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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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 길들이기 … 그들만의 국정감사?

증인 대상자 선정부터 밀고 당기기 흥정 … 4黨 체제 첫대결 올해는 확 바뀔까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3-09-24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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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벤트 … 길들이기 …  그들만의 국정감사?
    정치권이 시끄럽다. 신당 출현으로 정치권이 재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정치인들은 심란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격변의 와중에도 정기국회는 열렸고 국정감사(이하 국감)도 시작됐다. 그런데 국감을 앞두고 정치권 한편에서는 또 다른 ‘흥정’이 한창이다. 반드시 국감 증언대에 불러내겠다는 국회의원과 절대 국감 증언대에 설 수 없다는 증인 대상자 간의 밀고 당기기가 치열했던 것. 국회 정무위원회(위원장 이재창 의원·이하 정무위)가 그 대표적 격전장이었다.

    정무위의 주요 수감기관은 국무총리실과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 금융감독원,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등. 금융기관과 대기업을 규제하는 금감위와 공정위를 수감기관으로 둔 까닭에 정무위 국감에는 그해 문제가 됐던 금융기관과 대기업 사장이 증인석에 불려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해마다 추석을 전후해 정무위원들을 상대로 국감 출석을 피해보려는 기업과 금융권의 로비가 치열하게 벌어지곤 했다.

    추석 전후 기업과 금융권 치열한 로비 벌어져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추석연휴 직전 정무위의 ‘2003년 국정감사 일반증인 및 참고인 명단’작성을 전후해 사장이나 주요 CEO(최고경영자)가 증인 혹은 참고인으로 국감에 불려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측의 치열한 로비가 벌어졌다.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실 주변에서는 구체적인 로비의 흔적도 감지되고 있다.

    카드사 부실과 관련, 사장이 국감 증인으로 신청된 한 카드사 관계자는 최근 정무위 의원들을 만나 한동안 푸념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카드업계야말로 살인적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가장 잘나가는 배우를 모델로 써 수십억원을 들여 광고하면 뭐 하나. 사장이 국회 국감에 불려 나오는 순간, 그 몇 배에 해당하는 손실을 입게 된다”며 ‘선처’를 호소했다고 한다. 분식회계와 관련해 그룹회장이 증인으로 신청된 대기업의 한 관계자도 의원들을 만나 “이번 사건으로 이미 회장님은 검찰조사도 받았고 금감위의 징계도 받았다. 만약 국감 증언대에 서게 된다면 그 충격으로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며 하소연 했다고 한다.



    오너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취득 및 처분 과정의 불법 여부가 정무위 국감의 쟁점이 된 한 대형 건설사는 회사의 임원진을 총동원, 정무위 소속 의원을 맨투맨 식으로 맡아 오너의 증인 출석을 막기 위한 설득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벤트 … 길들이기 …  그들만의 국정감사?

    2000년 국정감사 당시 현대비자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정무위 소속 의원들. 박주천, 임진출, 박주선, 이훈평 의원(왼쪽부터).

    이런 진통을 겪은 끝에 9월 중순 정무위는 108명에 이르는 이번 국감 증인 및 참고인 명단을 작성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온라인복권 도입과정과 로또복권 적법성 여부 및 통합복권법 제정과 관련, 조우현 인천국제공사 사장을 비롯한 9명을 증인과 참고인으로 신청했다. 이밖에 북한산 관통터널 공사와 관련, 서울고속도로 안욱남 대표 등 4명을, 그리고 이기명씨의 용인땅 도로개설과 관련, 이씨의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민원제기 및 처리 과정을 조사하기 위해 이기명씨 형제 등 18명을 증인으로 불렀다. 또 카드업계 부실을 따진다는 이유로 삼성카드 LG카드 외환카드 등 카드사 사장들도 대거 호출했다.

    개별 기업의 불법행위를 따지기 위한 증인신청도 있었다. SK 분식회계와 관련, 손길승 회장과 김승유 하나은행장, 신상훈 신한은행장도 각각 증인으로 불려 나올 전망이다. 또 신주인수권부사채 취득과정에서의 위법성을 따진다는 명목으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전환사채 처분과 관련, 이재현 CJ 회장도 증인 명단에 올랐다.

    이밖에 휴대전화 발신자 표시서비스 요금과 관련, SK텔레콤과 KTF, LG텔레콤 사장도 각각 증인으로 신청됐다. 또 대형할인점의 불공정거래행위 조사를 위해 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마트의 대표이사, 사장도 정무위의 호출을 받았다.

    이렇게 선정한 증인은 모두 93명, 여기에 참고인 15명을 포함하면 국감 증언대에 서야 할 사람은 모두 108명. 이번 국감에도 정무위는 대규모 증인, 참고인을 불러내는 상임위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20일간의 국감 기간 동안 100명이 넘는 증인, 참고인을 상대로 국감을 벌이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정무위는 9월17일 전체회의를 열어 증인 축소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자신들이 신청한 증인을 철회하거나 변경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구체적으로 민주당 이훈평 의원은 “현대 자금수수 의혹으로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상임위 동료 의원들에게 누를 끼친 만큼 내가 제출한 증인신청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의원이 신청한 증인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이재현 CJ 회장 등 6명. 이의원에 이어 역시 같은 혐의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한나라당 임진출 의원도 “그럼 나도 (증인 신청을) 양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장태완 의원은 국가보훈처 수익사업과 관련, 증인으로 신청했던 이상훈 재향군인회 회장 대신 재향군인회 사무총장을 부르겠다며 조정안을 냈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의 증인 신청 철회에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미 신청한 증인을 줄일 수 없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이훈평 의원이 증인 신청을 철회한 정몽규 회장의 경우 한나라당 쪽에서 역으로 증인 신청을 함으로써 정회장은 국감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날 회의는 끝내 의결정족수마저 채우지 못해 아무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정무위 국감은 대규모 증인을 상대로 치밀한 검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치러지게 됐다.

    올해 정무위의 국감 증인 신청 과정은 지난해와 달랐다. 과거 여야는 각각 증인 예상자의 명단을 작성한 뒤 이를 서로 교환해, 간사간 조율을 거친 뒤 최종 증인 및 참고인 명단을 완성했다.

    지난해 국감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작성해 내놓은 증인 예상자만 230명이었다. 반면 여당인 민주당이 내놓은 증인 예상자는 없었다. 신청자가 너무 많다는 판단에 따라 여야 간사 협상을 했지만 좀처럼 그 수를 줄일 수가 없었다. 당시 한나라당 간사였던 김부겸 의원은 민주당 간사에게 “증인 신청을 한 의원들이 고집을 꺾지 않아 줄이기가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 증인 신청을 철회하려면 신청자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추석연휴가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230명에 이르던 한나라당의 증인 신청자가 30명으로 줄어든 것. 여기에 민주당이 신청한 14명을 더해 지난해 정무위 국감 증인은 44명으로 확정됐다.

    “정보력 있고 능력 있는 기업들 이미 사전작업”

    증인 축소 과정이 석연찮았던 만큼 잡음도 적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증인 신청자 명단에는 증인을 신청한 의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이 명단이 외부로 흘러나가면서 기업들이 해당 의원을 향해 치열한 로비를 벌였다는 것. 한 소식통은 “지난해에는 대통령선거가 있어 정치자금 수요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 물증은 없지만 한나라당의 증인 축소 과정에 분명 정치자금과 관련한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국회 로비업무를 맡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도 “그걸(정치자금 수수) 꼭 말로 해야 하나. 우리 회사 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의원 외에 2~3명의 의원으로부터 정치자금 제공을 요구하는 언질을 받았으나 영수증 처리가 가능한 자금만 지원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야 의원 4명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2000년 현대비자금 수수사건도 정무위 국감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들이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이훈평 박주선 의원(이상 민주당)과 박주천 임진출 의원(이상 한나라당) 모두가 정무위원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해 국감 직후 끝내 증인 출석을 거부한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 대한 검찰 고발이 이유 없이 미뤄지자 정가에는 “수억원대의 현대 비자금이 정무위 의원에게 뿌려졌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런 잡음을 막기 위해 올해는 정무위원 스스로 꼭 불러야 할 사람을 적어낸 뒤 공개적으로 증인 선정 작업을 벌여 의혹의 근거를 없애기로 했다. 하지만 올해 증인 선정 과정에도 몇 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무위 소속 여당의원의 한 보좌관은 “공개적으로 취합된 증인명단에만 108명의 이름이 올랐다면 그 몇 배의 인물이 대상자로 거론됐다는 얘기 아니냐. 정보력 있고 로비 능력 있는 기업이라면 명단에 오르기 전 이미 사전작업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무위의 관할 범위를 벗어나 ‘돈 될 만한’ 대기업이라면 무조건 증인으로 부르고 보는 관행도 여전하다. 그 대표적 증인이 표문수 SK텔레콤 사장과 남용 LG텔레콤 사장, 그리고 남중수 KTF 사장. 정무위 소속 한 초선 의원은 “휴대전화 발신자표시서비스 요금제가 이동통신 3사 사장을 부른 이유다. 그런데 업체 스스로 요금을 내리겠다고 발표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다룰 사안인데 정무위가 나서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동통신업체들 사이에서는 몇몇 의원의 실명까지 거론되면서 “증인 신청을 앞두고 은밀한 요구가 있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업계 한 인사는 “현대비자금 사건에서 보듯 정치권으로 돈이 나가면 3년을 못 넘기고 사단이 난다. 과거 군부정권 때는 대통령 임기 동안은 안전했지만 지금은 임기 중에라도 꼬투리가 잡힌다. 따라서 국감에 나가 매를 맞으면 맞았지 뒷거래는 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1988년 국감이 부활됐다. 국감 부활은 민주주의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국감은 일부 상임위 중심으로 현역 의원들이 한몫 잡는 이벤트로, 혹은 정당 후원금 모금을 위한 기업 길들이기 현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정무위는 그 대표적 상임위로 눈총을 받고 있다. 과연 올해 국감에서 정무위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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