중위의 고백처럼 말이다.
그래서 여군들은 부정할 수 없는 ‘실력’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 네 명의 모든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해 ‘과연 여자도 전투기를 몰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자료로 축적하고 있는 공군의 평가자료에 따르면 여군들은 ‘이·착륙을 포함한 기본 비행 절차 수행 능력에서 남성 조종사에 비해 오히려 월등’하다.
7명에 불과한 여성 육군 헬기 조종사 중 한 명인 박은진 대위는 항공학교 수료시 동기생들 가운데 2등을 차지했고, 손지영 소위와 마화순 소위는 부대 내 사격대회에서 나란히 1, 2위를 기록했다.
‘생리적인 차이 때문에 여성은 군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기존의 가설도 이들의 도전으로 상당 부분 무너지고 있다. 여군들은 생리 기간에도 컨디션에 따라 비행에 참가하고, 특전사 요원들도 평소와 같이 훈련한다. 남군들과 마찬가지로 한 달에 한 번 월차를 쓸 뿐이다.
남자와 같은 텐트서 동침? 군인이니까
이들은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일상생활에서도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자이기에 주어지는 특별대우와 보호가 결국은 자신들에게 족쇄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야간 당직근무를 혼자 수행하고, 남군들과 같은 수영장에서 훈련한다. 육군 202 항공대대의 박대위는 부대 내 화장실도 남군들과 같이 사용한다. 처음에는 박대위가 화장실에 들어서면 남군들이 시선 둘 데를 찾지 못한 채 당황스러워했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칸에 들어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고 한다. 화장실 안에서 박대위가 “야, 그쪽은 물 잘 내려가냐? 이건 왜 물이 안 나오지?” 하면 옆칸 사병이 “오늘 화장실 공사 때문에 물이 안 나올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외부훈련에서도 그는 ‘특별대우’를 거부한다. 남군들과 똑같은 작업을 수행하고 밤이면 같은 텐트 안에서 잠드는 것이다. 첫 훈련을 나갔을 때 부대장은 박대위에게 혼자 텐트 하나를 쓸 수 있도록 배려했었다. 그러나 그는 동료 2명이 지내는 텐트 안에서 함께 잠을 잤다. “다른 군인들은 다 세 명이 한 텐트에서 자는데 왜 나만 특별대우를 받느냐. 나도 똑같이 지내겠다”라고 한 것이다. 이런 실랑이가 몇 차례 반복된 후 이제는 대대에서도 박대위가 남군들과 한 텐트에서 같이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다.
나흘에 걸친 취재기간 동안 여군들은 자신을 남군들과 비교하려는 시선을 가장 불편해했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돋보이지 않는, 평범한 군인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들은 분명 여성이고, 그렇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과 하게 되는 다짐이 없지 않다.
마소위는 “외국에서는 여군들에게 ‘만약 적에게 성폭행을 당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한다고 한다. 나 자신도 가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는 말을 꺼냈다.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많이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순간일지라도 저는 제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소대장은 1선의 전투지휘자고, 자기 소대원의 운명을 책임져야 합니다. 내 자신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제 소대원들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저는 반드시 살아남을 겁니다.”
마소위의 결연한 말은 이들이 끊임없이 말했던 “나는 여군이 아니라 ‘군인’이다”라는 다짐의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느끼게 했다.
여군들은 자신들에게 덧씌워진 ‘열혈 여성’의 이미지를 그만 벗고 싶어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남자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군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동해의 구축함에서, 원주의 비행장에서, 전방부대 곳곳에서 이미 ‘군인’으로서의 당당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제 그들을 ‘여군’의 틀 안에 가두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말자. 이 유능하고 씩씩한 ‘군인’들을 믿는 순간, 당신은 오늘 밤 단잠을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