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이 정지되면서 계열은행인 부산2저축은행에는 예금을 찾으려는 고객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부산저축은행그룹 부실사태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한 가운데 대검의 한 관계자는 저축은행 불법대출, 대주주의 배임 및 횡령 건에 앞서 VIP 특혜인출 수사에 상당한 진척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도 이런 내용을 확인하며 “·#51931;·#51931;·#51931;, △△△ 등 몇몇 차관급 인사와 교육계 인사, 지역 시의원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며 “그중엔 예금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고, 몇몇 ‘케이스’는 ‘크로스 체킹’을 매우 순조롭게 진행해 (특혜인출의) 일부 정황을 찾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영업정지를 받은 각 저축은행으로부터 영업정지 직후 또는 영업정지 전날 직간접적으로 영업비밀을 통보받은 유력 인사에 대한 검찰의 ‘정조준’ 수사가 매섭게 진행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그룹 영업정지사태 이후 피해 예금주 모임과 일부 언론에서 ‘특혜인출’ 의혹이 일었지만, 유명 인사가 검찰 입에서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 최근 폐지 논란에 휩싸인 대검 중수부가 5월 1일 직접 나서서 저축은행 영업정지 전날 돈을 인출한 예금주의 전수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힌 것도 자신감이 있어서다.
검찰은 당초 영업정지 전날 은행직원에게 개별 연락을 받고 마감시간 직후(금융감독원이 영업정지 사실을 저축은행에 통보한 시점) 지점에서 직접 예금보장한도인 5000만 원 이상을 찾은 VIP 예금주에 주목했다. 또한 검찰은 7개 저축은행 가운데 2월 17일 먼저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과 대전저축은행 2곳에서 5000만 원 이상을 인출한 22개 계좌를 수사선상에 올렸다. 이 계좌에서 빠져나간 금액은 50억 원 정도.
영업정지 전날 인출 모든 계좌 수사
2월 19일 영업정지된 부산2저축은행, 중앙부산상호저축은행, 전주상호저축은행, 보해저축은행 인출에 대해선 판단의 여지를 뒀다. 예금주 대부분이 앞선 두 은행의 영업정지 상황을 접하고 아무런 정보전달 없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예금을 급히 인출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VIP를 특별히 배려했을 가능성은 두 은행 인출 건보다 희박하지 않겠느냐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 저축은행 임직원이 VIP의 인출 요청이 없었는데도 임의로 그들의 예금을 빼낸 정황을 발견하면서 검찰의 시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검찰은 7개 저축은행에서 영업정지 전날 인출한 모든 예금계좌로 수사 범위를 확대했다. 총금액은 약 1077억 원, 계좌 수는 3588개. 부산저축은행에서 영업정지 전날 마감시간 직후 빠져나간 돈은 5000만 원 이하까지 합쳐 모두 92억 원, 대전저축은행은 50억 원이다. 검찰이 이처럼 수사를 확대한 것은 5월 3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며 특혜인출에 진노한 점도 한몫했다.
검찰은 5000만 원 이상 고액 인출자뿐 아니라 그 이하 인출자와 예금주를 상대로 영업정지 사전 인지 여부와 인출 명세를 철저히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재력가들은 물론, 저축은행에 예금계좌를 가진 고위 관료나 정치인은 대부분 위험 방지 차원에서 예금보장한도 이하의 돈을 본인 또는 가족 명의로 분산해놓았기 때문이다. 금융 분야가 전문인 한 검사는 인출 금액과 무관하게 인출 명세를 살펴볼 필요성을 제기했다.
“과거 다른 저축은행 부실사태의 경우를 봐도, 유력 인사는 주로 적은 돈을 여러 계좌에 분산해 예금한다. 특히 저축은행에 예금을 많이 하는 인사들의 재산 공개 내용을 들여다보면, 저축은행 예금을 일정하게 유지하다가 금액이 좀 많다 싶으면 예금을 빼고 다시 계좌를 만드는 경우가 적잖다. 중요한 건 이런 패턴을 해당 은행직원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3만 명에 달하는 7개 저축은행의 예금 피해자 모임인 비상대책위원회도 유력 인사가 포함된 특혜인출자들의 색출과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부에선 국회의원이 VIP 인출에 관련됐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부산저축은행 예금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김옥주 위원장은 “한나라당 의원 3명이 특혜인출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어 당국에 확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차관급·고위법관도 계좌보유 확인
실제 한 언론도 “대검 중수부가 4월 28일 ‘영업정지 전날 부산 초량지점과 화명지점을 찾아 예금을 인출한 VIP 고객들이 영업정지 소식을 모 국회의원이 알려줘 황급히 나왔다고 했다’는 부산저축은행 직원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주간동아’가 2011년 현직 국회의원의 재산 신고 내용을 확인한 결과, 본인 혹은 가족 명의로 7개 저축은행의 계좌를 보유한 의원은 한나라당 A의원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A의원의 경우, 모친이 중앙부산상호저축은행에 1900만 원, 대전상호저축은행에 1600만 원의 예금을 갖고 있다. 부산시의회 의원 중에는 서울, 부산 지역 의원 5명이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중앙부산상호저축은행, 부산2저축은행 계좌를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액수는 1300만 원에서 9300여만 원까지 다양하다. B의원은 본인 명의 2700만 원과 배우자 명의 1억1000만 원을 신고했다.
공직자 상당수도 7개 저축은행 예금계좌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3월 25일 공개된 ‘정부 공직자 정기 재산 변동 사항’에 따르면, 7개 저축은행에 있는 본인 혹은 가족 명의의 예금계좌를 신고한 공직자는 15명에 이른다. 그중엔 현 정부 차관급 인사, 고법 부장판사 이상급 고위직 법관, 교육감 등이 포함됐다. 금감원 모 고위간부의 경우,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계좌에 부모가 5000만 원을 예금한 것으로 신고했다.
검찰의 특혜인출 의혹 수사와는 별개로 저축은행으로부터 영업정지 사실을 미리 통보받고 돈을 찾은 예금주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특혜인출 대가로 은행직원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이 확인된 경우 배임증재 혐의를 적용할 수 있으며, 그 외에는 실질적으로 적용할 법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 뇌물 등 대가를 받지 않고도 특혜인출을 해준 저축은행 직원에 대해선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영업정지 후 저축은행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감독기구의 업무수행을 방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검찰이 제일저축은행 직원의 불법대출 비리에 대해서도 수사에 나서면서 해당 은행은 예금을 서둘러 인출하려는 예금주들 때문에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검찰과 금감원까지 나서서 “부산저축은행그룹 건과는 별개의 사안”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인출 대란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간동아’ 확인 결과, 제일저축은행에 예금계좌를 보유한 공직자는 70명가량. 그중에는 장관급 인사와 지자체단체장, 주요 경제 관련 부처 1급 이상 공직자도 다수 포함됐으며, 금액도 적지 않다. 어쨌든 당분간 정부 및 정치판에 ‘저축은행 지진’에 이어 대형 ‘쓰나미’가 닥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