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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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업들, 한국 시장은 사부님

선진기술 전 세계 파일럿 마켓 역할 톡톡 … e베이 한국 자회사 옥션 벤치마킹 열 올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09-24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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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기업들, 한국 시장은 사부님

    2001년 1월 e베이는 1500억원을 들여 옥션을 인수·합병했다.

    주만스차트는 세계적 인터넷기업인 미국 e베이 본사와 26개국 e베이 계열사에서 사용하는 마케팅 분석 툴의 이름이다. 주만스차트를 고안한 주인공은 e베이에 인수·합병된 인터넷경매업체 옥션의 박주만 상무. 개인이 만든 문서양식에 ‘주만스차트’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것은 올 초 박상무의 보고를 받던 e베이 맥 휘트먼 사장이 A4 용지 1장으로 ‘모든 게 설명되는’ 박상무의 보고서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휘트먼 사장이 사용을 독려하면서 주만스차트는 현재 e베이에서 만드는 문서의 ‘표준’이 됐다.

    e베이가 거꾸로 옥션을 통해 배우고 있다. 아마존이나 야후보다 수익성이 더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세계적 인터넷기업 e베이가 한국의 자회사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e베이가 경영난에 시달리던 옥션을 1500억원을 투자해 인수·합병한 것은 옥션이라는 회사 자체보다는 옥션이 확보한 회원수가 탐났기 때문이다.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서 옥션의 회원을 흡수하고 싶었던 것. 당초 의도대로 옥션의 회원을 자사의 글로벌 마켓플레이스에 편입한 뒤 한국 인터넷기업의 수준을 과소평가했던 e베이 경영진은 옥션을 한 수 아래로 여기고 ‘지도’에 나섰지만 ‘인터넷 강국 코리아’의 ‘실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북아 IT 허브 로드맵’ 마련 시급

    e베이 경영진은 미국을 비롯해 e베이가 진출한 나라들과 달리 옥션에서 중고품보다 신상품 거래가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는 점에 깜짝 놀랐다. 이동전화를 개통해 판매하고 컴퓨터를 조립해 판매하는 등 ‘못 파는 게 없는’ 한국의 경매 시장에 ‘당황한’ e베이는 곧바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조사하기 시작했고, 결국 옥션의 신상품 위주의 경매모델을 벤치마킹해 신상품 관련 마케팅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사실 과거 e베이의 홈페이지는 한국 소비자들의 눈엔 ‘촌스러움’ 그 자체였다. 문장 위주의 유저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UI)를 갖고 있던 e베이와는 달리 옥션은 화려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UI를 갖고 있었다.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옥션의 상품 사진과 다양한 그래픽 기능에 e베이 관계자들이 넋을 빼앗긴 것은 불문가지. 옥션의 UI가 e베이 홈페이지의 변화에 영향을 미쳐 현재 e베이의 홈페이지는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이밖에도 e베이는 옥션의 매매보호시스템 운영 노하우와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는 등 ‘한 수 아래라 여겼던’ 자회사의 기술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있다. 옥션의 이재현 사장은 지난 2년 동안의 옥션과 e베이의 변화를 “점진적이고 조용한 동질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옥션의 사례에서 미뤄볼 수 있듯 인터넷ㆍ정보통신 분야의 차세대 전략사업에서 한국은 가늠자 역할을 하는 시장이다.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사용되는 MSN 메신저에 아바타를 끼워 넣어 세계 최초로 유료화에 성공한 MS코리아가 마이크로소프트(MS) 자회사들의 벤치마크가 되고 있고, 휴렛패커드(HP)가 언제 어디서나 문서 사진을 인쇄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프린트` 사업을 한국에서 최초로 시작하는 등 한국은 전 세계 IT(정보기술) 시장의 파일럿 마켓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e베이를 비롯해 MS, HP 등 세계 유수의 IT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한 수 배우고 있는 이유는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한국 IT 시장이 기발하고 실험적이며 한국의 IT기술이 선진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적 IT기업이 이처럼 한국 시장에 ‘광분’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인터넷은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인트라넷’에 머물고 있고, 한국이 세계적 IT서비스 업체를 하나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하루빨리 정부와 IT기업들이 머리를 맞대 ‘동북아 IT 허브 로드맵’을 마련하지 않으면 결국 ‘단물’만 빼앗기게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옥션이 한 수 가르쳐준 e베이의 올 매출액은 20억8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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