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중인 11명의 출연자. 이 시간에는 사복을 입고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다.
3월 말 방송을 시작한 ‘짝’은 SBS 스페셜 신년특집 3부작 ‘짝’의 1부 ‘나도 짝을 찾고 싶다’를 정규 편성한 프로그램이다. 신년특집 ‘짝’은 시청률 10.2% (TNmS 기준)를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그동안 ‘짝짓기’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남녀 연예인이 출연해 몇 시간 동안 게임과 장기자랑을 반복하다 짝을 정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신년특집 ‘짝’은 일반인이 일주일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며 진지하게 짝을 찾았다.
출연자 보며 감정 이입 대리 만족
4월 29일 오전, 미혼 남녀가 불꽃 튀게 사랑의 화살을 날리는 촬영 현장을 찾았다. 출연자가 많은 데다 이들 각자의 움직임은 물론, 은밀한 데이트까지 따라다녀야 하기 때문에 PD와 작가, 카메라맨 등 스태프가 출연자보다 많았다. 출연자들이 머무는 방에는 CCTV를 설치해 이들의 움직임과 말소리를 모두 담고 있었다. 촬영 현장에 함께 있었지만 숨죽여 출연자들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에 마치 그들의 세계를 다른 세계에서 관찰하는 기분이 들었다.
매주 방송에서 확인했듯 이번에도 여성들의 외모가 사회적 기준으로 평균 이상이었다. 뚱뚱한 사람 한 명 없을 정도. 그런데 이들 중에서도 청순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와 늘씬한 몸매로 유난히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반면 남성들은 미남만 있지는 않았다. 유머가 넘치는 삭발한 머리의 남성, 턱수염을 기르고 패션 센스가 남다른 남성, 키가 크고 젠틀한 느낌을 주는 남성 등 개성이 뚜렷했다. 그간 ‘짝’은 출중한 외모의 여성과 화려한 스펙을 가진 남성이 출연해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애정촌’에서 남녀는 만난 지 이틀째가 돼서야 직업, 나이 등을 공개할 수 있다. 그 전까지는 함께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순 있지만 자신의 신상정보를 말해서는 안 된다. 제작진은 사회적 조건이 짝을 선택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관찰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소개 시간을 갖기 전, 남녀는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꼈을까. 예상대로 여성 중에서는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 인기가 많았다. 남성 6명 중 4명이 그를 지목한 것. ‘짝’의 윤소영 작가는 “이전 방송을 보더라도 대부분 남성은 첫 선택에서 여성 외모를 중요시했다”고 전했다.
여성은 외모 남성은 자상함이 어필
도시락 선택 시간. 두 여성이 같은 남성을 택했다. 그는 자상하고 가정적이다.
“우리 프로그램은 결혼을 전제로 짝을 찾는다.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를 찾는 기준이 다르다. 연애 상대는 멋있거나 재미있는 사람을 선호하지만, 결혼 상대는 나에게 잘해주고 잘 맞을 것 같은 이성에게 끌리는 것 같다.”(남 PD)
“여성은 자신에게 호의적이고 친절한 남성에게 좋은 첫인상을 갖는 경향이 있다. 여성의 선택을 보면, 애정촌에 들어온 첫날 자신의 짐을 들어주거나 가까이에서 잘 챙겨주는 남성을 꼽았다.”(윤 작가)
남성들도 이런 여성의 심리를 잘 아는 듯 자신이 얼마나 친절한지를 표현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날씨가 쌀쌀해지자 자신의 목도리를 여성의 목에 둘러주기도 하고, 벤치에 앉을 때는 손수건이나 종이를 꼭 깔아줬다. 이도 안 되면 손으로 먼지라도 털어줬다. 이전 방송에서는 한 남성이 우유를 좋아하는 여성에게 편의점에서 파는 모든 종류의 우유를 사다주기도 했다.
이에 비해 여성은 지나치게 수동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애정촌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지만, 남녀의 특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측면도 있다. 지금까지 ‘짝’에 출연한 여성 대부분이 남성의 적극적인 대시와 구애를 받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은 거슬리는 부분이다. 현장에서도 여성 과반수가 자기소개를 할 때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많이 낳는 게 꿈이다” “천생 여자이고 요리를 좋아한다” “최종 목표는 좋은 아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드디어 직업과 나이, 학교, 가족 관계 등을 밝히는 자기소개 시간이 왔다. TV로 볼 때는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 정도로 서로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자기소개를 한 후 인기가 높아진 남성 출연자는 30세의 수의사와 대기업에 다니는 27세 직장인이었다. 수의사는 첫인상에서도 2표를 받았는데 소개 후 4표(중복 포함)로 늘어났다. 그를 선택한 여성들은 그 이유로 “부모님이 아직도 손을 꼭 잡고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 화목한 가정을 이룰 것 같다”고 밝혔다. 박미영 PD는 “결혼을 전제로 해서인지 가정적인 남성을 중시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성은 첫인상에서 1표도 받지 못했다가 2표를 받았다. 그는 새벽에는 영어학원에 다니고 독서,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데다 외모 관리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최종적인 인생 목표 역시 컸다. 그를 택한 여성은 “자기 관리가 철저한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37세의 디자인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자기소개 전후 모두 2표를 받았다. 표를 던진 여성도 동일했다. 여성들은 속마음을 밝히는 인터뷰에서 하나같이 “직업보다 성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의사, 대기업 사원, 디자인 회사 CEO라는 직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끝까지 명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결혼 상대자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남성
여성들도 자기소개 후 인기도에 변화가 생겼다. ‘짝’에서 상대방에게 호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는 도시락을 먹는 시간. 일명 ‘도시락 선택’ 시간으로, 자신이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이성에게 가야 한다. 제작진이 남성들에게 도시락을 함께 먹고 싶은 여성을 비공개 질문한 결과, 첫인상에서 4명의 남성 표를 받은 여성과 먹고 싶다는 남성이 2명이었다. 나머지 4명의 남성은 각기 다른 4명의 여성과 밥을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남성 몇 명이 밝힌 선택 이유가 흥미로웠다. 첫인상에서 여성이 자신을 선택해줬기 때문에 ‘의리’를 지키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다. 남 PD는 “간혹 남성 중에는 자신이 선택을 안 하면 그 여성이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제작진은 남성들이 자기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게 여성이 ‘도시락 선택’을 하도록 상황을 바꿨다. 그러자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첫인상에서 자신을 선택해줬으니 의리를 지키겠다던 남성은 그 여성이 다른 남성에게 가자 “나를 찍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다른 여성에게도 적극적으로 대시해보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짝’이 회를 거듭할수록 식상하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성은 외모, 남성은 능력이라는 공식이 반복된다는 것. 이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직장인 한모(27) 씨는 “다양한 사람을 섭외하는 것 같지만 결국 여성은 대부분 예쁘고, 남성은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이 나온다. 제작진 스스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제작진은 ‘짝’에 출연하기를 희망하는 이가 넘쳐난다고 말했다. 방송에 출연해 굳이 짝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심리는 대체 어떨까. 심리학박사이자 영화평론가인 심영섭 씨의 분석이다.
“짝짓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긴다. 세상을 살면서 좋은 남성을 만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설령 방송에서 짝을 찾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노출시켜 홍보 효과를 얻는다. 또 자기를 객관화해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 확인’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이 프로그램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원래 사람은 남녀 짝짓기에 흥미를 느낀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특히 요즘은 짝짓기가 잘 이뤄지지 않는 시대다. 사람들은 방송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다. TV 앞에서 여러 출연자를 평가하고, 나라면 어떻게 할지 감정 이입을 하기도 한다.”
영화평론가 심씨의 설명은 좀 더 직설적이다.
“짝짓기는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선택이면서도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기도 하는 중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예측 불가여서 그 자체로 흥미롭다. 또 인간은 짝을 얻고자 구애하고 경쟁하고 질투도 한다. 인간의 본성, 원형적 행동이 드러나니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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