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깊은 내홍에 빠졌다. 4·27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 참패에 따른 후유증이다. 수도권 의원들의 위기감은 극에 다다른 모습이다. 이들은 대부분 친이(친이명박)계로 분류된다. 이대로는 내년 총선에서 어느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결국 이들의 입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할 사람은 박 전 대표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 밖에서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예의주시하는 사람이 바로 미래희망연대(전 친박연대) 서청원(68) 전 대표다. 서 전 대표는 올 초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만나 합당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별 진척이 없다. 국세청에서 미래희망연대에 부과한 13억 원의 증여세가 걸림돌이다. 조세심판원에 제기한 ‘증여세 부과 취소처분 청구’는 얼마 전 기각됐다. 안 대표를 포함한 한나라당 지도부 전원 사퇴도 합당 논의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반성과 혁신 없으면 다음 선거도 위험
4월 23일 형기가 끝난 서 전 대표의 심기는 이래저래 복잡할 수밖에 없을 터. 이런 와중에 그는 4월 30일 계룡산에서 1만여 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청산회’출정식을 가졌다. ‘서청원(徐淸源)’의 ‘청(淸)’자를 따서 지은 대표적인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산악회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그의 본격적인 정치 재개라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의 정치적 구실과 구상은 무엇일까. 요즘 그의 고민은 또 무엇일까. 5월 4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에서 그를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먼저 이번 한나라당 재보선 참패의 원인을 진단하면서 한나라당은 물론, 현 정권의 문제와 한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요즘 한나라당 젊은 의원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하더라.‘호루라기 정당이다’‘줄 세우기 정당이다’라고. 이 정권이 소통 안 하고, 포용 안 하고, 독선 독주하고, 당을 종속관계로 몰아왔다는 얘기다. 여기에 물가는 엄청 올랐고, 전세대란에 고유가까지 겹치면서 국민이 돌아선 것이다. 그래도 보수층 지지자가 20% 이상 빠진 것은 충격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반성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앞으로 있을 선거도 쉽지 않을 것이다.”
▼ 이번 재보선에서 박 전 대표의 지원유세가 없었던 것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국민 마음에 별로 와 닿지 않은 비판이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박 전 대표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많은 친박계 의원이 당에서 ‘공천학살’을 당하지 않았나. 이후에도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당하고 무시당해왔다. 뛸 공간은 고사하고 숨 쉴 공간조차 없었다. 그래 놓고 이제 와 상황이 어렵다고 박 전 대표를 ‘총알받이’로 내보내려는 사고가 잘못된 것 아닌가. 당은 언제나 당대표 체제로 움직이는 것이다. 선거는 더욱 그렇다.”
▼ 총체적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려면 지금이라도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 전 대표는 차기 대선 후보 1위다. 과거 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 살려낸 경험이 있고, 충분한 능력도 있다. 내 생각이지만, 그런 요구가 있다면 박 전 대표가 외면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당헌당규상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대선 1년 6개월 전에 대표직을 그만둬야 한다. 그게 고쳐지지 않으면 박 전 대표가 나설 수 없다. 앞으로 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진정성을 갖고 박 전 대표가 나설 수 있도록 당헌당규를 바꾼다면, 박 전 대표는 당연히 나서야 한다. 지금보다 더 뜨거운 불구덩이에라도 들어가 국민 마음을 되돌리고 한나라당을 살릴 의무가 있다. 그나마 국민에게 희망이 되는 사람이 박 전 대표 아닌가.”
▼ 친박계 의원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위기감을 느낀 수도권 친이계(친이명박계) 의원들이 의도적으로 박 전 대표를 끌어내려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데.
“나도 직간접적으로 그런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진 않다.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거다. 대통령 임기는 유한(有限)하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계속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정당은 가능한 한 지속돼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국민이 가장 많이 지지하는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가 현 정권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도 박 전 대표 외에는 없지 않나. 설령 친이계가 흑심을 갖는다 해도 박 전 대표라면 이미 충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 그렇다면 박 전 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이 공동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사람들의 얘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들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당 권력을 나눠먹자는 게 말이 되나. 참 한심스럽다. 국민도 쓴웃음을 지을 것이다.”
가마솥 구실하며 朴 전 대표 도울 것
현재 미래희망연대와 한나라당의 합당 논의는 답보 상태에 빠졌지만, 서 전 대표는 그다지 초조해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해결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것. 얼마 전 조세심판원이 증여세 부과취소 청구를 기각했지만, 서 전 대표는 조만간 행정법원에 제기할 소송에서는 승소하리라 자신한다.
“국내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에 자문한 결과, 우리가 100% 이긴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나라당에 부담 줄 게 뭐가 있나. 어차피 시간문제다. 깨끗이 정리하고 가는 게 우리에게도 좋다.”
만일 서 전 대표 측이 승소한다면 그동안 주장해온 현 정권의 ‘정치보복’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국세청이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이유로 세금을 부과했는데, 그게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내려진다면 불법 정치자금이 아닌 것이고, 결국 서 전 대표를 구속했던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감 덕분일까. 서 전 대표는 요즘 친박계 전·현직 정치인에게 “어제는 과거다. (친이계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같이 화합하라”고 말하고 다닌다. “축사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희생한 것은 한 거고, 미래를 위해 하나가 되자고 말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청산회 시산제와 출정식 때도 같은 말을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서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본다. 미래희망연대 당 대표 복귀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정말 그럴까.
“이제 자유인이 됐다. 아직 복권되지 않아 피선거권은 없지만, 그동안 국회의원 6선이나 했다. 이제 더는 국회의원 출마 욕심도 없다. 솔직히 주변에서 정치 오래했으니 박 전 대표를 도와 다음 정권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나는 이제 깃발을 들 군번이 아니다’라고. 다만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이 된다면 조용히 숨어서 스폰서 구실을 하고 싶다. 그래서‘울타리’니‘가마솥’이니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게 정치 재개라고는 할 수 없지 않나. 일종의 정치 행위로 본다면 그것까지 부인할 이유는 없다.”
▼ 지난 연말 가석방 직전, 옥중에서 이상득 의원과 만난 것을 두고 두 사람이 앞으로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 간 ‘화해 메신저’ 구실을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이 의원과는 원래 인간적으로 가깝게 지내왔다. 과거에 당 3역(사무총장,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을 2번 정도 같이 한 바 있다. 부부동반으로 만난 적도 많다. 그러다 보니 위로 차원에서 한 번 면회를 온 것이다. 교도소에서 무슨 깊은 대화를 하겠는가. 할 수도 없고. 그 이후에는 만난 적이 없다. 인편을 통해 안부나 전하는 정도다.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있겠지만,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 사이에서 징검다리 구실을 할 생각은 없다.”
▼ 가석방 이후 친이계 의원이 앞다퉈 서 전 대표를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옛날부터 알던 정치인들이다. 어떤 사람은‘자기는 MB맨인데, 박 전 대표를 도우면 배신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부러 소위 ‘월박하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내 얘기를 한다. 나는 누가 봐도 YS(김영삼 전 대통령) 사람이다. YS에게 정치를 배웠고 비서실장까지 했다. 하지만 이회창 전 대표를 대통령 만들려고 열심히 일했고, 이 대통령을 위해 지원 유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인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치인이 가야 할 길이다. 정 부담된다면 다음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아서 결정하라고 조언하면 대부분 공감하는 것 같더라. 친이계든, 친박계든 서로 부담 가질 필요 없다. 서로 비판할 까닭도 없다. 서로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자연히 풀어진다.”
▼ 친박계와 친이계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는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 간 화해가 급선무 아닌가.
“정국 현안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이 대통령이 마련해야 한다. 박 전 대표는 미래 권력에 가장 접근해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이라고 그 존재를 언제까지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차원에서 대화하고, 현안에 대해 의논하면서 풀어나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 다음 정권 창출에도 유리하다. 현 정부의 지난 3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동안 6선을 하면서 6명의 대통령을 경험했다. 모든 대통령이 임기 말에 불행했다. 가장 큰 원인은 독선과 독주다. 권력은 겸손해야 한다. 그런 자세로 다가가야 국민이 믿는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나 한나라당 의원의 모습을 보면 역대 정권이나 마찬가지다. 국민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현 정부는 자기 생각대로 밀어붙이려 한다. 정책도 자주 바뀌고, 인사도 공정하지 않다. 계속 이러다가는 역대 정권처럼 국민에게 배척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박 전 대표의 정치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아이고(웃음). 그 양반,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구해낸 지도력을 갖고 있지 않나. 한나라당 대표 가운데 가장 민주적으로 당을 이끈 지도자다. 그 양반의 진정성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 양반은 정말 제2의 경제도약, 국가도약을 통해 우리나라를 행복한 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꽉 차 있다. 또 아직은 부족한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싶은 욕심도 있는 것 같다. 그 양반은 오직 국가 생각만으로 가득하다.”
▼ 가석방 이후 아직 박 전 대표를 만나지 않았는데, 조언이라도 하려면 한번 만나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좋은 인연을 갖고 있으니 잘되도록 남들에게 한마디 더 해주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만나지 않겠나. 일부러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가석방된 지 얼마 안 된 나를 만난다는 게 박 전 대표에게도 그렇게 상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정치한 지 30년이 됐다. 내가 나서서 뭘 하려고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조용히 가마솥 구실을 하면서 밥이 잘되도록 불을 때는 일이나 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 사람들이 사심 없이 박 전 대표를 도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앞으로 내가 할 일이다.”
당 밖에서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예의주시하는 사람이 바로 미래희망연대(전 친박연대) 서청원(68) 전 대표다. 서 전 대표는 올 초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만나 합당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별 진척이 없다. 국세청에서 미래희망연대에 부과한 13억 원의 증여세가 걸림돌이다. 조세심판원에 제기한 ‘증여세 부과 취소처분 청구’는 얼마 전 기각됐다. 안 대표를 포함한 한나라당 지도부 전원 사퇴도 합당 논의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반성과 혁신 없으면 다음 선거도 위험
4월 23일 형기가 끝난 서 전 대표의 심기는 이래저래 복잡할 수밖에 없을 터. 이런 와중에 그는 4월 30일 계룡산에서 1만여 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청산회’출정식을 가졌다. ‘서청원(徐淸源)’의 ‘청(淸)’자를 따서 지은 대표적인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산악회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그의 본격적인 정치 재개라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의 정치적 구실과 구상은 무엇일까. 요즘 그의 고민은 또 무엇일까. 5월 4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에서 그를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먼저 이번 한나라당 재보선 참패의 원인을 진단하면서 한나라당은 물론, 현 정권의 문제와 한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요즘 한나라당 젊은 의원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하더라.‘호루라기 정당이다’‘줄 세우기 정당이다’라고. 이 정권이 소통 안 하고, 포용 안 하고, 독선 독주하고, 당을 종속관계로 몰아왔다는 얘기다. 여기에 물가는 엄청 올랐고, 전세대란에 고유가까지 겹치면서 국민이 돌아선 것이다. 그래도 보수층 지지자가 20% 이상 빠진 것은 충격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반성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앞으로 있을 선거도 쉽지 않을 것이다.”
▼ 이번 재보선에서 박 전 대표의 지원유세가 없었던 것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국민 마음에 별로 와 닿지 않은 비판이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박 전 대표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많은 친박계 의원이 당에서 ‘공천학살’을 당하지 않았나. 이후에도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당하고 무시당해왔다. 뛸 공간은 고사하고 숨 쉴 공간조차 없었다. 그래 놓고 이제 와 상황이 어렵다고 박 전 대표를 ‘총알받이’로 내보내려는 사고가 잘못된 것 아닌가. 당은 언제나 당대표 체제로 움직이는 것이다. 선거는 더욱 그렇다.”
▼ 총체적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려면 지금이라도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 전 대표는 차기 대선 후보 1위다. 과거 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 살려낸 경험이 있고, 충분한 능력도 있다. 내 생각이지만, 그런 요구가 있다면 박 전 대표가 외면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당헌당규상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대선 1년 6개월 전에 대표직을 그만둬야 한다. 그게 고쳐지지 않으면 박 전 대표가 나설 수 없다. 앞으로 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진정성을 갖고 박 전 대표가 나설 수 있도록 당헌당규를 바꾼다면, 박 전 대표는 당연히 나서야 한다. 지금보다 더 뜨거운 불구덩이에라도 들어가 국민 마음을 되돌리고 한나라당을 살릴 의무가 있다. 그나마 국민에게 희망이 되는 사람이 박 전 대표 아닌가.”
▼ 친박계 의원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위기감을 느낀 수도권 친이계(친이명박계) 의원들이 의도적으로 박 전 대표를 끌어내려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데.
“나도 직간접적으로 그런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진 않다.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거다. 대통령 임기는 유한(有限)하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계속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정당은 가능한 한 지속돼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국민이 가장 많이 지지하는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가 현 정권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도 박 전 대표 외에는 없지 않나. 설령 친이계가 흑심을 갖는다 해도 박 전 대표라면 이미 충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 그렇다면 박 전 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이 공동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사람들의 얘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들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당 권력을 나눠먹자는 게 말이 되나. 참 한심스럽다. 국민도 쓴웃음을 지을 것이다.”
4월 30일 계룡산에서 열린 ‘청산회’ 출정식 및 시산제에 참석한 서청원 전 대표(가운데)와 한나라당 강창희 전 최고위원(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회원들.
현재 미래희망연대와 한나라당의 합당 논의는 답보 상태에 빠졌지만, 서 전 대표는 그다지 초조해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해결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것. 얼마 전 조세심판원이 증여세 부과취소 청구를 기각했지만, 서 전 대표는 조만간 행정법원에 제기할 소송에서는 승소하리라 자신한다.
“국내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에 자문한 결과, 우리가 100% 이긴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나라당에 부담 줄 게 뭐가 있나. 어차피 시간문제다. 깨끗이 정리하고 가는 게 우리에게도 좋다.”
만일 서 전 대표 측이 승소한다면 그동안 주장해온 현 정권의 ‘정치보복’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국세청이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이유로 세금을 부과했는데, 그게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내려진다면 불법 정치자금이 아닌 것이고, 결국 서 전 대표를 구속했던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감 덕분일까. 서 전 대표는 요즘 친박계 전·현직 정치인에게 “어제는 과거다. (친이계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같이 화합하라”고 말하고 다닌다. “축사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희생한 것은 한 거고, 미래를 위해 하나가 되자고 말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청산회 시산제와 출정식 때도 같은 말을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서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본다. 미래희망연대 당 대표 복귀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정말 그럴까.
“이제 자유인이 됐다. 아직 복권되지 않아 피선거권은 없지만, 그동안 국회의원 6선이나 했다. 이제 더는 국회의원 출마 욕심도 없다. 솔직히 주변에서 정치 오래했으니 박 전 대표를 도와 다음 정권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나는 이제 깃발을 들 군번이 아니다’라고. 다만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이 된다면 조용히 숨어서 스폰서 구실을 하고 싶다. 그래서‘울타리’니‘가마솥’이니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게 정치 재개라고는 할 수 없지 않나. 일종의 정치 행위로 본다면 그것까지 부인할 이유는 없다.”
▼ 지난 연말 가석방 직전, 옥중에서 이상득 의원과 만난 것을 두고 두 사람이 앞으로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 간 ‘화해 메신저’ 구실을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이 의원과는 원래 인간적으로 가깝게 지내왔다. 과거에 당 3역(사무총장,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을 2번 정도 같이 한 바 있다. 부부동반으로 만난 적도 많다. 그러다 보니 위로 차원에서 한 번 면회를 온 것이다. 교도소에서 무슨 깊은 대화를 하겠는가. 할 수도 없고. 그 이후에는 만난 적이 없다. 인편을 통해 안부나 전하는 정도다.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있겠지만,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 사이에서 징검다리 구실을 할 생각은 없다.”
▼ 가석방 이후 친이계 의원이 앞다퉈 서 전 대표를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옛날부터 알던 정치인들이다. 어떤 사람은‘자기는 MB맨인데, 박 전 대표를 도우면 배신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부러 소위 ‘월박하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내 얘기를 한다. 나는 누가 봐도 YS(김영삼 전 대통령) 사람이다. YS에게 정치를 배웠고 비서실장까지 했다. 하지만 이회창 전 대표를 대통령 만들려고 열심히 일했고, 이 대통령을 위해 지원 유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인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치인이 가야 할 길이다. 정 부담된다면 다음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아서 결정하라고 조언하면 대부분 공감하는 것 같더라. 친이계든, 친박계든 서로 부담 가질 필요 없다. 서로 비판할 까닭도 없다. 서로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자연히 풀어진다.”
▼ 친박계와 친이계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는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 간 화해가 급선무 아닌가.
“정국 현안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이 대통령이 마련해야 한다. 박 전 대표는 미래 권력에 가장 접근해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이라고 그 존재를 언제까지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차원에서 대화하고, 현안에 대해 의논하면서 풀어나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 다음 정권 창출에도 유리하다. 현 정부의 지난 3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동안 6선을 하면서 6명의 대통령을 경험했다. 모든 대통령이 임기 말에 불행했다. 가장 큰 원인은 독선과 독주다. 권력은 겸손해야 한다. 그런 자세로 다가가야 국민이 믿는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나 한나라당 의원의 모습을 보면 역대 정권이나 마찬가지다. 국민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현 정부는 자기 생각대로 밀어붙이려 한다. 정책도 자주 바뀌고, 인사도 공정하지 않다. 계속 이러다가는 역대 정권처럼 국민에게 배척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박 전 대표의 정치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아이고(웃음). 그 양반,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구해낸 지도력을 갖고 있지 않나. 한나라당 대표 가운데 가장 민주적으로 당을 이끈 지도자다. 그 양반의 진정성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 양반은 정말 제2의 경제도약, 국가도약을 통해 우리나라를 행복한 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꽉 차 있다. 또 아직은 부족한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싶은 욕심도 있는 것 같다. 그 양반은 오직 국가 생각만으로 가득하다.”
▼ 가석방 이후 아직 박 전 대표를 만나지 않았는데, 조언이라도 하려면 한번 만나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좋은 인연을 갖고 있으니 잘되도록 남들에게 한마디 더 해주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만나지 않겠나. 일부러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가석방된 지 얼마 안 된 나를 만난다는 게 박 전 대표에게도 그렇게 상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정치한 지 30년이 됐다. 내가 나서서 뭘 하려고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조용히 가마솥 구실을 하면서 밥이 잘되도록 불을 때는 일이나 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 사람들이 사심 없이 박 전 대표를 도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앞으로 내가 할 일이다.”